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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과 나무

내 오랜 친구, 조급함

이젠 안녕

by 히말

팽생 나를 따라다닌 친구 중 하나가 조급함이다. 난 걸음도 빠르고 먹는 속도도 빠르고 말하는 속도도 빠르다. 대학 시절 한 친구가 말했다. 자기가 웬만한 사람보다는 걸음이 빠른데 나랑은 보조를 못 맞추겠다고.


아침 출근 길에 휴대전화에 메시지가 떴다. 배터리 15%. 머릿속에서 계산이 시작됐다. 집에서 나올 때 29%였고, 현재 30분이 조금 더 지났으니 세이프. 그러나 15%는 도저히 안심이 되지 않는 숫자다. 왠지 15%부터는 그냥 배터리가 수직 다이브를 하는 느낌이다. 전화를 바꾼지 한 달도 되지 않았으니 괜찮겠다는 반론도 생긴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했다.


배터리 떨어지면 그냥 아무것도 안 하면 되잖아.


low-battery.jpg


예전엔 이 현상이 훨씬 심했다. 배터리가 떨어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을 도저히 견디지 못했다. 충전을 너무 자주하면 배터리 수명이 떨어진다는 말을 어디서 들어서 충전을 자주 하지 않으니 이런 상황이 종종 연출되었다. (그렇게 배터리를 아껴봤자 소용없는 것이, 지금까지 전화를 바꾼 건 전부 전화를 떨어뜨려 부쉈기 때문이다.)


출근길에 배터리가 떨어져 15분, 아니 1시간 동안 책을 못 본다고 뭐가 달라질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지금까지 살면서, 조급함이 부정적 생각의 연쇄를 불러일으키고 결국 화를 불러오는 일이 잦았다. 정말 어리석은 성격이다. 이제야 깨달은 것이 원통하기도 하지만, 이제라도 깨달아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고쳐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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