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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고 약한 채로 살 권리

[책을 읽고] 안희제, <난치의 상상력>

by 히말
나는 아마 낫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이들이 아마 낫지 않은 채로 살다가 죽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프고 약한 사람들이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아프고 약한 채로 살다가 편하게 죽어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344쪽)


나는 크론병을 모른다. 크론병의 고통을 모른다. 그러나 크론병이 무엇인지, 그 개념은 알고 있었다. 크론병 역시 아토피성 피부염과 같이 면역계 질환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토피성 피부염 환자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으니, '관해기'에 있다고 말해도 좋으려나. 하지만 나는 많은 의사들에게 '내가 본 환자들 중 가장 심한 케이스'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숙직 날짜가 잡히면 몇 주 전부터 두려워하며 비상 사태에 돌입하고, 모기가 나와 같은 공간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면 잠을 잘 수 없다. 신입 사원 교육 때는 아토피가 도져서 2주간 병원에 입원을 해야 했고, 그래서 신입 교육 성적 꼴찌를 받아 들기도 했다. 지하철에서 난생 처음 보는 사람이 치료법을 알려 주겠다고 말을 걸어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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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의 빈곤


동병상련이란 말이 있지만, 환자들은 서로 적이 되기도 한다. 신병훈련소에 모여 있던 환자들은 서로를 경원시했다. 상대방의 병은 가벼워 보이고, 내 병은 중해 보인다. 유아론은 가장 깨기 어려운 철학의 난제다. 그냥 다른 사람의 입장도 상상하지 못하는 우리가 어찌 남의 병을 상상할 수 있으랴. 나는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냉대, 무시, 조소를 무시하는 훈련을 해왔다. 그런데 대학교 친구 하나가 언젠가 내게 대뜸 말한 적이 있다.


"아토피 환자들, 훈련소에서 엄청 엄살 떨더라."


그 친구는 화상으로 병역 3급을 받았다. 나는 그의 화상과 그 고통을 모른다. 그도 나의 고통을 몰랐으니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과민성 대장 증후군에 관한 어떤 책에서, 저자는 과민성 대장 증후군 환자의 삶의 질이 아토피성 피부염 환자의 삶의 질보다 더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이건 웃기는 소리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과민성 대장 증후군도 겪었던 사람이다. 아토피성 피부염의 고통이 100이라면, 과민성 대장 증후군의 고통은 1조차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다른 사람의 죽을 병보다, 자신의 손가락 끝이 살짝 베인 것이 훨씬 중하지 않은가.



말하기 싫다


나는 아토피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한다. 지병이 있는 사람들은 대개 그럴 것이다. 내가 내 오랜 동반자인 아토피성 피부염에 대해 말하는 공간은 아토피 환우 카페에서뿐이다. 그나마 그것도 오래 전 일이다. 카페가 상업적으로 변질된 것 같아 발을 끊은 지 오래 됐다.


아토피 관련 산업은 정말 대단한 산업이다. 네이버에 그냥 아토피라고 검색해 보라. 혹자는 아토피성 피부염의 치료제가 나오지 않는 이유를 그 산업 규모에서 찾는다. 어떤 지병이든, 지속적으로 먹으며 관리하는 병으로 만드는 것이 해당 질환으로 먹고 사는 산업에 유리한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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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에 진물이 흘러 옷을 입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지금은 상황이 많이 좋아졌지만, 사회 생활 초기에만 해도 아토피성 피부염으로 결근을 하겠다는 내 말을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나마 나는 사회 생활을 시작하는 동시에 아토피성 피부염이 도져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적어도 과장님은 내 사정을 이해해 주신 것 같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눈꺼풀이 서로 붙어 일주일 넘게 눈을 뜨지 못하고 지냈다. 그때 아주 잠시나마, 시각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느껴볼 수 있었다.


이런 이야기, 남에게 한 적도 몇 차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지금 갑자기 이렇게 글로 풀고 있냐고?


내가 나의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다른 아픈 사람의 이야기를 읽은 후였다. (377쪽)



병에 대해 말하지 못하는 사회


병에 대해 말하기 싫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사람들이 남의 고통을 과소평가하는 것이 가장 클 것이다. 꾀병으로 치부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그깟 아토피 때문에 그러냐는 말을 평생 들어왔다. 새로 만난 사람에게 또 다시 그런 얘기를 들으면 그냥 그러려니 한다. 설명해 봐야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잘 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사람들이 질병과 장애에 대해 가지는 이중잣대다. 사람들은 질병과 장애로 고통받는 약자들을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런 이유로 배려를 구하는 이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본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만드는 데 아주 중대한 기여를 한 사람들이 있다.


이 사회에는 권력자들이 질병과 장애에 대한 편견을 활용하여 면피할 수 있는 구조와 정황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한 면피는 질병과 장애에 대한 편견을 재생산한다. (238쪽)


검찰 수사를 받게 되면 갑자기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는 재벌 총수들과 정치인들이 그들이다. 결과적으로, 정말 아픈 사람들은 꾀병이라는 의심의 시선을 감내해야 하고, 아프지 않지만 권력이 있는 자들은 질병과 장애라는 가면 뒤에 숨는 뻔뻔함을 향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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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질병이나 장애가 아니라 그 사람이 저지른 잘못이고, 아프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무조건 봐주는 사회이다. 아픈 척을 하더라도 통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239쪽)


아픈 사람의 고통을 꾀병이라 의심하는 대신, 우리는 아픈 사람이라도 악행을 저지르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매우 당연한 규범을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 지금의 어이없는 이중 오류를 없앨 수 있다.



