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말 Aug 08. 2022

그것이 알고 싶다 - 우울증 특집

[책을 읽고] 애나 페이퍼니, <여보세요, 제가 지금 죽고 싶은데요>

선정적인 제목만 거슬리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의 원제도 <Hello I want to Die Please Fix Me>다.) 자극적인 오프닝, 자의식 과잉, 매너와 재미가 결여된 수사법 등 이 책의 문제점은 끝이 없다. PC 세상인 요즘 보기 어려운,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표현이 시시때때로 튀어나온다.


샤워실에는 오줌 냄새가 나는 목재 벤치가 있었는데, 언뜻 보면 노망난 괴짜 노인의 산속 대저택에나 있을 법한 사우나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78쪽)


스스로는 위트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유치해서 (독자인) 내가 쥐구멍으로 숨고 싶은 표현도 넘쳐난다.


짙은 파랑과 노랑 두 색으로 된 캡슐을 먹으면 내가 머리에 레이저가 붙은 못되고 집중력 강한 상어로 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 그냥 평범했다. 레이저가 나오지도 않았다. (223쪽)



저자가 불쌍한 것은 사실이다. 다음 문단을 보자.


나는 창문 하나가 달린 46제곱미터짜리 아파트에 혼자 사는 그 누구보다도 아파트 안에서 찍은 사진을 많이 가지고 있다. 나는 라디오와 팟캐스트 진행자에게 말을 건다. 집 안의 물건을 떨어뜨리거나 넘어뜨리면 사과한다. 반항적인 하드 드라이브, 인터넷 연결, 가전제품을 꾸짖는다. (380쪽)



(우울증 때문일 수도 있는) 저자의 아쉬운 태도만 아니었다면, 그리고 글을 조금만 더 잘 썼다면, 이 책은 대단히 좋은 책이었을 것이다. 우울증과 자살에 관한 다각도 심층 취재물인 만큼, 이 주제에 관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우울증의 평생 유병률은 17%에 이른다. 어떤 사람이 평소에 남용하던 약물을 치사량 넘게 복용해서 죽는다 해도, 그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 사고사로 분류될 것이다. 프로작에는 거부감을 보이는 우울증 환자들이 훨씬 위험하고 시험적인 약물인 케타민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같은 성분의 약을 천연 재료에서 추출한다는 이유만으로 돈을 쏟아붓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오염되었을지도 모르며 유효 성분이 과다할 수 있는 약을 비허가 시설에서 복용한다.



정신 문제에 대한 현대 의학의 접근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무수히 많은데, 그중에는 '분야로서 정신의학의 소멸'을 목표로 하는 장학금이 나오는 단체도 있다. 그 단체는 무려 토론토 대학교 온타리오 교육연구소다. 50 내지 100년이 지난 미래에는 지금의 정신의학이 중세 마녀 사냥처럼 보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자살하고 싶어 소란을 피우는 사람을 경찰이 출동하여 쏘아 죽이는 사고(?)가 끊임 없이 일어난다. 유색인종은 우울증으로 자살할 확률이 훨씬 높은데, 특히 북미 인디언의 위험도가 가장 높다. 그런데 캐나다 정부의 태도는 어떤가? (저자는 캐나다인이다.)


같은 시민으로서 같은 관리를 받을 자격이 있는 인간 집단이 아니라 인류학 실험 같은 느낌이 들면 제대로 신뢰를 쌓을 수 없다. (479쪽)


표정이 마음에 일으키는 영향을 고려해서, 보톡스로 얼굴을 펴는 것도 꽤 효과가 있다고 한다.


보톡스를 눈썹 주름근, 즉 찡그릴 때 세로로 주름이 지게 하는 눈썹 사이의 근육에 주사한다. (351쪽)


당연한 얘기지만, 이 책은 저자가 스스로 우울증과 싸운 결과물이다. 저자는 우울증이 나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울증이 그렇게 쉽게 나을 리도 없겠지만 설마 나았다 하더라도 이 책을 팔기 위해 저자는 그 사실을 숨겼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쓰는 과정은 그녀를 살게 했다. 그것만은 분명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낯선 존재가 되어버린 가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