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앤드루 양, <보통 사람들의 전쟁>
책이 주는 인상
일자리가 사라지는 세상에 대한 대처법은 뭘까? 저자의 대답은 명확하고 대담하다. 기본소득과 정부 정책이다. '인간적 자본주의'를 만들자는 것이다.
다만 이 책에는 <플랫폼 제국의 미래>와 같은 통찰도, <공유경제는 공유하지 않는다>나 <직장이 없는 시대가 온다>에서 볼 수 있는 폭넓은 사례 소개도 없다. 그 대신, 단 한 사람에 불과한 저자 자신의 경험담이 넘쳐난다.
천민자본주의의 승자라고 할 만한 저자가 '보통 사람들'을 걱정하는 것은 칭찬할 만하다. 그러나, 책 곳곳에 과할 정도로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저자의 모습은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혹시 위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지인 다섯 명이 모두 대졸자일 확률이 0.36%라는 말을 하는 걸 보면 무식하고 (확률을 곱하려면 전제가 필요하다), 아무도 답을 내놓지 못하는 의료수가제의 정답이 고정급여라고 단정하는 걸 보면 오만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뜬금없이 2쪽에 걸쳐 부모와 창업가의 공통점을 나열하는 걸 보면 웃기지도 않는 개그를 강요하는 꼰대의 모습까지 보여준다. ('글의 맥락과는 별 상관 없지만,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지 ㅋㅋ') 아인 랜드를 사상가라고 얘기하는 부분은 일견 비꼬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 사람은 정말 그렇게 생각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저자는 확실히 위선자다.)
억만장자인 저자는 자동화와 AI로 인해 벌어질 '보통 사람들의 전쟁'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런 입장인데도 '보통 사람들'을 걱정해 주는 것은 과연 비범하다. 그러나 책을 읽다보면 그것이 과연 진심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
제리 카플란과 비교해보자
<인간은 필요없다>에서 제리 카플란은 같은 주제를 대단히 조심스럽게 꺼낸다. 그는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부터, 이후의 이야기가 대단히 불편할 수 있음을 양해해 달라고 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쉽게 논점을 이해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 말한다. 그가 한 이야기는 간단히 말해 다음과 같다.
제리 카플란은 엄청난 규모의 대저택에 산다. 150명이 파티를 할 수 있으며, 꽤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스크 영화 관람실도 있다. 그러나 그는 미국 전체 부자 상위 1%에 들지 못한다. 반면, 그가 최근 고용했던 어떤 사람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부업까지 하면서 어렵게 사는 사람인데, 그는 미국 전체로 볼 때 중위소득 이상을 버는 사람이다. 바로 그것이 빈부 격차의 현실이며, AI는 그것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제리 카플란 같은 사람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기는 하지만, 굳이 비교를 해보자면 이 책의 저자인 앤드루 양은 같은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전개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남부럽지 않게 살아왔으며 늘 우수한 성적으로 꽃길만 걸었다. 변호사로 성공했고, 이후에는 창업자로 변신해서 수많은 회사를 만들고 돈도 엄청나게 벌었다. 사람들은 비슷한 부류끼리 뭉치기 마련이라,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보통 사람이 아니다. 우버 운전하고, 마트 캐셔 하는 사람들이 보통 사람들이다. 그들의 삶은 자동화로 위협받을 것이다. 트럭 운전사는 AI가 곧 대체할 직업인데, 걸프전 참전 용사의 5%가 트럭 운전사로 일하고 있다. 단지 한 사람이 앞서기만 한다면, 그들은 도로를 점거하고 미국을 폭력으로 물들게 할 것이다. 그런 미래가 두렵지만,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저자의 진정한 대답은 각자도생이 아닐까
저자는 암울한 미래를 그려 보인다. 어쩌면 그것이 이 책에서 얻어갈 최대의 화두일지도 모르겠다. AI의 도래로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그러나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저히 가능해 보이지 않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빈부격차와 더불어 좌우격차가 역사상 최대인 바로 이 시점에 말이다. 트럼프가 당선되는 시대에 '인간적 자본주의'라니, 진심으로 하는 말일까.
저자는 말한다. 우리의 미래는 <헝거 게임>의 계급사회이거나, 과테말라처럼 시시때때로 총격전이 벌어지는 사회일 것이라고.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결국 각자도생해야 한다. 할 수 있다면, 저자처럼 '보통 사람들'의 범주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것이 저자의 진심이 아닐까.
사족
빈 건물은 다 위험하지만 유령 쇼핑몰은 더하다. 디캡 카운티에 살 때 우리 아파트에서 가장 가까운 쇼핑몰은 두 군데가 있었다. 왼쪽으로 가까운 곳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하지만, 오른쪽으로 조금 멀리 떨어진 쇼핑몰은 유령 쇼핑몰이 되기 직전이었다. 그런데도 그쪽으로 다녀야 했던 이유는 학교 셔틀버스가 그쪽으로 오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그쪽 쇼핑몰이 훨씬 더 크고 번화했던 증거다. AMC 영화관과 대형 쇼핑 센터가 즐비해서 한 때의 위용을 알려주는 듯하다. 그러나 현실은 초라했다. 여름 아침 시간에는 에어컨을 약하게 틀어 실내에서도 더울 정도였다. 이렇게 쇼핑몰이 쇠락하는 데는 난개발을 비롯한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은 온라인 쇼핑의 부상이다.
나는 2010년 경부터는 오프라인으로 장을 보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 공부하게 되었을 때, 쇼핑 걱정이 조금 되었는데, 그것도 기우였다. 인스타카트와 도어대시를 포함한 여러 업체들이 이미 경쟁 중이었다. (물론 서비스 품질은 조악하기 이를 데 없었다. 두 번에 한 번, 즉 50%의 확률로 오배송을 당해야 했다.) 그런데 그나마 쓸 일도 많지 않았다. 아마존 프레시가 훨씬 더 좋은 품질의 서비스를 그다지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제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아마존과 같은 플랫폼 거대기업이야말로 일자리를 사라지게 하는 첨병이다. 자세한 내용은 스캇 갤러웨이의 <플랫폼 제국의 미래>에 생생하게 설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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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만한 것들
- 한때 대단한 기세를 자랑했던 화물 노조. 그러나 현재 화물차 기사의 노조 가입률은 13%에 불과하다. 지입차량과 외주화의 결과다. (111)
- 인간성과 일 사이에는 음의 상관관계가 존재하며 돈이 연루되어 있다. (147)
- "요즘 우리 (부동산)회사는 위험스러운 투자는 피하고 있어. 대신 트레일러 파크를 사들이고 있지." (194)
- 노동인구에서 사라진 이 남성들은 종일 무엇을 할까? 비디오 게임에 빠진 사람이 많다. (257)
- 게임은 열등재다. 소득이 적을수록 더 많이 소비하는 재화다. (292)
- 스티븐 호킹은 2015년에 이렇게 말했다. "기계 소유자가 부의 재분배에 반대하는 로비에 성공한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비참한 가난 속에서 살아갈 것입니다. 갈수록 기술이 불평등을 심화하는 현재의 모습을 보면 미래가 이 방향으로 가는 듯합니다." (329) - 역시 호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