평생의 동반자


아토피성 피부염은 나의 동반자다. 그걸 받아들인 지 꽤 오래된 것 같으면서도,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렇게 오래 전 일도 아니라는 걸 알고 놀라기도 한다. 나이 들면 좋아진다는 말을 지겹게 들어왔고, 신약이 임상 중이라는 뉴스도 십수 차례나 본 것 같다.


한 번은 임상시험에 자원하지 않겠냐는 권유도 들었다. 스위스에서의 일이다. 당시 프로토픽을 처음 써보고 크게 놀랐던 터라, 임상시험까지 참여하는 것은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다.


프로토픽은 내게 큰 도움이 되는 약이다. 비스테로이드성 약물이라 피부가 악화되는 부작용이 없다. 대신, 바르면 엄청나게 가렵다. 그런데 그것이 아토피로 인한 가려움과는 종류나 차원이 다르다. 피부에 열이 오르는데, 그 열감이 상당히 기분 나쁘다. 프로토픽은 국소면역억제제다. 면역반응이 억제되는 데서 부산물로 발생하는 열일 것이다. 기분 나쁜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기분 나쁜 것이 문제가 아니다. 가려운 것이 문제다. 가려운 병을 호전시키기 위해 가려움을 당겨오는 것 같은, 그런 약이다.


프로토픽의 등장으로 인해 나는 내 병을 훨씬 더 잘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스테로이드를 쓰면, 당장은 좋아지지만 사용량을 줄이는 즉시 반작용, 즉 리바운드가 온다. 리바운드의 정도나 시기는 가늠할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다. 스테로이드는 당장의 효과조차 가늠하기 어렵게 만든다. 의존성 때문에 더 강한 스테로이드를, 더 많은 양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부신이 망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운명을 저주하는 대신 지병을 동반자라 부르는 허세를 떨 수 있게 된 것은, 물론 체념이 가장 크겠지만 프로토픽이라는 신약이 도움을 준 측면도 크다.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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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치병으로 얻은 것


예전에 아토피 환우 카페에 누가 글을 올렸다. 아토피로 인해 좋은 점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갑론을박을 했으나, 아토피로 인해서 얻은 것이 있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결과다.


다만, 그 카페의 운영자는 아토피를 기회로 바꾼 사람이기는 했다. 그는 아토피 용품을 생산, 판매하는 사업가로 변신에 성공했다. 지병을 악운에서 기회로 바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흔치 않다.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썼다.


조금 특이한 태도도 하나 생겼다. 불안정한 것, 불확실한 것을 덜 두려워하게 되었다. (330쪽)


이 구절을 읽고 나도 생각해 봤다. 나 역시 불확실한 것을 두려워 한다. 나는 나 자신이 대단히 위험기피적이라 생각한다. 불확실한 것을 덜 두려워하게 되었다고 볼 여지가 없다. 다만, 아토피로 인해 계획하는 성향이 강해진 것은 맞는 것 같다.


아토피로 인해 내가 얻은 가장 큰 선물이라면, 운동에 대한 강박관념일 것이다. 실제로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운동을 빼먹는 것이 다반사이기는 하지만, 운동을 빼먹으면 죄책감에 사로잡히는 것도 사실이다.


요가를 알게 된 것도, 버피를 알게 된 것도 아토피 덕분이다. 목 디스크로 인해 요가는 이제 하지 못한다. 그러나 버피는 아직도 내게 최애 운동이다.


운동 덕분인지, 내 최대산소섭취량(VO2 Max)은 내 나이 또래에 비해 매우 좋다. 20대 기준으로 최고 수준에 육박한다. 잘은 모르지만, 버피 덕분이라 생각한다. 버피 중 내 심박은 170 이상을 유지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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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을 떠나 스펙트럼으로


아토피성 피부염은 이제 흔한 질병이다. 그러나 학창 시절에 나는 그깟 가려운 걸 왜 못참냐는 말을 늘상 들어야 했고, 사회 생활 초기에는 이 병을 구구절절 설명하느라 진을 빼야 했다. 그런 병이 어디 있냐는 조소와 비난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많이 좋아졌다. 2020년에는 '중증 아토피성 피부염'이 새로운 질병코드로 등록되기도 했다.


이 책의 저자가 겪고 있는 크론병도 불과 몇 년 전까지는 대단히 생소한 질병이었다. 이제는 병역 판정 기준에 명시적으로 등재될 정도로 잘 알려진 질병이 되었다. 그러나 세상에는 아직도 인정받지 못하는 고통들이 있다.


진단받지 못하는 아픔도 삶을 해친다. 꾀병 취급을 받고 적절한 의료적 조치를 못 받는다는 점에서 오히려 이름 있는 질병보다 더 크게 삶을 해치기도 한다. 나는 내가 진단명이 있고, 낙인이 사실상 없고, 국가로부터 의료비를 90% 지원받는 사람의 위치에서 얄팍한 인정 투쟁을 벌였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361쪽)


0과 1, 이진분류의 시대에 인류는 많은 것을 성취했지만, 동시에 또 많은 것을 잃었다. 남자 아니면 여자, 이성애자가 아니면 동성애자였고, 그 중간이나 7:3 쯤으로 섞인 스펙트럼은 인정되지 않았다.


인간이 가진 가장 놀라운 능력은 상상력이라고 생각한다. 그 상상력을 통해, 경험하지 못하고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그 세상에서 우리는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고 용인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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