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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Apr 15. 2021

(언제나 즐거운) 철학 산책

[책을 읽고] 철학의 역사 / 나이젤 워버턴


책 자체는 준수하다. 문제는 강신주의 <철학 대 철학>을 읽은 게 올해 초라서 웬만한 철학책은 성에 안 찬다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에 대해 알기 전까지, 하이데거는 노자와 더불어 내게 최고의 철학자였다. 하이데거가 단지 후설의 현상학 계보를 잇기만 했다면, 즉 현상학자였다면 하이데거의 철학을 그의 삶에 비추어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현상학에서 출발하여 '어떤 행동을 촉구하는' 형태의 철학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 철학은 매우 불미스럽게 활용되었다. 그 사태에 대해 하이데거는 응당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나는 쇼펜하우어나 키르케고르가 철학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의 '철학 체계'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마찬가지로 그냥 '내부적으로 모순이 없을 뿐인' 이야기 체계다. 즉 '실재'나 '진리'와 상관이 없으므로 철학이 아니라, 굳이 말하자면 문학이다. 그래서 쇼펜하우어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바가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니 쇼펜하우어는 그냥 철학자가 아닌 수준이 아니라 '인간'이라고도 보기 어려운 놈인 것 같다. 참 씁쓸한 발견이다. 쇼펜하우어는 분명 어떤 행동을 촉구하는 형태의 '철학'을 추구했고, 그걸 강의했지만, 본인은 완전히 반대로 행동했다. 내로남불의 마에스터라고 할 수 있겠다.



종종 과소평가되는 벤담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려고 한다. 벤담은 에피쿠로스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공리 체계를 고안해 냈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밀, 제임스, 싱어는 그 수많은 사람들의 일부에 불과하다. 아직도 철학개론서에서는 벤담이 '초기적이고 덜 세련된' 종류의 공리주의를 만든 것으로 오해하기 딱 좋게 서술되어 있는데, 개선이 시급하다.



이 책에는 겨우 50명 정도의 철학자가 소개되는데, 그중 하나가 알프레드 줄스 에이어라는 사실은, 대단히 놀랍다. 에이어는 논리실증주의를 잘 정리한, 말하자면 도킨스 같은 사람이다. (물론 도킨스는 확장된 표현형 등 자기 나름대로의 학구적 기여가 분명히 있기는 하다.) 그의 최대 업적은 논리실증주의가 대중 속으로 파고 들게 한 것으로, 도킨스가 진화론에 대해 이룩한 업적과 같다. 자신만의 고유한 사고 체계가 없는 에이어가 철학사의 주요 인물 중 하나로 등장한 것은, 그를 통해 논리실증주의를 소개하기 위한 저자의 편리한 시도일 수 있다. 어쨌든, 에이어는 내가 각별하게 생각하는 철학자 중 하나이므로 매우 반가웠다.



에이어는 내가 원서(내지 영어 번역서)로 읽은 몇 안 되는 철학자 중 하나다. 다른 이들은 하이데거, 비트겐슈타인, 데리다, 루카치, 후설 정도인데, 이중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탐구>를 제외하면 죄다 원서가 아니라 영어 번역서다. (<철학 탐구>는 비트겐슈타인이 영어로 쓴... 이라기보다는 강의한 책이다.)



아래에서는, 책을 읽으면서 중간중간 밑줄 그은 부분을 요약하고, 그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



칸트는 수학의 항등식을 분석 명제가 아니라 '선험적 종합 명제'로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것은 절대 다가갈 수 없는 '실재'로의 접근에 관한 돌파구나 힌트가 될 수 있다. (212) - 이건 데카르트의 코기토가 생각나는 부분. 원래 인간이란 궁지에 몰리면 뭐든 돌파구를 만드는 법이다. 억지로라도 말이지.



정언명령에 따르면, 친구를 보호하기 위한 거짓말도 안 된다. 이것은 칸트 본인이 직접 사용한 사례다. (219) - 정언명령의 답답함이야 널리 알려져 있지만, 칸트 본인이 사용한 사례라니 하핫.



벤담은 쾌락에 질적 차이가 없고 따라서 계측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밀은 쾌락에 질적 차이가 있다고 믿었다. (229) - 역시 보면 볼수록 벤담은 천재다. 쾌락에 질적 차이가 없다는 믿음이 먼저일까, 아니면 계측 필요성에 대한 깨달음이 먼저일까? 철학은 충분히 도구적일 수 있고, 어쩌면 그래야 한다.



싱어의 동물 권리 옹호는 그 뿌리를 벤담에게서 찾을 수 있다. 벤담은 동물이 고통과 쾌락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232) - 역시 벤담.



