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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Feb 16. 2022

죽음을 마주하는 직업

의사들의 치열한 에세이를 읽고

작년 12월에 정상훈의 <어느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를 읽었다.

우울증에 빠져버린 의사.

스트레스에 찌들어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힘겹게 하던 그는 어느날 국경없는 의사회에 지원해 버린다.

어이없는 이유로 죽어가는 이들을 마주하고, 그런 그들을 구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력함을 느끼면서, 그는 어떤 삶의 의미를 찾은 것일까?

지구상의 어떤 나라들에서는, 우리나라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죽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렇게 납득할 수 없는 수많은 죽음을 마주했던 그는 한국에 돌아와 코로나19가 위협하는 또다른 약자들을 만난다. 바로 쪽방촌에서다.


하루에도 수백 명의 목구멍을 들여다보다가 문들 깨달았다. 쪽방촌 주민 가운데 이가 없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정상훈, 300쪽)


올해 1월에는 김범석의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를 읽었다. 책 제목이 비슷해서 헷갈릴 정도다. 그러나 두 책은 아주 많이 다르다.


정상훈의 책과 달리, 이 책은 좀 더 일반적인 의사들의 에세이처럼 시작한다. 환자들에 관한 에피소드가 엮인 옴니버스다.

특히 두 번째 에피소드가 꽤 신선한데, 빌린 돈 때문에 소원해진 형제가 아주 오랜만에 만난 이야기였다.

산소 호흡기를 쓰고 죽어가던 형은 수십 년만에 자신을 찾아온 동생을 손짓으로 부른다.

동생이 다가오자, 그 귓가에 형은 힘겨운 목소리로 속삭인다.


"너... 내 돈... 2억... 갚아라..." (김범석, 36쪽)


벙찐다는 말이 딱 맞는 상황이다.

우리는 죽음을 앞두고 너그러워지는, '우리 안의 선한 천사'를 기대한다.

그러나 현실은 아주 다를 수 있다.


식도암 환자는 가족들과 사이가 안 좋다고 한다. 왜일까?

식도암은 술이 원인인데, 하루 이틀이 아니라 아주 주구장창 오랫동안 많이 마셔야만 생긴다.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렇게 오래 술을 마실 수도 없다. 그래서 대부분 건장하다.

그렇게 건장한 식도암 환자들은 술을 마시고 오랫동안 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하기 마련이다.

씁쓸한 이야기다.


책의 후반부에서 작가는 항암치료에 대한 분명한 반대 의견을 피력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밝히듯, 항암치료는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다.

가족들은 나중에 후회할까봐, 환자 본인은 어쩌면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 그리고 의사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법적 책임과 의료수가 제도 때문에 항암치료에 내몰린다.

많은 의사들이 기도삽관 같은 끔찍한 행위를 자신을 절대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썼다.

그래서 연명치료의향서를 미리 작성해 두라는 조언도 참 많은 책에서 보았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처럼 뒤통수를 친다.


항암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큰소리치던 환자들이 암 덩어리가 커지고 그로 인해 고통스러워지면 그제야 항암치료를 해달라고 찾아와 매달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는 암이 악화되어 환자의 몸이 독한 항암치료를 견딜 수 없는 상태인 경우가 많다. (김범석, 67쪽)

데이비드 재럿은 <이만하면 괜찮은 죽음>에서, 미래 세대가 우리 시대의 항암치료를 아주 원시적이고 무식한 행태로 생각하며 어이없어 할 것이라고 썼다. 

우리가 중세 의사들의 사혈 치료에 관해 읽으며 끔찍하다고 느끼는 것과 비슷할까?


항암치료로 너무나 쇠약해져서 CPR을 감당할 수 없는 할머니의 심장이 멈췄다.

급히 도착한 인턴 의사가 정석대로 CPR을 한다.

갈비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중환자실에 울려퍼진다.

듣다 못한 주치의가 말한다.


"인턴 선생님... 살살..." (김범석, 273쪽)


어차피 쇼피알, 즉 보여주기 위해 하는 CPR인데, 인턴은 그걸 아직 모르는 것이다.


죽음과 직면하는 직업이라는 측면에서, 의사라는 직업은 삶을 계속 되돌아 볼 수밖에 없다.

루틴화된 일상에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던 정상훈은 국경 없는 의사회에 참여하면서 죽음을 직면한다.

암 전문의로서 김범석은 다른 의사들보다 가까이에서 죽음을 마주한다.

간접 체험이기는 하지만, 책을 통해 그들의 치열함을 조금이라도 느끼면서 나 또한 묻게 된다.


삶을 잊고 있을 때 떠나간 환자들이 들려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들의 마지막은 언제나 나를 향해 묻는다. 언젠가 당신도 여기에 다다르게 될 텐데 어떻게 살고 있는가? 어떤 모습으로 여기에 당도하고 싶은가? 나는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정신이 번쩍 들고 다시 한번 생의 감각이 팽팽해진다. (김범석, 3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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