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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Aug 09. 2022

자동차 바퀴에 호두 깨먹는
까마귀들

[책을 읽고] 메노 스힐트하위전, <도시에 살기 위해 진화 중입니다>

집근처에 둥지라도 틀었는지 요즘엔 까치가 아침 자명종이다. 아침 새소리는 대개 감미로운데, 까마귀과라 그런지 까치 소리는 꽤 거칠다. 나는 까마귀를 좋아하는 편인데, 워낙 머리가 좋은 새라서 그렇다.


일본 센다이는 자동차를 이용해 호두 껍질을 깨는 까마귀들로 유명하다. 자동차가 오는 방향을 보고 바퀴에 정확하게 맞추기 위해 위치 조정을 하기도 하고, 신호등을 이용해 안전하게 회수 타이밍을 잡는 까마귀들이 신기하다. 그런데 자동차를 이용해 호두를 까는 기술은 아직 이 지역에만 존재하는 특산품이다.


유럽에 서식하는 까마귀는 어찌된 영문인지 일본의 까마귀들처럼 인간이 타고 다니는 차량을 활용하는 이 까다로운 방식을 터득하지 못했다. (309쪽)


https://www.youtube.com/watch?v=BGPGknpq3e0&t=33s


인간 대 박새


유럽의 새들이 멍청하다는 판단은 곤란하다. 영국인들은 19세기 말부터 우유를 훔쳐먹는 박새들과 투쟁을 해왔다. 포유동물이 아닌 새는 당연히 유당 소화 효소가 없다. 그러나 생우유를 그냥 놔두면 위쪽으로 크림이 분리된다. 이건 새에게도 아주 맛있는 먹이다. 그래서 우유 배달의 역사는 박새와의 전쟁의 역사가 되었다.


처음에는 배달되는 우유병에 뚜껑이 없었으므로 그냥 도둑질을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20세기 초에 판지 뚜껑이 도입되었으나 박새들은 뚜껑을 뚫거나 떼어버렸다. 알루미늄 뚜껑으로 대체되자, 박새들은 곧 뚜껑 개봉법을 알아냈다.


이 새들은 부리로 툭툭 쳐서 구멍을 낸 다음 포일을 쭉 벗겨냈다. 게다가 완전히 벗겨낸 뚜껑을 발톱으로 꼭 쥐고 은신처로 가져가서 안쪽에 묻어 있는 크림을 쪼아 먹기도 했다.(311쪽)


심지어 일부 욕심 많은 박새들은 우유병에 머리를 넣고 먹다가 익사한 채로 발견되기도 했다.1947년에는 시민 과학 프로젝트로 이 현상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가 이루어졌는데, 학교에 배달된 우유 300병 중에 57병의 뚜껑이 개봉된 사건도 있었다.이 프로젝트로 뚜껑 여는 기술의 확산 양상을 알 수 있었는데, 놀랍게도 기술은 점진적으로 퍼지지 않았다. 


여러 마을과 도시에 산발적으로 산발적으로 등장한 뒤 그 주변 지역으로 우유병 공격 기술이 전해지는 양상이 나타났다. (314쪽)


다시 말해, 이 기술은 각기 다른 여러 개체들에 의해 독자적으로 발견되었고, 그 주변으로 퍼져나간 것이다. 더 신기한 것은 이 기술이 실전될 수도 있는 위기를 피한 것이다. 전쟁 기간 중에는 식량이 부족하여 우유 배달이 중지되었는데, 전후에 우유 배달이 재개되자 다시 우유병 공격이 등장한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박새는 그렇게 오래 살지 못한다.



박새와 인간 사이의 이 전쟁은 뜻밖의 사건으로 끝났다. 우유병 상단에 크림 층이 형성되지 않는 균질 우유가 발명된 것이다. 뚜껑 색깔이 다른 비균질 우유는 공격을 받기도 했지만, 이것도 슈퍼마켓이 등장하고 배달원이 사라지면서 끝났다.


한 실험은 기술의 까마귀가 퍼즐을 푸는 방식이 어떻게 무리 내에서 전파되는가에 대해 연구했는데,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까마귀들 사이의 기술 전파도 소셜 네트워크를 따라 이루어진다는 것이 밝혀졌다. 선구자와 평소 친하게 지내던 개체들이 더 일찍 신기술을 전수받았다. 퍼즐을 푸는 방법은 두 가지였는데, 각 개체들은 자기가 전수받은 방식대로 퍼즐을 풀었다.



