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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Aug 07. 2022

낯선 존재가 되어버린 가족

프란츠 카프카, <변신>

카프카의 <변신>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인데다가 짧기도 해서 참 여러 번 읽었다.

카프카의 다른 작품들, 예컨대 <성>, <심판>도 좋아하지만, 역시 <변신>이 제일 좋다.

이 소설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좋은 작품이지만, 읽는 내내 변신이라는 은유에 담을 수 있는 함의를 생각하게 만든다. (작가가 계속해서 그렇게 유도한다.)


제일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가족 구성원에게 발생한 '기능적 결함'이다.

질병이나 상해로 인한 장애, 그중에서도 나는 '치매'를 떠올렸다.

그건 물론 내게 일어난 개인사와도 관련이 있다.


이 소설의 실제 주인공은 여동생이다.

가족들 중에서 그레고르에게 가장 동정적이었던 그녀는 점차 변해간다.

그레고르 대신 가장의 역할을 떠맡게 되면서 몸과 마음이 지쳐간다.

그리고 결국, 그레고르를 해치워야 한다고 가족들을 설득하는 비정한 모습을 보인다.


아버지도 주목할 만한 인물이다.

그레고르가 가족들을 부양하면서, 아버지는 뒷방 늙은이가 되어 한가한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신하면서 가족들은 생업 전선으로 나가야 했다.

아버지는 나태한 늙은이에서 절도 있는 노인으로 환골탈태한다.

그레테가 점차 비이성적으로 변화한 것과 대조적으로, 아버지는 점차 이성적으로 변해간다.


아서 클라인먼의 <케어>는 10년이 넘는 동안 치매 아내를 간병한 의사의 이야기다.

그는 아내를 돌보는 몇 년 동안 '그 어느 때보다 규칙적으로 운동했고, 더 오래 잤다'고 적고 있다.

갑자기 들이닥친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그 어떤 때보다 더 정신 차리고 생활한 것이다.

그레고르의 아버지가 위기에 대처하여 변신한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레고르의 '변신'이라는 위기를 맞아, 가족들도 나름대로 '변신' 과정을 거쳤다.

소설의 결말은 씁쓸한 뒷맛을 극대화하기 위해 카프카가 애쓴 흔적이다.

카프카 소설의 많은 전개가 작위적이지만, 이 장면은 유독 더 그렇다.

거의 직설적으로 느껴질 만큼, 카프카는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을 결말부에 진하게 새겨넣었다.


그러나 생각할 거리는 여전히 남는다.

골칫거리가 사라진 지금, 가족들은 과연 예전의 나태함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을까?

아버지의 절도와 그레테의 주경야독이 과연 지속가능한가 하는 질문이다.

위기의 시기에 퍼올렸던 아드레날린이 여전히 남아 있을까.


마지막으로 <변신>을 읽은지 대략 4~5년 지난 것 같다.

그 사이에 내게는 많은 일이 있었다.

단지 흥미로운 소설, 잘 쓰여진 작품 이상으로 <변신>이 내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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