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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May 12. 2021

출퇴근의 종말

[책을 읽고] 이언 게이틀리, <출퇴근의 역사>





재택근무로 출퇴근이 없어질까? 많은 직장인들이 궁금해 하는 질문이다. 그러나 빅토리아 시대에 철도와 함께 등장한 출퇴근이란 개념은 원래 이동의 자유를 상징했으며, 사회적이나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의 지위가 보장된 사람들에게나 허용된 사치였다.



상당한 두께를 자랑하는 이 책은 빅토리아 시대에서 시작하여 영광의 1920년대, 양차 대전, 그리고 고속 경제성장기를 지나 현재 시점까지 출퇴근의 양상을 상세히 묘사한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은 역시 출퇴근의 종말 여부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단언한다.



원격 근로를 꿈이 아닌 가능성으로 만들어놓은 기술업계가 근로자들에게 회사 구내에 물리적으로 현존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만큼, 가까운 미래에든 먼 미래에든 통근이 완전히 사라질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 같다. (507쪽)



또한 저자는 우리가 자동차를 소유하는 이유가 단지 통근을 위해서가 아님을 지적한다. 자동차에 대한 소유욕은 사냥과 채집 본능에서 유래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러나 통근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에 좌절할 필요는 없다. 통근은 실제로 우리 삶을 향상시켰기 때문이다. 통근이라는 개념이 세상에 나오기 전, 인류는 집 근처에서밖에는 일을 구하지 못했다. 통근으로 우리의 삶이 황폐해진 것이 아니라, 통근 덕분에 우리는 직장 근처에서 살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쟁취한 것이다.



그러나 과연 납득이 되는가? 롤프 도벨리는 <불행 피하기 기술>에서 반드시 불행지수를 높이고야 마는 요인의 하나로 '긴 통근 거리'를 꼽았다. 심지어 그 목록의 제일 첫 번째 자리를 차지했다.



수많은 미국 회사들이 콜센터를 인도로 옮기는 바람에 인도의 대도시들에서는 통근 지옥이 더욱 악화되었다. 통근지옥의 수출이라 할 만한 현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단지 과거에 훌륭한 역할을 했다고 해서 통근을 찬양할 수는 없는 법이다. 현대인들에게 통근은 스트레스의 주원인 중 하나다.



나는 통근지옥을 끝낼 가장 유망한 기술이 자율주행이라 생각한다. 2020년에는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될 것이라고 내가 읽은 책들은 예측했다. 그러나 지금은 2021년이고,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된 나라는 세상에 없다. 기술의 문제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가장 큰 장애는 법과 제도다. 기술 때문이 아니라 법과 제도 때문에 세그웨이가 상용화되지 못할 것이라 장담했던 제프 베저스의 말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그러나 법과 제도가 느리게 변화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 우리 인간들의 심리적 장벽 아닐까? 오늘도 나는 전자 결재 문서를 종이 위에 출력해서 상사에게 들고 간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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