도시에 적응하는 동물들의 진화


인간은 생태학적으로 볼 때, '슈퍼 핵심종'이다. 지구상의 모든 식물에서 생산되는 식량의 1/4을 소비하고, 전 세계 담수의 절반을 사용한다. 다른 종들은 슈퍼 핵심종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적응하여 살 수밖에 없다. 개미가 만든 개미집에 적응하여 그곳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곤충처럼, 많은 동물들이 인간의 도시에 적응하여 살아간다.


사람들의 선입견과 달리, 도시는 일부 동물들에게 살아가기 좋은 환경이다. 특히 포유류와 조류에게 그러한데, 인간들, 특히 도시인들이 이들 동물에게 적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진화과학 관점에서, 동물들의 도시 적응은 크게 연성 선택과 경성 선택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연성 선택은 이미 가지고 있는 유전자 코드를 활용하는 것이다. 진화 과정에서 필요가 없어져 정크 DNA 더미에 보관되어 있던 데이터를 다시 꺼내 쓰는 것이다. 이 방식은 논란이 되는 개념인 전적응(pre-adaptation)을 설명할 수 있다. 예컨대 인간이 도시에 만들어 놓은 환경이 집참새가 원래 선호하는 환경과 유사하여 집참새가 도시 환경에 적응한다면 전적응의 사례로 볼 수 있다.



경성 선택은 우리가 아는 그 자연 선택이다. 환경 적응에 유리한 '새로운' 돌연변이가 살아남아 퍼지는 것이다. 산업혁명 초기에 영국에 살던 회색가지나방의 색깔이 검게 변한 것이 경성 선택의 대표적인 사례다. 반면, PCB 오염을 견디기 위해 특정 유전자를 재발현시킨 대서양 송사리나 도시 공해에 따라 날개 색깔이 어두워진 비둘기들은 연성 선택의 사례다.


이 차이는 기존에 검은 색 날개를 가진 비둘기나 나방이 존재했는지 확인해보는 방법으로도 구별할 수 있지만, 더 확실한 방법은 유전체 정보 분석을 통해서다. 연성 선택의 경우 개체군에 따라, 심지에 같은 개체군 내에서도 개체에 따라 적응 유전자의 위치가 달리 나타날 수 있지만, 경성 선택의 경우 정확히 특정 위치에 적응 유전자가 나타난다. 새로이 나타난 유일한 돌연변이가 퍼진 것이므로 당연하다.


진화와 헷갈릴 수 있는 개념으로 가소성과 학습이 있다. 그러나 학습의 결과는 진화로 이어질 수 있다. 게다가 후성유전학까지 고려하면 이제 경계선이 정말로 모호해진다. 책에는 명시적으로 나오지 않으나, 후성유전학적 변화와 가소성은 같은 현상을 다르게 부르는 이름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슈퍼 핵심종의 책임


미래의 도시환경은 전체적으로 균질화되고 분산된 생태계 동적으로 변화하지만 동일한 종류의 생물들이 살아가는 곳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 문장이 이 책의 핵심인데, 잘 읽어보면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생물다양성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갈라파고스의 핀치는 다윈이 방문할 당시에만 해도 놀라울 정도의 다양성을 보여주었다. 각자의 환경에서 먹이를 구하는 방식이 달라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갈라파고스의 핀치는 서로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방향으로 진화 중이다. 모두가 인간에게 먹이를 구하면 되기 때문이다.


도시화에 적응하여 살아남는 종 하나 당 수십, 수백의 종이 적응하지 못하고 멸종한다.


도시 생태학자 같은 전문가들은 친환경 도시 설계에 있어 생태계를 정적으로 가정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 책에서 알 수 있듯 이건 잘못된 생각이다. 도시에 적응하는 동식물들을 고려하여, 다음 4가지 규칙을 가지고 친환경 내기 생태학적 도시 설계를 생각하는 것이 좋다고 저자는 조언한다. 


1. 내버려 둬라. 


2. 토종을 고집하지 마라. 이미 적응한 외래종을 차별할 이유가 없다. 


3. 청정 자연을 일부 남겨두자. 


4. 분리하려면 제대로 하자. 통로 같은 것을 만들어 동식물의 이동성을 확보하는 것은 실제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결국, 지구 생태계를 보존할 책임은 슈퍼 핵심종인 우리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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