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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Jan 02. 2018

신경학자가 묻는 철학의 난제들

[서평] 리처드 레스택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뇌>

샐리와 앤이 방안에 같이 있다. 샐리는 자신의 상자에 사탕을 넣고 방을 나간다. 앤은 샐리의 상자에서 사탕을 꺼내 자기 상자로 옮겨 넣는다. 이 연극을 지켜본 아이들에게 연구자는 묻는다. 조금 후에 방으로 돌아온 샐리는 사탕을 찾으려고 어디를 뒤져볼까?

세 살짜리 아이들은 샐리가 돌아와서 앤의 상자를 뒤져볼 것이라고 답한다. 세 살 먹은 아이들은 아직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한다. 그래서 앤이 사탕을 옮기는 것을 샐리는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생각에 반영하지 못한다. 네 살 때부터 아이들은 샐리가 자신의 상자부터 찾아볼 것이라고 대답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자아의 형성과 관련하여 유명한 심리학 실험인 샐리-앤 테스트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능력은 3년 8개월 경에 형성된다고 한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는 모피어스가 주는 빨간 약을 먹기 전까지 자신이 기계에 의해 사육되고 있다는 '현실'을 전혀 자각하지 못했다. 그는 1990년대에 소프트웨어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으로서, 낮에는 컴퓨터를 두드리고, 밤에는 클럽에서 사람들과 만나는 경험을 늘 '감각'해왔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감각기관이 보내오는 정보에 의존해서 세상을 지각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신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이 사람처럼 움직이도록 프로그램된 로봇이라 할지라도 그걸 알아낼 방법이 없다. 그래서 자신만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의식하는 존재'라는 주장, 즉 유아론(solipsism)이 존재하는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철학자들을 오랫동안 괴롭혀 왔다. 세상 모든 진리를 서술했다고 주장하는 논리실증주의자들조차, 이 문제에 관한 한 자신들의 해법이 엉성하다는 것을 자각할 것이다. 논리실증주의 바이블 <언어, 진리, 논리>에서 저자 에이어(A. J. Ayer)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관찰해 온 결과, 그들이 행동하고 말하는 방식이 우리 자신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남들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사람이라고 인식한다는 편리한 주장을 한다.

현대 뇌신경학은 우리 뇌 안에서 거울 뉴런이라는 것을 발견해 냈다. 거울 뉴런은 다른 존재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 보는 능력을 가능케 한다. 샐리-앤 테스트에서 세 살 먹은 아이들은 아직 거울 뉴런이 발달하지 못한 상태여서 샐리의 입장에서 상황을 생각하지 못한다. 그런데 거울 뉴런은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거울 뉴런은 처음에 원숭이에게서 발견되었다. 땅콩을 집어먹는 원숭이와 그 모습을 관찰하는 원숭이 둘 다에서 뇌의 같은 부분이 활성화된 것이다.

상대의 표정을 살피고 은연중에 그것을 따라하는 것은 우리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이다.


다른 사람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는 흡연자는 거울 뉴런이 활성화된다. 그런데 비흡연자는 다른 사람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아도 이 부분이 활성화되지 않는다. 즉, 흡연자는 담배를 피우는 모습에 공감하지만, 비흡연자는 그러지 못하는 것이다. 거울 뉴런은 역지사지를 가능하게 한다. 매트릭스를 운영하는 기계들이 거울 뉴런을 우리 뇌 속에 심었는지는 모르지만, 거울 뉴런의 존재는 유아론의 강력한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물론 거울 뉴런이 내 머릿속에도 있는지를 살펴보는 일이 정말로 가능한지는 문제가 된다).

마음이란 무엇인가? 유아론을 다르게 표현하면, '나 이외의 다른 마음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회의적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컴퓨터의 발명자인 앨런 튜링은 상대가 인간인지 컴퓨터인지를 파악하기 위한 '튜링 테스트'를 고안해 냈다. 문제는 1960년대 중반에 고안된 심리치료용 프로그램 '엘리자'가 이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것이다. (2014년에야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인공지능이 나타났다고 하는 책도 있다. 예컨대 임창환의 <뇌를 바꾼 공학 공학을 바꾼 뇌>가 그렇다.) 튜링 테스트가 완벽한가 하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컴퓨터가 이 프로그램을 통과했다는 사실은 마음의 정의에 심각한 도전장을 던진다.

