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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Mar 25. 2021

[책을 읽고] 초예측 부의 미래
/ 마루야마 슌이치



원제는 <욕망의 자본주의>이고, 동명의 NHK 다큐를 정리한 책이다. 한글판 제목이 한심하지만,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 정보를 먹어치우는 플랫폼 제국이 등장해 일자리를 없애고 빈부격차를 늘린다. 훌륭한 취지에도 불구하고 암호화폐는 또 다른 투기의 도구일 뿐이다. 과연 이대로 괜찮은 걸까?



1. 플랫폼 제국에 대항하는 법


유발 하라리는 자본주의가 사회주의에 맞서 이긴 20세기와는 달리, 21세기에는 집중형 시스템이 유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증거가 바로 GAFA(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다. 이것은 물론 과거에 비해 월등히 나아진 데이터 처리 기술 덕분이다. 과거에는 너무 많은 정보가 비효율을 불러왔지만, 이제는 얼마든지 많은 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 제어할 수도 없고 제어해서도 안 되는 기술의 발전에 의해 게임의 법칙이 바뀌었다. 기술의 발전으로 게임의 성격이 바뀌어버린 21세기에는, 중앙집권적 시스템이 승자의 자리에 올라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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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제국의 미래>를 통해 플랫폼 경제의 위험성을 경고했던 스캇 갤러웨이는 이 책에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확실하게 밝히고 있다. GAFA의 문제는 독점기업 해체, 즉 회사 분할을 통해 해결 가능하다는 것이다. 과거 미국의 통신시장과 석유시장을 독점했던 거대기업들은 수십 개의 회사로 해체되었다. 그 당시라고 해서 그런 형태의 문제해결이 쉬울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은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GAFA의 해체를 공약으로 내거는 후보에게 그는 투표하겠다고 말한다.


아쉽지만, 미국 정치는 거대 양당에 의해 주도되고 있으며,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도 말하자면 '미국의 경쟁력'을 해할 수 있는 정책은 내걸지 않는다. 과거 수 차례 마이크로소프트의 분사 논의가 있었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갤러웨이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GAFA의 해체를 주장하는 대선 후보는 아마 앞으로도 미국 정치판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GAFA의 폐해를 해결하는 방법이 사실은 하나 더 있다.


중국의 행보는 흥미롭습니다. 중국은 거대 IT 기업을 자국에 유치해 지식과 기술을 훔친 후 유사한 회사를 설립하고 있습니다. 독자적인 검색 엔진과 독자적인 소셜 미디어 회사를 만들어서 국내에서 생기는 이익을 확보하는 방법인데요. 이 수법은 유럽에서 비판을 받았지만 저는 가까운 미래에 유럽도 중국과 같은 수법으로 데이터 유출을 방어하려 들 거라고 에상합니다. (91쪽)


EU가 거대 플랫폼 기업의 조세 회피 문제를 해결하려 열의를 보이는 것은 맞지만, 조세 회피는 문제의 일부일 뿐이다. 데이터 유출의 문제도 언젠가는 도마 위에 오를 것이고, 그때 EU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 지켜볼 일이다. 하라리의 말대로, 21세기에는 중앙집권 체제가 잘 작동하고 있으며, 중국의 존재야말로 그 증거다.



2. 암호화폐가 무섭냐?


책의 나머지 부분은 별 내용이 없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장 티롤조차 통찰력 있는 견해를 제시하지 않는다. 그는 암호화폐가 실패할 것이라 주장하면서, 그 이유는 거품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명제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일단, 암호화폐라는 개념과 현재 시중에 나와있는 암호화폐를 혼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암호화폐라는 개념 자체에는 거품이라는 요소가 없다. 그런데 겨우 지금 암호화폐가 고평가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거품이니 실패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믿기 힘들 정도로 단순한 논리다. 이 명제의 또 한 가지 문제라면, 왜 거품인지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것이 거품이라 말하려면 기준점이 있어야 한다. 티롤은 경제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는다.


티롤은 대신 암호화폐의 폐해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가 말하는 폐해는 세 가지다. 첫째, 돈 세탁, 탈세, 암거래에 이용될 수 있다. 둘째, 중앙은행의 시뇨리지(seigniorage)를 해친다. 셋째, 금융 정책을 훼손할 수 있다.


