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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과 나무

누구를 탓하랴

by 히말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뱃사공이 있었다. 그의 눈에 갑자기 맹렬한 기세로 강을 내려오는 배가 보였다. 강은 충분히 넓었지만, 내려오는 배는 양보할 기세 없이 맹렬한 속도로 내려왔다. 뱃사공은 자신의 배를 한 쪽으로 틀면서 큰소리로 외쳤다. "옆으로 비켜요! 이러다 부딪치겠소!"

하지만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고 강 한가운데를 타고 내려왔다. 결국, 두 배는 서로 부딪쳤다.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뱃사공은 상대를 향해 소리쳤다. "이런 멍청이 같으니! 어떻게 이렇게 넓은 강에서 부딪칠 수가 있소!"

그러나 부딪쳐 온 배에서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강가에 묶여 있던 배가, 밧줄이 풀려 강물을 타고 내려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불교의 우화라고 한다. 희생양으로 삼을 대상이 없으면 우리는 속상해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내려오는 배가 빈 배라는 것을 알았다면 뱃사공은 최선을 다해 뱃머리를 틀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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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보수당 집권 당시 캐나다 교육부 장관이 출장비를 과다하게 사용하여 청문회에 소환된 사건이 생각난다. 한 병에 10불짜리 생수를 마시고, 1박에 1만 달러 가까이 드는 호텔을 사용했다고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캐나다가 아니라 세상 어디에도 그런 출장비용을 용인하는 정부는 없다.

그런데 청문회에 나온 그 장관의 태도가 아주 볼만 했다. 자기가 뭘 잘못했냐는 태도였다. 자신에게 '그럴 자격이 있다(entitled)'고 생각하는 태도가 문제라고, 뉴스 진행자가 지적했다. 이 사람은 나중에 진보 교육재단에 대한 지원금을 막으려고, 손글씨로 직접 공문서를 위조한 사건으로 다시 뉴스거리가 되었다.

노르웨이에서는 유치원에서부터 남들과 조화롭게 사는 태도를 배운다고 한다. 아이들이 배우는 내용 중에는 이런 것들도 있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자신이 무언가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캐나다 교육부 장관은 어릴 적에 이런 교육을 받지 못한 것이다. 나도 그렇고, 세상 사람 대부분이 어릴 적에 이런 귀중한 교육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 나중에 세상과 부딪치며 배워야 한다.

세상 모든 일에 책임 소재가 분명하다면 참 좋겠지만,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원하지 않는 결과가 발생하면 그것이 누구의 책임인지 가리려고 논쟁을 벌이다가, 사태 수습에는 오히려 소홀히 하게 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애초에 부딪쳐 오는 배가 빈 배라는 것을 알았다면, 쓸데없이 책임 소재를 따지는 일은 벌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최선을 다해 사고를 피하려고 했을 것이고, 사고가 났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다했을 것이다.

지금 내 배와 정면으로 부딪칠 기세로 돌진해오는 저 배는 빈 배다. 저 배를 누군가가 몰고 있다면, 저 사람에게 비킬 책임이 있다고, 나는 양보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빈 배에 그런 것을 기대하는 것은 바보뿐이다. 책임 소재를 따지기 전에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이 최선인지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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