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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Apr 16. 2021

자율주행,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대답한다는 보장은 없음

[책을 읽고] 자율주행 / 안드레아스 헤르만 등


이 책의 장점은 자율주행 관련 다양한 이슈를 거의 모두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단점은 쓸데없이 넘치는 분량, 그럼에도 논의의 깊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자율주행 도입의 최대 난관인 윤리적 문제와 법/제도화에 관한 내용이 심히 부실하다.



2015년 기준, 세계 자동차 시장 규모는 약 9천만 대, 평균 단가 2.3만 달러, 즉 매출 규모는 약 2.1조 달러에 달한다. <내러티브 앤 넘버스>에서 다모다란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자율주행이 어느 시장을 장악할 것이냐를 두고 가능성, 타당성, 개연성의 범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개연성, 즉 가장 확률이 높은 시나리오라면 자동차 시장을 대체하는 것이라 보고 저 2.1조 달러의 시장을 확장 가능한 영토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가능성은 물론 타당성의 범주까지만 가더라도 자율주행이 확장할 수 있는 전체 영토의 크기는 단순히 자동차가 아니라 '이동'과 관련된 시장이라 보는 것이 맞다. 너무 크게 생각하면 계산과 틀릴 확률이 함께 복잡해지니, 타당성의 범주까지만 가도록 하자. 즉, 자율주행이 노려야 할 시장은 자동차 시장이 아니라 '자동차를 이용한 이동' 시장이다. 2015년 기준, 전 세계 자동차들의 주행거리는 대략 10조 마일이고, 1마일 주행에 드는 비용은 대략 1달러 정도라고 한다. 따라서 자율주행 자동차의 시장 규모는 10조 달러다. 무려 1경 원이다.



저자는 자율주행차를 크게 세 분류, 즉 로보카, 버스, 다목적 차량으로 나누는데, 대단한 분류법은 아니지만 일단 자율주행 자동차가 진입할 첫 번째 시장, 즉 최종여행(last mile) 시장을 확인한 부분은 훌륭하다. 일단 자율주행 서비스는 여행자가 주요 이동수단(예컨대 기차)에서 내려 최종목적지까지 움직이는 짧은 거리에서 우선 상용화될 것이다. 현재 은평구와 세종시에서 서비스 중인 '셔클'과 유사한 서비스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고, 좀 더 일반적으로는 도시내 택시 서비스에 해당한다.



이런 식으로 서비스가 개시되면, 사람들은 도시의 어느 허브에서 최종목적지까지 자율주행차로 이동하게 된다. 허브는 기차역이나 공항이 될 것인데, 현재도 붐비는 이 허브는 더욱 붐비는 곳이 될 것이고, 고도로 집중화된 상업 구역으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다음은 자율주행의 기술적 단계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자율주행 단계는 보통 5단계로 나눈다. 1단계는 완전 수동, 5단계는 완전 자동이다. 문제는 3-4단계에서 나타난다. 자동주행이 기본이고, 필요할 때만 인간이 개입하는 단계다. 문제는 자동주행이 기본이기 때문에 인간의 운전실력은 나날이 쇠퇴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위기시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의심이 든다는 점이다. 이것이 자율주행 기술을 한 단계씩 올리면서 개발하는, 주로 완성차 업체들이 채택하는 R&D 방식의 문제점이다. 반면, IT 업체들은 시작부터 5단계를 지향한다. (물론 테슬라와 같이 혼종도 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자율주행차는 플러그 앤 플레이를 지원해야 한다. 그런데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이것도 저자가 잘못 생각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 자율주행차는 구입해서 차고에 모셔놓는 물건이 아니라, 그냥 필요할 때마다 빌려쓰는 물건이 될 것이다. 즉 MaaS(Mobility as a Service) 형태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플러그 앤 플레이를 지원할 필요도 없고, 자율주행차 운전에 조금이라도 기술이 필요하다면 자율주행차 안전원이라는 직업을 창출할 수도 있게 된다.



저자는 의아하게도 이런 식의 직업 창출이 운송업에서 벌어질 것이라 예상한다. 즉 운송트럭에서 인간이 하는 역할은 운전 외에도 많다는 것이다. 예컨대 도난 방지라든가 화물 관리 등의 업무가 있다. 그러나 이 부분도 저자가 잘못 생각했다고 본다. 보험이라는 훨씬 저렴한 대체재가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훨씬 더 비싼 솔루션을 고르는 사업자는 도태될 뿐이다. 이것은 현재 존재하는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를 봐도 알 수 있다. 도난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지만, 가게 주인들은 경비를 고용하는 것보다 훨씬 싼 보험을 선택한다.



자율주행은 교통체증으로 인한 수많은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이는 <출퇴근의 역사>에서 이언 게이틀리가 장황하게 설명하는, 산업화 초기에 철도와 자동차 통근이 이루었던 기적의 현대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자율주행의 도입이 미뤄지는 가장 큰 이유는 기술이 아니라 법과 제도다.



직진하면 5명을 치게 되는 상황에서 자율주행 알고리즘은 핸들을 꺾어 1명을 들이받을 것인가? 이런 도덕적 딜레마에 대해서 사람들은 합의된 대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공리주의적 해결책이 다수의 의견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않다. 설문조사 결과, 사람들은 더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는 알고리즘을 선호했지만, 자신이 탑승자인 상황에서는 자신을 지켜주는 쪽을 선택했다. 씁쓸하지만, 당연한 결과다.



거의 모든 운전자는 정면 추돌 상황에서 핸들을 왼쪽으로 꺾는다. 옆자리에 사랑하는 사람이 타고 있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은 동물적 본능이라 하겠다. 이런 상황에서, 보행자 10명을 목숨을 구하려고 탑승자를 희생시키는 선택을 하는 알고리즘이 장착된 자율주행차를 누가 구입하겠는가? 비관적으로 보이겠지만, 나는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되려면 결국 탑승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알고리즘이 설계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자율주행차가 상품이 아닌 서비스로 판매되어도 마찬가지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 그 위험한 물건을 타겠는가? 사람들이 자동차 사고보다 비행기 사고를 더 두려워하는 것처럼, 희박하지만 드라마틱한 사건의 확률에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반응한다.



이 책은 자율주행과 관련된 많은 질문을 한다. 그런데 많은 질문이 현명하지 못하다. 자율주행이 100% 도입된다면 속도제한이 왜 필요하겠는가? 정비불량 차량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왜 문제가 되는가? 정비불량 차량은 지금도 불법이다.



2020년 미국이 교통체증으로 감당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은 약 2000억 달러가 될 것이라고, 저자는 예측했다. 자율주행 개발에 투입할 수 있는 돈의 규모를 가늠해 볼 수 있다고, 저자는 덧붙인다. 보이지 않는 비용과 명시적 비용은 다르다. 원자력 발전이나 유전공학처럼 일단 기술이 도입된 다음에 대처하는 것보다 사전적 대비가 나음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합리적 인간, 즉 이콘(Econ)이 아니다. 그걸 지적하는 학자들이 몇 년 연속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휩쓰는 세상이다. 그래도 논의는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이 책이 전하는 제일 소중한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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