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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Dec 12. 2017

4차 산업혁명의 시대,
개인도 회사처럼 경영하라

[서평] 살림 이스마일의 <기하급수 시대가 온다>

2013년 아르헨티나의 한 기업가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세차장 매출액 총합이 지난 10년간 50% 감소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르헨티나의 중산층은 성장 중이었고, 고급 차량 판매도 꾸준히 증가해온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통계였다. 

수도요금도 변화가 없었고, 세차장 업계에서 경쟁이 증가한 것도 아니었다. 석 달간의 연구에도 원인을 찾지 못하던 그는 우연히 답을 발견했다. 과거 10년간 일기예보의 정확성이 대폭 개선된 것이 문제였다. 일기예보가 정확해지자, 세차 직후에 비를 맞고 다시 세차장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든 것이다.

세차장에게는 안 된일이지만, 경제 전체로는 비효율성이 줄어든 결과다


기술 발전은 세차장과 같이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분야에까지 파괴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사례는 잘 보여준다. 자기 분야의 정보가 아니라고 해서 안심하고 있을 수는 없는 세상이다. 모든 데이터가 해석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정보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칠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하는 시대다.

<기하급수의 시대가 온다>의 저자 살림 이스마일은 기존의 기업들을 산술급수적 기업이라고 부르는 동시에 새로 등장하는 파괴적 혁신 기업을 기하급수적 기업이라고 부른다. 구글, 애플, 넷플릭스, 아마존과 같은 기업들이다. 기하급수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들 기업의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기업이 창업하고 시가총액 10억 달러에 이르는 데 걸리는 시간을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확연히 보인다. 전형적인 포천(Fortune) 500대 기업은 20년이 걸렸지만, 구글은 8년, 페이스북은 5년, 우버는 불과 2년 만에 시가총액 10억 달러에 이르렀다.

기하급수라는 단어는 비용 절감에 있어 더욱 현격하게 드러난다. 드론 제작 비용은 6년간 142분의 1로 하락했고, 3D 프린팅 비용은 7년에 걸쳐 400분의 1, DNA 염기서열 분석 비용은 7년 만에 1만분의 1로 떨어졌다.

하지만 기하급수의 본체는 바로 정보량의 증가에 있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에 연결된 장치의 수는 5억 개 정도였으나, 2020년에는 500억 개, 2024년에는 1조 개가 될 것이다. 디지털카메라는 사진 촬영 비용을, 클라우드 컴퓨팅은 데이터 저장 비용을 거의 제로로 만들었다. 정보를 만들고 저장하는 데 드는 비용이 거의 없어진 것이다.

20세기 이전에 인류의 지식은 대략 한 세기마다 두 배가 되었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대략 13개월마다 인류의 지식이 두 배로 늘어난다. IBM에 따르면, 사물인터넷이 실현되면 인류의 지식은 12시간마다 두 배로 증가할 것이다.

저자는 기하급수적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혁신 기업의 특징을 기업 내외부적 차원에서 파악, 분석한다. 이 특징들을 활용하여 스타트업은 성공적인 창업을,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은 변화무쌍의 시대에서 생존과 번영을 노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리듐 프로젝트

1990년에 출범한 인간 지놈 프로젝트는 인간의 DNA 염기서열을 모두 분석하여 정리하는 작업에 총 15년, 60억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1997년까지도 전체 염기서열의 1%를 정리하는 데 그쳤다. 사람들은 7년간 1%를 정리했으니 모두 정리하려면 693년이 더 필요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그런데 특이점 주의자로 유명한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1%라면 절반은 온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염기서열 분석량이 매년 두 배씩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 것이다. 매년 두 배씩 7년이 지나면 128배가 되니, 타당한 분석이다. 다들 알다시피, 인간 지놈 프로젝트는 목표했던 것보다 2년 먼저, 2003년에 완료되었다.

2009년 시사 주간지 <타임>은 지난 10년간 최악의 기술 실패 사례 중 하나로 모토롤라의 이리듐 프로젝트를 꼽았다. 모토롤라는 통화 수요가 적은 시골에까지 기지국을 세우는 대신, 66개의 위성을 쏘아 올려 전지구적인 통신을 가능케 하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분당 5달러의 요금이라면, 소비자들도 만족할 것이고, 사업성도 있다는 판단이었다.

이리듐은 실패했다. 기지국 건설 비용은 급감했지만, 위성 발사 비용은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분당 5달러의 전화 요금을 참아줄 소비자도 많지 않았다. (이리듐의 최종 총 가입자수는 만 명 정도였다고 한다.) 모토롤라는 기술 발전으로 인해 미래의 비용 구조가 달라질 것을 전혀 계산에 넣지 못했다. 모토롤라의 자회사 이리듐은 15억 달러의 부채를 갚지 못하고 파산했다.

미래 예측은 원래 인간 지능의 영역이 아니다. 인간의 뇌가 진화를 마친 석기 시대에는 물론, 중세까지만 해도 아이들은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살았던 시대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시대를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세차장을 운영하려고 해도 기술 변화가 내 사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거대한 변화를 불러오는 목적

책은 기하급수 기업의 특징으로 11개나 되는 회사 내외부적 조건을 상세히 설명한다. 필요할 때에만 고용하는 직원, 소유하지 않고 빌려 쓰는 자산 등은 가볍고 유연한 조직을 만드는 데 필요하다. 인터페이스와 대시보드, 그리고 알고리즘은 최대한 많은 정보를 자동적으로 의사 결정에 반영하기 위한 도구들이다. 커뮤니티와 크라우드, 소셜 네트워크 기술, 그리고 소비자 참여는 인터넷으로 연결된 대중을 소비자 차원에서 격상시켜, 회사의 중요한 자산으로 만든다. 실험과 자율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과 능동적 업무 태도를 말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하고, 이 모든 것들의 전제조건으로 필요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이 '거대한 변화를 불러오는 목적(massively transformative purpose)', 즉 MTP다.

MTP와 기하급수 기업의 10 가지 조건 © 살림 이스마일


MTP는 회사의 사명 기술서(mission statement)와 비슷한 역할을 하지만, 훨씬 원대한 포부를 간략한 문장으로 표현한 것이다. 책에는 미국의 보험회사인 올스테이트의 사례가 소개되어 있다. 올스테이트의 사명 기술서는 아마도 다음과 같이 지루할 것이다. "우수한 대리점 및 협력사 네트워크를 통해 고객의 금융 미래를 보호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전달한다." 하지만 올스테이트는 사명 기술서 대신, 강렬하고 간결한 MTP를 채택했다. "올스테이트라면 안심해도 됩니다."

MTP는 회사의 핵심 인력을 하나의 목적으로 단결시키고, 실패와 난관에 부닥쳤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부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책에는 이렇게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시시각각 상기시켜준다. 조직은 어느 새엔가 당초의 목표 대신 조직 자체의 유지를 지상과제로 삼는 경향이 있는데, MTP는 짧고 강렬한 문구로 조직이 원래 무엇을 하려고 만들어졌는지를 떠올리게 한다.

기하급수는 분명 인간의 상상력 밖에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의 시대를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링크트인의 설립자 리드 호프먼은 그의 책 <어떻게 나를 최고로 만드는가>에서 개인들이 점차 자신을 회사처럼 경영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하급수의 시대가 온다>는 분명 기하급수의 시대에 어떻게 회사를 만들고 경영할 것인가에 관한 책이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스스로를 경영하는 데 있어 참고가 될만한, 아니 참고하여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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