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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Dec 03. 2017

준비 부족이 자영업 지옥을 만든다

[서평] <골목의 전쟁>

투자 관련 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꿈'이나 '하고 싶은 일' 같은 표현이 자영업을 다룬 책과 기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만 해도 그렇다. 그러나 이런 이상주의는 성공한 사업을 치장하는 데 유용할지 몰라도, 사업을 유지하는 것에는 도움이 안 된다. 투자의 관점으로 자영업을 보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 (249쪽)

이 책을 통해 저자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을 아마도 저것이었을 것이다. 은퇴자들이 준비할 시간도 별로 없이 자영업에 뛰어든다. 하지만 막연한 희망만 가지고 뛰어들 것이 아니라, 투자의 관점에서 세밀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퇴직자들의 창업에는 확실히 시간이 부족하다. 하지만 성급하게 내리기에는 너무나 큰 결정이 아닌가.

이 책이 제시하는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자영업 지옥의 현실은 불공정한 사회나 법규의 미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시장경제의 자연스러운 힘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둘째, 자영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부는 문제를 제대로 파악해야 하고, 자영업에 뛰어드는 사람들은 좀 더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한다. 셋째, 그럼에도, 미래는 밝다. 자영업 지옥이라는 현실의 이면에는 자영업자들의 폐업으로 인한 경쟁 감소가 있다. 시장의 힘에 의해 자영업자 수가 감소하면, 자영업 지옥은 자연히 해소될 것이다.



유행을 따른 창업이 위험한 이유

이 책은, 대왕 카스테라 프랜차이즈가 몰락한 것이 방송사의 어떤 프로그램 때문이 아니고, 업계의 과당경쟁 때문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시작한다. 그러한 황색 저널리즘에 휘둘린 소비자들은 원가 운운하면서 '착한 가격'을 강요하게 되고, 결국 시장에는 싸고 질 낮은 상품만이 남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대왕 카스테라 프랜차이즈만 해도, 4년 만에 16개의 업체가 난립했고, 업체 하나당 하루 한 개 이상의 업소를 오픈했다. 방송이 아니었어도, 앞서 나타났다가 사라져갔던 수많은 프랜차이즈와 마찬가지로 쇠락할 산업이었다.

리처드 번스타인의 이익 예상 라이프사이클을 응용한 소비자 관심 라이프사이클도 흥미롭다. 물론 도표로 만들어서 시각적으로 한눈에 들어오게 한 것은 기발하지만, 그 내용은 매우 단순하다. 소비자의 관심은 최저점에서 시작하여 점점 커지다가 최고점을 지나면서 감소한다. 소비자의 관심이 어느 정도 수준이 되는 시점, 즉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는 시점부터 창업이 활발해지는데, 소비자 관심이 최고점을 지나고 나면 과당경쟁 및 수요감소로 적자를 면하기 어렵다.

따라서 대중이 주목하는 시점에서 소비자의 관심이 최고조가 되는 사이의 짧은 기간이 실제로 이익을 낼 수 있는 구간이다. 그 기간은 7개월에서 1년 정도밖에 안 된다. 우리나라 자영업계 현실에 비추어보면, 권리금을 포함한 초기 투자금 회수에 1년은 걸리는 것이 보통이므로, '요즘 뜨는 아이템'으로 창업하는 것은 위험천만하다는 것이 결론이다.



이 책에서 가장 실망스러웠던 부분은 가격의 헬적화, 즉 우리나라에서만 비싼 가격이 매겨지는 현상에 대한 분석이다. 특히 식료품 가격이 비싼 우리 현실에 국한해서 설명하면, 그 원인은 유통업계의 장난질이 아니고, 우리 농업의 낮은 생산성, 그리고 수입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때문이라는 것이다. 경제주체의 전략이라는 부분이 빠진, 맥없는 분석이다.

