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페드로 도밍고스의 <마스터 알고리즘> (9)
이제 훨씬 말랑말랑한 얘기다. 서두에서 얘기했듯이, 이 책의 제10장은 머신러닝으로 인해 변화할 우리의 미래에 관한 그의 통찰을 담고 있다. 이 부분만으로도 서점가에 깔려 있는 인공지능 관련서적의 95%는 가뿐히 뛰어 넘는다. 자, 그럼 인공지능과 관련한 수많은 질문에 페드로 도밍고스가 어떤 답을 던져주는지 살펴보자.
도밍고스는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에 관해서 무려 즉문즉답을 한다. 인공지능이 전쟁에 활용되겠지만 이는 좋은 것이다. 인간이 피를 흘리는 대신 기계가 다칠 것이다. 전쟁의 잔혹함과 비극은 옛말이 될 것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시킬 것이다.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한다는 개념은 과거의 유물이 되고, 사람들은 자아 실현, 인간 관계, 그리고 영성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에서 해방된 인간 사회는 먼 미래의 것이다. 다가올 가까운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인공지능에 의해 사람들의 직업이 사라지고 노동인구가 전체 인구의 50% 이하로 떨어지면, 정치적 변화가 불가피해진다. 다수가 된 실업자들에 의해 재분배 시스템이 바뀔 수밖에 없다. 기본소득의 등장이다. 부가가치의 공식에서 인간 노동이 빠지는 미래에 승자는 인간 이외의 자원이 많은 나라들이다. 도밍고스는 캐나다 이민을 추천한다. 농담처럼 들리지만 그렇게 치부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디지털 반쪽이란 개념도 흥미롭다. 이는 사이버 세계에서 당신을 대신할 대리자다. 디지털 반쪽은 인공지능으로 구현될 것이므로 사실상 당신이 하는 웬만한 행위는 다 할 수 있다. 예컨대 당신 대신 면접을 보고, 회의에 참여하고 은행 일을 볼 것이다. 그러나 데이터는 언제나 침해에 취약하다. 디지털 반쪽을 포함해서, 당신의 데이터를 관리하는 산업이 등장할 것이다.
노동조합과 유사하게 당신의 데이터 권리를 지키는 데이터 조합이 발생할 것이다. 조합은 회원 간 데이터를 간접적인 방식으로 교환한다. 즉 사단이나 재단이 사람 또는 돈을 매개로 결합하듯이, 데이터 조합은 데이터를 매개로 결합한다. 조합에서 공유되는 데이터는 조합원들의 이익을 위해 사용될 것이다. 또한 조합은 조합원들의 이익을 대변해서 정치권에 목소리를 낼 것이다.
자, 이제 가장 중요한 문제를 살펴보자. 인공지능이 인류에게 위협이 될까?
즉답은 '아니오'다. 이유는 컴퓨터에게 고유 의지가 없기 때문이란다. 내가 여러 권의 책에서 지겹게 본 논거다. 생각해보자. 스티븐 호킹이나 일론 머스크가 인공지능 전문가들보다 머리가 나빠서 저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적어도 인공지능이란 전문분야에서는 그렇지 않겠느냐고? 그렇다면 과학철학자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다. 과학철학이 필요한 이유는 눈앞의 과제에 빠져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 과학자들을 대신해서 누군가가 큰 그림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과 관련한 문제에도 같은 접근이 필요하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수십 권의 인공지능 관련 서적 중에서 가장 뛰어난 책 중 하나는 인문학적 시각에서 데이터 과학을 바라본 <데이터를 철학하다>였다.
페드로 도밍고스의 생각을 조금 더 따라가보자. 책을 잘 쓰는 그답게, 그는 빼어난 비유를 들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DNA 두 가닥이 20억 년 전에 이런 대화를 했을지 상상해 보자는 것이다.
"우리가 다세포 생물을 만들기 시작하면 그들이 우리를 지배할까?"라고 말한다. (453쪽)
빨리감기를 하여 현재로 돌아와 보면, DNA는 그냥 잘 살아 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 어떤 때보다 안락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도밍고스는 말한다. 안락함이라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바로 영화 <매트릭스>에서 고치 안에서 꿈을 꾸는 인간들이다. 그들은 맛있는 식사도 하고 클럽에서 춤을 추기도 하며, 여행도 다닌다. 또 하나의 이미지는 인간들 덕에 그 어느 때보다 번성하는 가축들이다. 인간이 인공지능의 가축이 되어 안락하게 살아간다면, 과연 그것이 바람직한 미래일까?
도밍고스는 주장한다. 우리가 자유 의지를 사용하여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는 행위는 여전히 우리의 DNA가 생존하는 데 최선인 방법과 일치한다고 말이다. 일단 이 논거는 위의 '매트릭스' 사례로 충분히 논파가 된다고 생각한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그의 다음 말이다.
우리 자신을 실리콘 전자 회로로 바꾸겠다고 결정한다면 우리는 DNA의 종말이 될 것이지만 그때라도 장장 20억 년이 흐른 뒤다. (454쪽)
위의 가정이 현실이 된다면, DNA는 과연 20억 년 전에 큰 실수를 한 것이다. 시간의 스케일 때문에 문제의 핵심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강 인공지능의 등장과 특이점의 도래는 인간이라는 생물체에게 아주 근본적인 변화를 강요할 수 있다. 그리고 강 인공지능의 핵심에 '마스터 알고리즘'이 있다.
도밍고스는 또한 우리가 동물들에게 그렇게 했듯이, 인공지능에게 '권리'를 주려는 움직임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움직임이 더 나아가 인공지능에게 우리가 통제권을 내놓는 사태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피터 싱어를 위시한 수많은 철학자들이 동물 권리를 아주 진지한 자세로 옹호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심각하게 대하지 않으며, 동물 권리를 옹호하는 사람들조차 그것이 자신들에게 실질적인 불편함으로 다가오면 생각을 바꿀 것이다. 그러나 영화 <A.I.>에 나오는 것처럼 안드로이드가 반려동물을, 더 나아가 인간 아기의 지위를 대체할 세상은 얼마든지 상상 가능한 영역 안에 있다.
많은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컴퓨터가 갑자기 인간을 배신하는 시나리오는 아마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노화라는 현상에서 뚜렷이 나타나듯, DNA와 그 운반체의 이해관계는 결코 일치하지 않는다. 마찬가지의 일이 우리를 돕기 위해 탄생한 똑똑한 컴퓨터 친구와 우리 사이에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그런 가능성은 0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저 속만 시원할 뿐인 공허하기 이를 데 없는 즉문즉답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