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읽은 책들
6월 중순에 굉장한 책들을 연이어 만났는데, 대니얼 데이비스의 <뷰티풀 큐어>와 데이비드 스피겔할터의 <통계학 수업>이다. 애덤 벤포라도의 <언페어>도 훌륭하다. 테드 창의 <네 삶의 이야기와 다른 단편들(Stories of Your Life and Others)>도 읽고 있다. 단편을 하나씩 아껴 읽고 있는데, 7월의 책은 아마도 테드 창이 차지할 것 같다. 특히 <네 삶의 이야기>가 너무너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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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벤포라도, <언페어>
경찰-사법 시스템의 허점을 지적하고, 더 나아가 대응책을 처방하는 책. 책 서두에는 12세기 유럽에서 벌어졌던 우스꽝스러운 재판이 소개된다.1000년 쯤 뒤, 우리 후손들은 우리의 사법 체계에 대해 똑같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형사범의 90%가 자백에 의존해 유죄 판결을 받고, 검사는 증거를 조작하며, 피해자는 엉뚱한 사람을 가해자로 지목한다. 목격자는 조작된 기억을 증언하고,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증언 석에 출두하여 의뢰받은 쪽을 위해 거짓말을 한다. 교정 시스템은 재범 발생 방지라는 본 목적은 외면하고 정의라는 미명하에 복수를 행한다.
이 책의 굉장한 장점이라면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아바타들이 등장하는 온라인 가상재판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외모, 목소리, 헐리웃 액션 등으로 인한 편견과 인지적 오류를 배제한 재판이 가능해진다. 더불어 더 많은 사람들이 배심원 출석을 피하려고 갖은 핑계를 대지 않아도 된다.
이강민, <나는 부엌에서 과학의 모든 것을 배웠다>
전주에 '빌바오'라는 특이한 식당을 운영 중인 저자, 찾아보니 전북대 분자생물학과 교수다. 멋진 인생인 듯. 분자요리, 특히 수비드 요리법을 지지한다.
- 진공 보관하던 식재료에 양념을 넣고 진공 포장을 한 뒤 항온수조에서 장시간 익히면 수비드 요리가 된다.
- 메틸셀룰로스는 열을 가하면 젤을 형성한다. 그래서 핫(hot) 아이스크림 재료로 사용된다.
- 자르지 않은 사과에서는 페놀과 페놀라아제가 따로 존재하지만, 사과를 자르게 되면 둘이 섞여 반응하면서 산화 방지 기능이 있는 멜라닌을 만든다. 이것이 사과의 갈변 현상이다.
- 소금은 쓴맛을 중화하고 (설탕보다 쓴맛 제거 효능이 탁월하다) 단맛 등 다른 주요 맛과 향은 더욱 강하게 한다. - <짠맛의 힘>에 나온 이야기 재확인.
라라 필딩, <홀로서기 심리학>
자신을 잘 관찰하면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 힘든 상황에 닥치면 사실, 생각, 감정, 신체 감각, 행동 충동 등 5가지를 적어보고 차근차근 살펴보자.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게 답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예컨대 남자 친구가 전화를 하지 않아 화가 났고, 당장 헤어지자고 말하고 싶다면,
- 사실: 남자 친구가 전화를 안 했다.
- 생각: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 감정: 화 난다.
- 신체 감각: 가슴이 쿵쾅대고 얼굴이 달아오른다.
- 행동 충동: 당장 헤어지자고 말하고 싶다.
+ 화가 나서 도저히 참을 수 없다면, 얼음을 이마에 대고 30초 동안 올린 뒤 숨을 참아보자.
박성덕, <당신, 힘들었겠다>
부부관계에 대해 많이 일깨워준 책. 예전에 <화성 남자, 금성 여자>를 읽었음에도 전부 다 잊어먹어버린 나도 참 대단하다.
- 남자는 아내와 한 공간에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 배우자의 존재 의의를 느끼고 결혼 생활이 잘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내는 친밀감을 느끼지 못하면 불안하고 힘들어한다.
- 남자가 남편이 되는 데 드는 시간은 여자가 아내가 되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훨씬 길다. 대개의 경우 부부싸움은 남자 대 아내의 싸움이다.
- 부부 사이에 가벼운 외도는 없다. 배우자의 외도는 커다란 PTSD를 남긴다.
- 아내의 기분에 귀기울이기 위해, '구나법'을 실행해보자. 아내가 '영숙이 때문에 속상했다'고 말하면 '영숙 씨 때문에 속상했구나'라고 대꾸해주면 된다. 아내는 영숙 씨를 죽이려 한 것이 아니고, 그저 속상한 마음을 남편이 알아주기를 바랬을 뿐이다.
- 부모-자녀 관계 연구의 권위자 존 가트만(John Gottman)은 '비판은 비판일 뿐이다. 건설적인 비판은 없다'라고 말했다. 모든 비판은 당사자를 고통스럽게 한다.
