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가 유동성 함정 문제를 해결할까?
기후변화의 위협
우선, 간단한 배경 설명. 나는 2004년부터 2008년까지 기후변화 관련 업무를 했다. 그러던 중, 2007년에 노르웨이 어떤 회사를 탐방한 적이 있는데, CCS, 즉 탄소 포집 및 저장 기술을 개발 중이던 회사였다.
실천 부분이 좀 약하기는 하지만, 나는 나름 환경보호론자라고 자처한다. 그런 내가 보기에도, 당시 그 회사의 프레젠테이션은 좀 너무 나간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나 지금에나 노르웨이 국부 펀드는 그런 회사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원칙을 가지고 있으니, 정부 보조금에 기대면 몇 년은 살아남겠다는 생각을 했다.
교토 의정서가 세운 2012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한 것은 독일뿐이었다. 트럼프는 취임 즉시 공약을 지켜 파리 협약을 탈퇴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환경이라는 가치를 그저 도덕의 하나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 적어도, 돈 문제가 걸리면 그렇다.
유동성 함정
유동성 함정은 이미 매우 유명한 개념이다. 지난 30년을 통해 이를 입증한 일본이라는 사례도 있고, 무엇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로 전 세계 금융당국이 이를 입증하고 있지 않은가.
경기 부양을 위해 돈을 푼다. 그러나 돈은 돌지 않는다. 자산 가격에 거품이나 끼게 할 뿐이다.
<미스터 마켓 2022>에서 이효석은 유동성이 넘치는 와중에서도 인플레 압력이 미미한 것을 유니콘 기업과 좀비 기업에서 찾았다. 유니콘 기업이나 좀비 기업이나, 부채비용을 간신히 갚아가며 근근히 살아가는 부류라는 점에서 같다. "정상적인" 경제에서라면 둘 다 망해야 한다. 그것이 경제가 돌아가는 방법이다.
그러나 비정상적으로 유동성이 풍부해지면서 상황이 다르게 전개된다. 쿠팡이 수년 간 수조 원의 적자를 내면서도 살아남은 것은 비전펀드의 수혈 때문이었다. 그렇다. 부채비용이 매우 낮아지면, 유니콘과 좀비 기업 모두 살아남는다. 그리고 그들은 계속해서 영업을 한다. 그 결과는 과잉 생산능력에 의한 인플레 압박 해소다.
유니콘과 좀비, 그리고 ESG
정리되어야 하는 기업들이 살아남아 디플레 압력을 가하고, 경제가 비정상적으로 돌아간다. 금리가 이걸 해결 못하는 상황인데, 의외로 ESG가 해결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이효석의 결론이다. 간단히 말해, 망해야 할 기업을 ESG가 가려낸다는 것이다.
2022년 1월 7일 현재, 테슬라의 PBR은 38에 달한다. PER이 아니라 PBR이다. 물 마시듯 유상증자를 해도 주가가 올라간다. 넘치는 유동성이 분명 주범이겠지만, 단지 그 이유만은 아니다.
2021년 7월 강원도 삼척에 석탄 화력발전소를 짓고 있는 삼척블루파워는 채권시장에서 회사채를 발행했다. 그런데 이 회사채에 대한 수요는 놀랍게도 0이었다. (<미스터 마켓 2022>, 252쪽)
사람들은 이미 ESG에 반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론
결국 ESG라는 새로운 기준에 의한 투자가 자리잡게 되면, 남의 나라에서 유전을 파헤쳐 놓고 뒷처리도 하지 않고 도망가는 Shell이나 Exxon 같은 회사는 자본조달비용의 증가로 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내 생각은 다르다. 책에 나오는 애스워스 다모다란의 의견에 나는 동의한다. 지금까지 도덕이 돈을 이긴 적은 없다. 적어도 내가 관찰해 온 바에 따르면 그렇다.
ESG는 그동안 시민사회가 기업들에게 도덕률로 강요해 오던 PSR에 붙인 새로운 이름일 뿐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나는 P&G 캐나다 본사에서 재무분석가로 일한 적이 있다. P&G는 당시에 저개발국에 우물 파기 사업을 지원하는 사업부를 가지고 있었고, 재해지역에서 세탁트럭을 운영하기도 하는, 말하자면 PSR에 꽤 진심인 회사였다. 입사 인터뷰 때도 나는 그런 점들이 매우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내가 좋아하던 일본 드라마를 여럿 후원하던 점도 물론 마음에 들었다.)
입사 후 어느날, 나는 CFO에게 그 우물 파기 사업이 어떻게 되었냐고 물었다. 그는 꽤 드라이한 어투로 대답했다.
"아, 그 사업부는 돈 안돼서 다른 회사에 팔았는데."
그 사업부도 팔고 프링글스도 팔아치운 P&G의 주식은 얼마 전 사상최고가를 경신했고, 지금도 계속해서 그럴 기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