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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Jan 06. 2022

영웅의 등장은
시스템 실패의 증거다

[책을 읽고] 댄 히스, <업스트림>

댄 히스와 칩 히스 형제의 책을 몇 권 읽었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생산성'이라는 영역의 글을 쓰는데, 논리가 정연하고 꽤 단단한 실행 아이템을 던져 준다는 것이 강점이다. 단점이라면, 그 실행 아이템이 꽤나 추상적인 수준이라는 점. 그럼에도, 히스 형제의 책은 일단 읽어볼 가치가 있다. 글을 참 잘쓰기 때문이다.



이 책을 펼치자 마자, '나의 형 칩 히스에게 바침'이라는 헌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형제가 함께 쓰지 않은 책을 처음 만난 것이다. 그런데 뭐 별일은 없었다. 히스 형제라는 밴드에서 댄 히스가 그냥 솔로 앨범을 낸 것뿐이었다.


강물에 아이들이 떠내려온다. 사람들은 분주히 강물로 뛰어들어 아이들을 구조해낸다. 그러던 중, 한 사람이 강 상류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물었다. "뭐하는 거요?" 달리면서 그가 대답했다. "아이들을 강으로 던져넣는 놈을 잡으러 갑니다!"


그렇다. 강 상류, 즉 업스트림쪽에서 문제를 예방하면, 강 아래쪽, 즉 다운스트림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줄일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강 하류에서 떠내려오는 아이들을 구하는 사람들은 영웅이다. 사진이든 동영상이든 '좋아요'를 꽤나 받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강 상류에서 문제를 해결해버린다면? 위기에 빠진 아이도, 그 아이를 구하는 드라마도, 그 드라마의 주인공인 영웅도 없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만약 그 상류 활동에 돈이라도 든다면, 누가 그 돈을 내려 하겠는가?


예컨대 병이 난 다음에 치료를 하는 것보다, 건강을 잘 관리하는 편이 훨씬 이익이다. 저자는 예방과 치료에 쓰는 돈을 2:1로 할 것을 제안한다. 업스트림에 다운스트림보다 두 배의 돈을 쓰는 것이다. 선진국들의 평균이 대개 그렇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의 아주 독특한 예외가 있으니, 바로 미국이다. 미국의 비율은 1:1에 불과하다. 사회적 합의가 그만큼 부족한 것이다.


노르웨이와 미국은 GDP 대비 보건의료 지출이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미국의 보건 통계는 노르웨이보다 훨씬 열악하다. 예컨대 노르웨이에서 임신한 여성은 산부인과 진료에 돈을 쓰지 않으며, 출산 비용도 무료다. 유급 출산휴가는 물론이다. 이 모든 것이 미국에는 없다. 산모나 아이가 위험해진 다음에야 의료 지출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문제는 업스트림 활동이 인간 본성에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의무도 아니고, 돋보이지도 않는다. 대개의 경우 업스트림과 다운스트림은 다른 주체에게 귀속된다. 경제학 용어로 말하자면, 업스트림 영역은 긍정적 외부효과를 만들어낸다. 누구도 비용을 지불하려 하지 않는 긍정적 효과다. 외부효과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해결은 내부화다. 외부효과의 이익과 손해를 단일 경제주체에게 귀속되게 하는 것이다. 강물에 빠진 아이의 예를 들자면, 강에 아이를 던지는 사람에게 아이들의 구조비용을 대게 하면 된다.


그러나 외부효과가 괜히 외부효과겠나? 한쪽은 이익을, 다른쪽은 손해를 보는 구조이기 때문에 외부효과가 발생한다. 우리 사회가 개미들의 군집과 같은 하나의 유기적 체계라면 이런 문제는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결국 이기적인 개인들의 집합이다.


전쟁이라는 시스템 대참사, 그리고 영웅들
영웅이 필요하다는 건 대개 시스템이 실패했다는 증거다. (131쪽)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남편과 아내를 분리하여야 하고, 노숙자가 되기 전에 거처를 제공하고, 엘리베이터가 멈춰버리기 전에 정기적으로 정비해줘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평화로운 시스템에 영웅은 없다. 가장 성공적인 업스트림 활동이라면, 바로 그 성공이 보이지 않는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Y2K 문제라는 게 있었다. 결국은 호들갑으로 밝혀졌다. 2000년 1월 1일이 되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사실은 누군가의 노력때문이었다면?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성공이었고, 전 세계를 구한 영웅적 노력이었다. 그러나 누군가가 '내가 Y2K 문제를 예방했다'라고 말한다면? 웃기는 녀석이라고 생각할 밖에.


저자는 업스트림을 위한 세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그러나 내게 세 원칙은 그냥 하나의 원칙을 세 번 강조한 것으로밖에는 읽히지 않는다.


행동은 서두르고 결과는 인내하라. (431쪽)


강 하류에서 발생할 문제를 방지할 업스트림 활동이 있다면, 당장 행동하라. 그러나 눈에 띄는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 기대하지 마라. 애초에 그런 건 없다.


사족. 유튜브에서 'Evan'을 검색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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