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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판단하지 마라, 나는 판단한다

[책을 읽고] 대니얼 스탤더, <판단하지 않는 힘>

by 히말

함부로 판단하는 편향, 즉 귀인 오류는 우리 모두에게 있다. 편향은 대개 도움이 되기 때문에 진화적으로 발달했다. 어떻게든 판단해버리는 것은 불확실성을 줄여준다. 예컨대 피해자 탓하기는 세상이 정의롭다는 환상을 유지시켜 주고, 나는 그런 불행을 당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지켜준다.


A->B 라고 해서 B->A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전 적용은 쉽지 않다. 예컨대 게이들이 정말로 귀걸이를 양쪽 귀에 불균형하게 한다고 치자.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귀걸이를 불균형하게 한 사람이 게이인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그렇게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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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문제점은, 저자가 보이는 귀인오류와 편향 때문이다. 저자는 아니라고 말하지만 결국에는 흑인 청소년을 살해한 '자칭 자경단' 짐머만을 두둔하고 있다. 당시 언론은 짐머만이 소년을 죽이기 직전, 911에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고 전했다.


"뭔가 나쁜 일을 꾸미는 것 같은 사람이 있다. 흑인으로 보인다."


전형적인 인종차별 발언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실, 짐머만은 911 쪽의 질문에 대답한 것이다. 그쪽에서 그 사람의 인종을 물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언론들의 주특기, 즉 전형적인 '악마의 편집'이다.


문제는 저자도 같은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짐머만 사건에 대해 저자는 언론이 범한 악마의 편집만 말하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은 짐머만을 동정할 것이 뻔하다. 게다가 그는 무죄를 선고 받았다.


저자가 말하지 않은 부분을 얘기해 보자. (나는 이 사건 당시 매우 열받았기 때문에 상당한 조사를 했었다.) 당시 소년이 들고 있던 '위험해 보이는 물건'은 스키틀즈가 담긴 검은 비닐 봉투였다. 소년은 배회하지 않았고, 편의점에서 곧장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무엇보다, 짐머만은 '자칭 자경단'이었다. 경찰이 되고 싶었으나 번번히 취직에 실패한 짐머만은 스스로 자경단이라 주장하며 총을 들고 돌아다녔다. 그는 자경단장이었는데, 그 이유는 그의 자칭 자경단에 단원이 본인 한 사람뿐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흑인 소년을 추적하기 시작한 것은 누가 그에게 신고나 부탁을 해서가 아니라, 본인이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다가 먹잇감을 발견하고 추적한 것이다. 위험한 물건을 들고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던 것은 흑인 소년이 아니라 짐머만 본인이었다.


이런 사실들을 전부 생략하고, 짐머만이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것은 사실 언론의 짜집기 때문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이 책에 나오는 사건의 전부다. 스스로 악마의 편집을 하면서, 편향을 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설득력이 있을까?


George-Zimmerman-and-Tray-010.jpg 짐머만과 피해자 흑인 소년


사회학과 교수라는 저자는 많은 책을 인용하는데, 가끔은 '위키피디어'도 아닌 '위키하우'를 인용하기도 한다. 위키하우가 뭔지는 검색해 보시기를 추천한다.


사실 이 책은 초입부터 황당하게 시작한다. 어떤 사람의 그릇되어 보이는 행동은 사실 어떤 상황 때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조카 중 하나는 미들 네임이 '포드'다. 병원으로 가던 차 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이름이 '기아(Kia)'인 아이도 나온다. 막힌 고속도로에서 갓길로 주행하는 얌체 운전자가 사실은 출산이 임박한 산모를 태우고 있다는 가정이 황당한 픽션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저자는 책 도입부에서 갓길로 주행했던 자신의 아버지를 사례로 든다. 저자가 어릴 적이었다. 갓길로 주행하던 아버지는 주변 차들이 빵빵거리며 항의하자 결국 포기하고 대열로 돌아온다. 그런데 갓길 주행을 하던 아버지의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기름이 간당간당한 상황이었다고. 이거, 나만 어이없게 느껴지는 것인가? 내로남불이란 게 이런 거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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