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닐 타이슨, <스페이스 크로니클>
아포피스(Apophis)는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죽음의 신이다. 그런데 이 단어를 구글 검색하면 웬 천체 사진이 최상단에 등장한다. 이 분은 2029년 4월쯤 우리를 방문할 예정인데, 통신 위성보다도 가까운 거리로 지구를 스쳐갈 것으로 예상된다.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2029년에는. 그러나 아포피스는 2036년에 다시 우리를 방문한다. 그리고 이 때는 별일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2036년에 이 소행성이 하와이와 캘리포니아 사이의 태평양을 강타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2029년 궤도 자료를 고려한 추가 분석이 필요하다. 정말로 충돌이 일어난다면, 하와이에 관광을 가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작년에 다녀와서 참 다행이다. 그것도 코로나 봉쇄 딱 한 달 전에.)
1996년에 1600만 킬로미터 거리로 지구를 스쳐갔던 햐쿠타케 혜성은 근일점 도달 4개월 전에 발견되었다. 궤도면이 다른 혜성들과 크게 달라서 아무도 그 일대를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120쪽)
닐 타이슨이 <스페이스 크로니클>에서 줄기차게 주장하는 포인트는 단 하나, 우주과학에 인류가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류가 우주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낸 발명품들이 없었다면, 우리 생활은 매우 불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가 우주과학에 더 투자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공룡과 같은 신세가 되지 않기 위해서다. 실제로 아포피스는 우리를 향해 날아오고 있으며, 햐쿠타케는 겨우 4개월 거리에서 깜짝 등장했다.
저자는 말한다. 공룡은 운석 충돌로 인한 멸망을 피할 수 없었지만, 만약 인류도 그런 길을 간다면 나중에 그 흔적을 발견한 외계인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할 것이라고. 그 이유는 인류의 현재 과학 수준이 그런 참사를 막을 수 있는 정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궤도 수정이다. 쓸데 없이 공간만 차지하고 있는 미국과 러시아의 수많은 ICBM 중 하나를 날려 날아오는 천체를 요격하면 된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쉬운 문제는 아닌데, 우주에는 대기가 없어 그야말로 미사일을 명중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대기권에나 존재하는 충격파 같은 것을 기대할 수 없으므로, 당구공 측면을 맞추는 정확도를 보여줘야 한다.
미사일 요격이 제일 저렴한 방법이지만, 생각해보면 더 좋은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천체에 추진체를 부착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탐사선에 자주 쓰이는 방사성 동위원소 열전기 발전기를 써도 되고, 태양풍을 받을 수 있도록 적당한 크기의 '돛'을 달아줘도 된다.
단지, 이 모든 논의의 시작이 아래와 같은 문장에서 시작된다는 점이 아쉽다.
확률적으로 발생 가능한 사건이 오랫동안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이제 일어날 때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127쪽)
과학자라는 사람이 통계학의 기본도 모르는 소리를 하는 것을 보면, 통계학은 과연 쉬워 보이지만 어려운 학문이다.
앞서 말했듯 이 책의 주장은 우주과학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세수의 단 0.5%만이 NASA에 쓰이고 있다는 말을 열 번은 반복하는 것 같다. 기고문, 블로그 글, 그리고 방송 출연 대본 등을 모아놓은 책이라 책이 전반적으로 체계적이지 못하다. 명확하게 대중을 타깃으로 하는 글들이라 위트도 있는 편이고 가끔은 재미있는 과학 상식도 등장하지만, 이 두께의 교양과학서에서 독자는 더 많은 과학 이야기를 접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가 과학 발전에 더 투자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백번 옳다. 인류는 냉전이라는 초긴장 상태를 우주 개발 경쟁이라는 멋진 그림으로 바꾸었다. 과학 발전을 위해 화력전이나 냉전을 되풀이해야 할 정도로 인류가 미개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야 공룡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우주에 대한 지식이 더 이상 확장되지 않는 날이 온다면, 우리는 모든 천체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다는 과거의 우주관으로 되돌아갈지도 모른다. 이런 세상에서 자원이 부족한 나라의 국민들은 오직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무기를 휘두를 것이다. 우주적 관점을 포용하는 문화가 되살아나지 않는 한, 이것은 우리의 마지막 모습이 될 것이다. (58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