진성룽, <상대를 꿰뚫어 보는 FBI 심리 기술>
간만에 1점. 같은 책 안에서 서로 다른 내용을 얘기할 정도로 막돼먹은 책. 그게 아니더라도 쓸 데 있는 얘기가 하나도 없는 무쓸모 책이다. 딱 한 가지 사례만 보면,
- 눈이 왼쪽 위를 향한다면 그저 상상 중이라는 뜻이고, 오른쪽 위를 향한다면 회상 중이라는 뜻이다. (192)
- 눈이 왼쪽 위로 움직이면 지난일을 회상 중이다. (232)
이렇게 같은 책 안에서 자아의 싸움이 한창이다. 참고로, 눈동자 독법은 NLP 등에서 한 때 유행했던 것이지만, 지금은 폐기된 이론(?)이다.
다르시니 데이비드, <1달러의 세계 경제 여행>
가볍게 읽기 좋은 경제 이야기. 책의 최후반부에 가서 저자의 진짜 주장이 드러난다. 요점은 부정의와 불공정을 양산하는 세계화와 천민 자본주의에 대항해 정부가 이전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기본소득제를 도입해야 한다.
- 유가 하락이 휘발유 가격에 잘 반영되지 않는 이유는, 정부가 세입 감소를 꺼리기 때문이다. (180)
- 베를린은 주택 자가 소유 비중이 유럽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지만, 임대 수요가 워낙 많고 런던 부동산 가격이 너무 올라서 요즘 외국인들의 투자금이 몰려들고 있다. (231)
- 유로권 출범으로 독일이 가장 큰 이익을 얻었다. 비유하자면 업힌 쪽보다 업은 쪽이 더 이익을 본 것이다. (254) - 그리스 경제 위기 때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나지 않았던가.
- 독일 등 여러 나라의 연구에 따르면, 이민자 유입은 유입국에 순이익을 가져온다. 다만, 2015년 이후에는 비숙련 노동자들의 유입이 많아지면서 이 현상의 지속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263)
- 이주민들에게 가장 위협을 느끼는 것은 임금과 기술이 낮은 저숙련 노동자들이다. 옥스퍼드 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이주민 유입으로 인해 이들의 평균 임금이 2% 정도 하락한다고 한다. (264)
- 금융 위기 이후 죄 없이 대가를 치르는 국민들을 위해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할까? 탐욕스러운 금융 시스템의 일탈로 인해 생겨난 어려움에도 정부는 더 빚을 내서 도와줄 수 없다면, 앞으론 어떻게 해야 하느냔 말이다.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다. 사람들에게 더 많은 돈을 주는 것이다. (339쪽)
- 금융 위기 후 10년, 사상 최대의 돈이 풀려 있지만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돈에 목말라한다. 치료제로 뿌린 저금리가 욕망을 부추기고 말았다. (345)
오다카 토모히로, <기초부터 배우는 인공지능>
파이썬은 잘 다루고 인공지능만 기초인 사람에게는 적당할 듯. 책은 그야말로 교과서처럼 쓰여 있어 문어체가 난무하고 읽기가 힘들다. 신경망 관련해서는 아주 해괴한 설명이 나오는데, 거의 오류라고 봐도 될 지경이다. (절편을 더하는 대신 뺀다고 설명해서 좋은 점이 뭐가 있을까?) 볼츠만 머신에 관한 설명도 어디에서 복붙이라도 했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게 써놨다. 다만 책 초입에 나오는 '노 프리 런치 정리'는 나름 재미있다. (뭐 대단한 정리는 아니고 날로 먹으려 하다가는 큰코 다친다는 얘기다.)
윤영호, <습관이 건강을 만든다>
암환자들을 위한 건강 습관을 소개하는 책. 대개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상식이며, 당연히 보통 사람들에게도 유효하다. 그런데 이런 책에서 종교를 팔면 그게 책 전체의 신뢰도를 높인다고 생각하는 걸까? 교정도 거치지 않았는지 오탈자가 널려 있다. 그런데 책 말미에 나오는 '마음 상태 점검하기'는 꽤괜찮아 보인다. 한번 테스트 해보자.
- 나를 힘들게 하는 스트레스는 무엇인가?
- 스트레스가 심할 때 나의 반응은 어떤가?
- 지난 1주일 중 가장 감사했던 일은 무엇인가?
- 가장 바꾸고 싶은 감정은 무엇인가?
- 1년 후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 앞으로 긍정적인 마음을 갖기 위해 무엇을 실천할 것인가?
최정은 등, <취미가>
이런저런 사람들의 이런저런 취미에 대한 이야기. 일부 사람들은 덕업일치인지 자기 직업에 관한 이야기를 써놓았다. 부럽긴 하지만, 취미라는 단어는 밥벌이를 의미하지는 않지 않나? 우타노 쇼고의 <절망노트>를 읽어보고 싶은데, 리디셀렉트에 없네.
솔다드 브라비, <만화로 보는 성차별의 역사>
상식 수준으로 보기에 무난한 책. 별 내용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