일단, 세 번째로 지적한 금융 정책 훼손 가능성은 맞다. 그러나 그것이 암호화폐의 존재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내 생각에 암호화폐의 장점 중 첫째로 꼽아야 할 것은 바로 중앙은행이 장난질을 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중앙은행의 몇몇 사람이 정하는 금융 정책이 옳은 결정을 내리기에 적합한 구조라고 생각하는 경제학자는 거의 없다. 뉴턴도 사우스 시(South Sea) 주식 거품 사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큰 손해를 봤다. 나는 세상 그 어떤 천재라도 집단지성에 못 미친다고 생각한다. 번뜩이는 영감과 관련한 것이 아닌, 반복적인 결정에 관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고 본다.


마찬가지 이유로, 중앙은행의 시뇨리지를 해치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가. 중앙은행이 시뇨리지를 좋은 곳에 쓸 수도 있겠지만, 보통은 그렇지 않다. 재정을 시뇨리지로 조달한다면 당장은 저항이 적어 좋겠지만, 그건 그냥 인플레이션으로 미래세대를 착취하는 것에 불과하다.


첫 번째 지적조차 온당하지 않다. 암거래나 돈 세탁에 암호화폐가 쓰인다는 주장은, 그런 경제주체들이 암호화폐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장 티롤은 암호화폐가 거품이라 주장한다. 그의 주장이 맞다면, 거품을 받고 자신들의 '서비스'를 제공한 범죄집단이나 테러리스트는 큰 피해를 볼 것이다. 앞에서는 거품이라고 했다가 이제는 실체라고 인정을 하는,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에 불과하다.



3. 방종의 결말


흥미로운 부분은 오히려 맨뒤에 나온다. 저자 마루야마 슌이치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다른 학자들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21세기에 필요한 정치, 경제체제는 어떤 모습인가를 고민한다. 신자유주의의 사상적 원조라고 일컬어지는 하이에크지만, 그가 작금의 '신자유주의'의 모습을 본다면 아마 기가 차서 혀를 찰 것이다. 그는 실제로 이렇게 말했다.


스미스와 그의 동시대 사람들이 옹호한 개인주의의 주요 장점은 그 체제 아래서는 악인이 최소의 해밖에 끼칠 수 없다는 데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중략) 그것은 모든 사람을 있는 그대로의 다양하고 복잡한, 때로는 선량하고 때로는 악인인, 또 때로는 총명하면서도 더 자주 어리석은 모습을 그대로 활용하는 사회 체제다. 스미스가 목표로 하는 것은 동시대 프랑스 사람들이 바란 것처럼 선인과 현인에게만 자유를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자유를 인정할 수 있는 체제였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개인주의와 경제질서>중에서, 책 232쪽에서 재인용)


스미스는 모든 사람에게 자유를 인정하는 체제를 제시했다고 하면서, 하이에크는 자신과 스미스가 분명히 다르다고 말한다. 하이에크가 진정 바랬던 것은 신자유주의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그는 여자와 노예와 가난한 자를 제외했던 그리스 정치체계와 같은 것을 원했던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그것과 비슷한 점이라면 아마 악인이 단지 '유권자'(라고 쓰고 '가진 자'라고 읽는다)이기 때문에 보호받는다는 점 정도일까? (트럼프나 알키비아데스나.)


마루야마 슌이치는 <개인주의와 경제질서>의 다른 부분을 인용하면서, 현재의 개인주의에는 '겸손'이란 차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이에크는 사회주의의 부상에 대항하기 위해 자유를 부르짖은 것이지, 작금의 신자유주의가 보여주는 방종을 주창한 것이 아니다.


하이에크가 지금의 신자유주의를 보았다면 혀를 찰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인용하며 장황하게 떠들었지만, 마루야마 슌이치는 어떤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다. 어쩌면 그런 방황을 가치 있는 것으로 제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하라리는 중앙집권적 방식, 즉 사회주의가 정보 시대에 적합할 수 있다고 말했고, 갤러웨이는 거대기업의 분할을 주장했다. 20세기에 사라져갔던 사회주의가 다시 등장할까 두려워, 마루야마 슌이치는 작금의 신자유주의가 하이에크의 정신에 따라 수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좋은 소식은, 역사를 보면 극단적인 소득의 불평등은 반드시 스스로 수정되었다는 것입니다. 나쁜 소식은, 극도로 심한 소득의 불평등을 수정해온 것은 전쟁, 기아, 혁명 중 하나였다는 사실입니다. (84쪽)


스캇 갤러웨이의 말이다. 전쟁, 기아, 혁명에 기대는 수준보다는 인류가 현명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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