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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Dec 20. 2021

재난 영화가 현실이 된다면

[책을 읽고] 우승엽, <재난시대 생존법>

재난 영화가 현실이 된다면


재난 영화는 재미있다.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사투가 흥미진진하기도 하지만, 재미의 또다른 측면은 아마도 강 건너 불구경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늑한 실내에서 창밖의 눈을 바라보는 것은 행복하다고, 고흐도 편지에 쓰지 않았던가. 그런데 만약 내가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세븐 시즈>라는 서바이벌 만화에서, 주인공팀 일행 7명 중 한 명은 그냥 시작부터 자살해버린다. 많은 재난 영화에서 사람들은 말한다. 먼저 죽은 사람이 오히려 나은 운명이라고.


그런 주장이 일견 설득력을 가지는 것도 같지만, 영화 <미스트>의 결말을 떠올려보면 또 생각이 바뀐다. 더는 희망이 없다는 생각에 가족을 먼저 죽이고 자살하려는 주인공. 총알이 다 떨어져 그러지 못하고 절망하는 순간, 군대가 마을로 진입하는 것이다. 단 몇 분만 결정을 미루었더라면, 모두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정말 심한 장난이라고 생각되는 결말이지만, 생각을 복잡하게 만드는 결말이기도 하다.



진짜 도움이 될 생존 가이드


이 책에서 저자는 말한다. 영화의 그 상황에서, 차에 가솔린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주인공은 절망하지 않았을 것이고, 가족들을 죽이고 자살하려는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래서 결론은, 평소에 여분의 연료를 비축해둬야 한다는 것이다. 휘발 손실을 감안해 용기를 밀봉하고, 정기적으로 비축량을 점검하며 일정 분량 이상을 유지하라는 세심한 조언이 뒤따른다.


전자책으로 900쪽이 넘는 이 책을 보면서, 나라면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과연 얼마나 될까? 난 완력도 매우 약하고, 아토피를 비롯해서 각종 지병을 달고 산다. 식욕은 지나치지만 아무거나 잘 먹지는 못하고 입이 짧다. 물을 바꿔 먹으면 쉽게 배탈이 난다. 내가 누구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될 것 같다.


위기 상황이 되면 서로 뭉치는 것이 좋고, 그룹을 만들게 되면 리더가 있는 편이 좋다. 준비된 리더가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사람이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게다가 그 사람이 정말 좋은 리더가 되어 줄 것인지 어떻게 확신할까?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스스로 리더가 되라고. 이 책을 읽고 재난 상황에서의 생존 기술을 익히고 난 사람이라면, 과연 리더가 될 만하다.


그런데 과연 할 수 있을까? 


평소에 주머니칼 하나 정도는 가지고 다닐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땀이 줄줄 흐르는 여름에는 쉽지 않다. 비상식량을 준비해 두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보존상태를 좋게 하려면 밀봉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밀봉한 식량을 주기적으로 교체해 줘야 한다. 무기를 만들 줄도, 쓸 줄도 알아야 하며, 전투의 기본도 익혀야 한다. 힘들게 사냥한 동물을 고기로 만들려면 해체 기술은 물론 심적 거부감을 견뎌내야 한다. 지방 소도시에 작은 방을 빌려 비상시 은신처로 삼으라는 말까지 들으면, 정말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쓰지도 않는 방에 월세를 내며, 가끔 관리까지 해줘야 한다!


유비무환이다. 정작 극한 상황에 닥쳐도 포기하고 싶은 마음보다는 목숨에 대한 집착이 더할 가능성이 높다. 이 책에 나오는 대비를 전부, 아니 반도 할 수는 없겠지만, 기본적인 것 몇 가지는 실천할 수도 있을 것이다.



- 휴대용 비상팩에는 주머니칼(멀티툴), 플래시, 호루라기, 미니 방독면, 사탕 정도면 충분하다.


- 갑자기 싸우게 될 상황이라면, 일회용 라이터를 꼭 쥐고 펀치를 날려보라. 파괴력은 훨씬 세지고, 손도 덜 아프고, 덜 다치게 된다.


- 다이소에서 묵직한 3단 워킹 스틱을 5천원에 구할 수 있다. 지팡이 역할뿐 아니라 무기로도 좋다.


- 여행용 캐리어에 비상식량을 챙겨두고, 여차하면 끌고 나가자. 조리가 필요없는 종류가 좋다. 건빵, 전지분유, 시리얼, 생수, 정수알약, 고체연료, 참치캔, 초콜릿, 건과일, 3분 즉석요리, 커피믹스 등이 좋다. (너무 많잖아!)


- 커피믹스는 쉽게 상한다.


- 가능한 한, 집에서 버티는 것이 최선이다.


- 마일드 참치는 살코기가 아닌 부분을 모아놓은 것이다. 값이 싸지만 영양은 차이가 없다.


- 평소에 춥게 생활하라.


- 집 근처에 있는 비상 급수대의 위치를 파악하라.


- 브리타 필터에 실리콘 호스를 연결하면 빨대형 정수기가 된다.


- 정수에 쓸 락스는 첨가물(향)이 없고 차아염소산나트륨 함량이 5% 이상인 것으로 사두자.


-  페트병에 물을 넣고 햇볕을 6시간 정도 쬐면 살균이 된다.


- LED 플래시를 준비해두자. 비싼 것보다는 싼 것 여러 개를 구비하는 편이 좋다. AA 크기의 배터리를 쓰는 것이 오래 가서 좋다. 플래시에 청테이프를 감아두면 플래시도 보호하고, 비상시에 청테이프를 활용할 수 있다.


- 은박 비상담요를 많이 준비해두자. 쓸모가 많다. 여름에 창문에 붙이면 빛을 반사해 냉방에 도움이 되고, 텐트 위에 덮어두면 달아나는 적외선을 되튕겨 보온에 도움을 준다.


- 태풍에 유리창이 깨지는 걸 막으려면, 일반 테이프가 아닌 '화이바테이프'를 사용하자.


- 버려진 차량의 와이퍼에서 스테인레스 철사를 확보해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다.


- 'GPS STATUS'라는 앱을 깔아두자. 나침반, 수평계, 기울기 측정, 자성, 속도, 고도, 위도, 경도, 밝기 측정 등이 가능하다.


- 마스크와 1.5미터 정도의 끈만 있으면 무릿매를 만들 수 있다. 손바닥에 양쪽 고리를 걸고 돌리다가 바깥쪽 고리를 놓으면 돌이 날아간다.


- 대형 예초가위는 분리하면 두 개의 단검이 된다.


- <기본응급처치학>과 <한국의 약초>라는 책을 구비해두자.


- 중요문서는 디지털화하여 클라우드를 비롯한 여러 곳에 분산 보관해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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