벤담에 대한 노직의 반박(?) 사고실험은 다음과 같다.. 초 레알 울트라 슈퍼 버추얼 쾌락 기계가 존재한다고 가정하자. 벤담의 분석에 따르면 당신은 평생 그 기계에 접속해야만 한다. 그것이 쾌락을 극대화하고 고통을 최소화하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 그런 기계로 실험하는 것을 즐긴다고 해도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내내 기계에 접속하는 것은 거부할 것이다. 행복한 정신 상태가 이어지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게 여기는 다른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233쪽) - 정박아 노직은 '때문이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게 틀림없다. 행복한 정신 상태가 이어지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게 예컨대 무엇인지, 왜 그것들이 더 가치가 있는지를 노직은 설명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근거도 들이대지 않고 결론을 내며 우기는 짓거리를 하는 직업은 철학자가 아니고 따로 있지 않은가? 노직이 철학자가 아니라 그냥 보수꼴통 정치꾼이라는 걸 보여주는 장면.



살아 있는 동안 그는 교제를 즐겼고 바람을 피웠으며 잘 먹었다. 쇼펜하우어는 위선자였다고 말하는 것은 그럴 만하다. (254쪽) - 역시 쇼펜하우어는 내가 혐오하는 종류의 인간이다. 적어도 철학자, 특히 쇼펜하우어 같이 어떤 행동을 촉구하는 철학자는 응당 자신의 촉구하는 그 행동을 해야 한다. 남한테만 극기하라니, 천하에 이런 쓰레기가 또 어디 있을까? 그런데 안타까운 건 토머스 하디다. 하디의 철학 체계는 아무리 다시 생각해봐도 쇼펜하우어에서 온 것이 분명하다. (단어 자체가 'Immanent Will'이다.) 이런 쓰레기의 생각을 빌려오다니.



버트란드 러셀은, 제임스의 실용주의에 따르면 '산타클로스는 존재한다'가 참이어야 한다고 말하며 조롱했다. (310) - 역시, 러셀은 철학사 최고의 천재 중 하나다.



제임스는 타인에게 마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남들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를 채울 수 있다고 논증했다. 아주 이상한 논증(?)이다. (312) - 유아론이 얼마나 깨기 힘든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장면이다. 이걸 정말 논증이라고 생각했다면 제임스도 참...



필리파 풋과 주디스 자비스 톰슨의 사고실험 (제37장) - 요즘 자율주행과 관련하여 다시 대유행을 타고 있는 바로 그 딜레마 사고실험이다. 다섯 사람이 죽게 놔둘 것이냐, 아니면 그들을 구하기 위해 죄없는 한 사람을 대신 죽일 것이냐. 이런 사고실험들의 묘미는, 조금씩 상황을 달리 설정해서 근본적으로 같은 문제에 대해 다른 태도를 유도한다는 데 있다. 예컨대 주디스 자비스 톰슨은 매우 정교하게 설계한 사고 실험으로 낙태에 관한 도덕적 딜레마를 소개했다. 여기에 옮기기에는 좀 긴 이야기이므로 책에서 찾아 보시길.



설의 중국어 방 논증에 대해, 비판론자들은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이 문제다, 즉 '그 사람'은 중국어를 이해하지 못해도 '시스템'은 중국어를 이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설은 이에 대해 사고실험을 변경했다. 기호 책을 참고하는 대신, 이 사람이 기호 책을 다 외워서 일을 한다고 바꾼 것이다. (432) - 나는 이 변경이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시스템'까지 갈 것도 없이 '그 사람'이 중국어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설의 헛소리는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철학적 질문을 다시 촉발한 것 뿐이고, 그 질문에는 답이 없다. (적어도 나는 설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설의 중국어 방 사람은 중국어를 이해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셔틀 버스에서 내리면서 허둥지둥 적은 나의 메모는 이렇다. '나느 기본적으로 설의 논증이 유아론이라고 생각하는데' - 맞다. 설의 논증은 유아론과 닮았다. 설의 중국어 방 사람이 중국어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나 빼고 전부 안드로이드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설의 중국어 방 논증에 대한 훌륭한 반박의 하나로 장석권의 <데이터를 철학하다>를 추천한다.)



싱어는 철학의 가장 훌륭한 전통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끊임없이 기존의 전제들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의 철학은 그가 사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445쪽) - 쇼펜하우어는 내로남불 쓰레기고, 하이데거는 나쁜 놈이지만, 싱어는 적어도 사람으로서는 대단히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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