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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Mar 01. 2022

43세의 건강한 남성이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책을 읽고] 네이딘 해리스,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

과거


어느날, 디에고라는 소년이 병원에 왔다. 


차트를 펼치고 생년월일을 본 나는 아이를 다시 한 번 쳐다봤다. 디에고는 귀엽기만 한 게 아니라, 키도 아주 작은 아이였다. (36쪽)


디에고가 병원에 온 이유는 ADHD 때문이다. 그러나 일곱 살인 디에고의 키는 네 살배기 아이들의 평균에 불과했다. "디에고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킨다는 건 언제 알게 됐나요?" 그 질문에, 아이의 엄마는 울먹이며 하소연을 하기 시작한다. 디에고의 부모는 샌프란시스코의 무지막지한 집세를 감당하기 위해 세입자를 한 사람 들였다. 그리고 언젠가 그가 디에고를 성적으로 학대한다는 걸 알게 됐다. 즉시 쫓아냈지만, 이미 일은 일어났다. 그리고 디에고는 키가 크지 않았다.


현재


다른 이야기를 하나 더 해보자.


어느날, 의사인 저자는 모르는 번호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전화를 건 것은 응급 의사. 그녀의 오빠가 지금 중환자실에 있고, 심각한 후유증을 불러올지도 모르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43세 남성 급성 뇌졸중 환자. 비흡연자. 위험 요인 없음." 마지막 부분이 내 머릿속에서 덜컹거리고 돌아다니며 메아리를 일으켰다. 위험 요인 없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487쪽)


저자의 어머니는 심각한 망상형 조현병을 앓았는데, 그건 아이들이 매일 감당해야 하는 아주 어려운 문제였다.


매일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종잡을 수 없는 답을 찾으려 애쓰는 시간이었다. 집에 가면 행복한 엄마를 만나게 될까, 아니면 무서운 엄마를 만나게 될까? (488쪽)


부정적 아동기 경험(Adverse Childhood Experiences) 지수, 줄여서 ACE 지수라는 것을 저자는 고안해 냈다. 그리고 곧, 그녀는 ACE 지수가 건강 문제와 아주 직접적이고 예측가능한 수준의 상관관계를 가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의 주제는 이것이다. 아동기의 트라우마는 유전자 수준에서 심각한 변형, 즉 후성유전학적 변형을 일으켜 건강 위험 요소가 된다. 그리고 그 사람을 평생 따라다닌다. 


저자의 오빠는 응급의가 보기에 비흡연자이며 '위험 요소가 없는' 건강한 사람이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ACE 지수가 오빠의 진료 차트에 포함되어 있었다면, 응급의는 상황의 심각성을 더 빨리 캐치했을 것이다. 뇌졸중에 걸렸던 오빠, 에번은 훌륭한 수술로 완치되었다. 그러나 저자에게는 다른 오빠도 있었다.


루이는 나보다 더 똑똑했고, 나와는 달리 고등학교에서 인기 있는 학생이었다. 그러나 그는 예민하기도 했다. 그만의 타고난 본성과 우리 집이라는 양육환경의 조합이 루이마저 조현병으로 내몰았다. 루이는 열입곱 살이 되던 해인 1992년에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2년 뒤 그는 엄마 차를 몰고 가던 중 정지 신호에서 내려 차를 버려둔 채 그대로 사라졌다. 그 후 우리는 다시는 루이를 보지 못했다. 지금까지도 그의 이름은 전국 실종자 명단에 있다. (490쪽)


미래


그래서 저자는 주장한다. 모든 아이들이 어렸을 때 ACE 지수를 평가받아야 하며, 그것이 건강 기록에 포함되어 의사들이 참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녀는 캠페인에서 시작하여 후원을 받고 재단을 설립했다. 막대한 후원금을 보고 파리들이 꼬이기도 했지만, 그녀의 노력은 순항 중이다. 그리고 그녀는 꿈꾼다.


지금은 2040년. 상황은 꽤 달라졌다. (중략)  우리 아들들 세대는 과거의 역경에 대한 낙인 없이 성인으로 성장한 첫 세대다. 오늘날 ACE 지수가 있다는 건 땅콩 알레르기가 있는 것보다도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504-506쪽)


2040년이라니, 저자는 꽤 조심스러운 성격인 듯하다. 길게 보아 2040년쯤이라면, 아이들이 예방 접종과 함께 ACE 지수 선별 검사를 받을 것이고,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이 그들을 낙인 찍거나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그런 제도적 도움이 없다. 그리고 아이들이 부정적인 경험을 겪는 것은 결코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러니 지금은 이것만이라도 가슴속에 새기자.


자신의 스트레스 반응이 활성화될 때 단순히 그것을 알아차리는 법을 배우는 것, 건강한 방식으로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방식으로 반응하는 방법을 생각해내는 것. (502쪽)


그렇다.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동을 바꾸고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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