데카르트가 정신과 육체를 분리한 이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육체와 분리된 정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육체와 정신이 분리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도, 정신이 우리 몸의 '뇌'에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테제를 논박하기 위해서 옛부터 자주 인용되는 심장 이식 수술 이야기가 있다. 심장 이식 수술을 받은 할머니가 예전에는 시도해 본 적도 없는 바이크 타기나 과격한 스포츠를 즐기고, 나중에는 젊은 여자에게 성적으로 끌리는 경험까지 하게 되었는데, 그런 변화의 원인이 이식받은 심장이었다는 이야기다. 그 심장은 바이크 질주를 즐기다가 뇌사에 빠진 젊은 남자의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도, 심장은 겨우 스포츠나 성적 기호 정도만을 결정할 뿐, 우리 마음의 대부분은 뇌 안에 자리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그럴까? 저자 리처드 레스택이 해주는 문어 이야기를 들어보자.

문어는 굉장히 단순한 생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행동은 놀라울 만큼 다채롭다. 문어는 음식과 여러 사물에 선별적으로 손을 뻗어서 잡을 수 있으며, 촉수로 피부를 비질하여 몸을 청소하고, 포식자로부터 몸을 숨기며, 조개와 돌을 모아서 집을 지을 수도 있다. 심지어 지능적으로 보이는 미심쩍은 행동을 내보이기도 한다. 문어가 들어 있는 수조를 응시하면 문어가 당신을 쏘아볼 가능성이 크다. (23쪽)

문어는 연체동물이고, 가장 멍청한 생물 중 하나인 달팽이와 가까운 사촌 간이다. 그런데 어떻게 저런 행동이 가능할까? 달팽이와 문어의 차이는 뇌가 아닌 몸에 있다. 달팽이와 달리, 문어는 여덟 개나 되는 힘센 다리와 인간의 눈과 비교해도 성능이 뒤지지 않는 눈을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해 주위 환경과 복잡한 상호작용이 가능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문어의 마음은 뇌보다는 촉수와 눈, 다리와 같은 신체 활동에 기인하는 것이다. 마음을 뇌와 같은 물리적 형태와 동일시하는 것은 마음이 가진 고도의 복잡성을 무시하는 일이다.

문어가 보여주는 놀라운 지능은 마음이 단지 뇌 속에만 존재한다는 선입견에 대한 훌륭한 반증이다.


인간의 뇌는 천억 개의 뉴런이 만드는 천조 개의 시냅스로 구성된 네트워크다. 컴퓨터가 단지 반도체 소자의 집합이 아니듯이, 뇌의 진정한 비밀은 뇌의 구조가 아니라 그 운영 방법에 있다. 현대 과학은 우주 저 멀리에 존재하는 블랙홀의 존재를 탐지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인간의 뇌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초보적인 수준이다. 뇌신경학의 최첨단은 아직도 fMRI로 혈류량을 측정해서 뇌의 어느 부분이 어떤 기능을 담당하는지 유추하는 정도이다.

이 책은 아주 흥미롭고 지적으로 도전적인 질문을 스무 개나 던지고 있다. 우리의 의식은 어떻게 형성되는지, 마음은 어디에 존재하는지, 자유의지는 실존하는지 질문한다. 그리고 그런 질문들과 관련하여 뇌신경학이 밝혀낸 여러 가지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알려준다. 그런데 저자는 모든 챕터를 똑같이 맥없는 결론으로 끝맺는다. "아직 해답은 없다."

궁극의 철학적 질문들에 대해서, 한 뇌신경학자가 고심한 흔적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지적 유희였다고 생각하면서 책을 덮는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대사처럼, "우리는 해답을 찾아낼 것이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나는 실망하지 않는다. 과학도 철학도 진보할 것이고, 나도 계속해서 공부할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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