가격 차별이 가능한 곳에서 가격 차별이 일어나는 것은 경제학의 기본 중 하나다. 농산물을 포함한 식료품은 재판매가 어려워 쉽게 시장 분리가 가능하고, 세계무역질서에서 농산물은 아직도 관세 및 비관세 장벽에 의해 심하게 보호되는 영역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식료품 가격이 높은 이유는 첫째, 국내 생산 식료품이 관세 및 비관세 장벽에 의해 보호되고 있기 때문이고, 둘째, 수입 식료품 가격결정주체가 가격 차별 정책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스타벅스 커피 가격이 우리나라에서 유독 비싼 이유는 가격 차별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비싼 임대료 때문에 스타벅스 커피 가격이 비싸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것은 선후 관계가 뒤집힌 것이다. 임대료 역시 다른 재화나 서비스의 가격과 마찬가지로 시장에서 가용한 정보를 모두 감안하여 결정된다. (불완전 정보는 적절히 감안하자.) 

우리나라 커피 시장에는 스타벅스와 경쟁할만한 브랜드가 존재하지 않고, 커피는 시장 간 재판매가 불가능하므로, 가격 차별 원칙상 높은 가격을 매기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1인당 커피 소비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즉, 수요가 가격에 대해 비탄력적이다. 수요의 가격탄력성이 낮은 곳에 높은 가격이 매겨지는 것은 가격 차별의 기본이다. 가격 차별이 가능하기 때문에, 즉 우리나라에서는 커피를 비싸게 팔아도 되기 때문에 커피샵에 대해 건물주는 높은 임대료를 요구할 수 있게 된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누구 책임인가

다음으로는 상권 이야기가 이어진다. 자영업자는 리스크에 대한 태도를 기준으로 위험추구, 위험중립, 위험회피적으로 나눌 수 있다. 아직 발달하지 않은 상권에는 낮은 임대료를 기반으로 새로운 것에 도전할 의향이 있는 위험추구적 자영업자가 창업을 한다. 그리고 이들 중 몇몇이 성공하면 해당 상권은 발달하게 되고, 더 높은 임대료를 내고 비교적 안전하게 영업하려는 의지가 있는 위험중립적 자영업자가 모여든다. 높아진 임대료를 못 견디고 위험추구적 자영업자들이 떠나게 되면, 더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위험회피적 자영업자들, 특히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그 자리에 들어서게 되고, 해당 상권은 어디에나 있는 프랜차이즈 가게들만 있는 뻔한 상권이 되고, 소비자들의 외면 속에 쇠락하기 시작한다.



이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논의로 연결된다.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논의에서는 일반적으로 건물주와 중개업자가 악역으로 그려지는데, 중개업자는 소비자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는 상권의 미래가치를 현재 임대료에 반영하려고 하면서 건물 가격 역시 상응하는 수준으로 올리기 때문이다. 비싸게 건물을 구입한 건물주는 이미 구입가격에 반영된 임대료 인상분을 임차인에게 전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시장경제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가격 결정 메커니즘일 뿐이다.

정말 문제 되는 것은 임차인 간의 게임을 복잡하게 만드는 권리금이다. 임차인에 대한 법적 보호가 미비한 상황에서 임차인들이 자구책으로 마련한 권리금이라는 제도가 오히려 스스로의 목을 죄고 있는 형국이다. 위험중립 또는 위험회피적인 자영업자는 권리금으로 인한 차익을 창업 결정에 반영하므로, 이들은 어느 정도까지는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다. 임대료 인상분을 나중에 권리금으로 메꾸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상거래 관행을 생각해보면, 어떤 이유로도 권리금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저자는 권리금이라는 관행이 사라지는 것이 장기적으로 자영업자 자신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그 이전에 임차인에 대한 법적인 보호장치가 충분히 마련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비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에 있다. 아직은 OECD 최고 수준이지만,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현재 약 20% 수준이다. 폐업하는 자영업자 본인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자영업자 비율이 감소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자영업자가 전체 고용의 20%를 차지하는 상황에서는 자영업자 한 사람이 임금노동자 네 사람을 소비자로 맞이하게 되지만, 이 비율이 OECD 평균인 15%로 떨어지면, 자영업자 당 임금노동자는 5.7명으로 늘어난다. 이러한 추세, 그리고 수출이 견인하고 있는 우리 경제의 회복세를보면, 미래는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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