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안네의 <일기>
안네 프랑크를 알게 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국어 시간에 안네의 일기를 읽으면서 내 짝, 선생님, 그리고 내가 했던 말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우리는 또래의 일기장을 공부했던 거다. 그 땐 그냥 국어책에 나오는 텍스트였지만, 안네의 일기는 내가 살면서 가장 많이 곱씹어본 텍스트 중 하나다. 특히 '꼬마 모순 덩어리'가 기억에 남았다. 살아오면서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모순적인가 놀라고는 하면서, 안네의 통찰력을 떠올린다.
우리의 뇌는 세계를 단순화, 패턴화한다. 그대로 기억하기에는 너무 방대한 정보니까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이런 단순화의 예외가 바로 우리 자신이다. 누구나 자기 자신을 어떤 존재로 규정하고 싶어하는 본능이 있다. 그런데 그렇게 규정하고 나면, 그 규정에 어긋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정반대인 특질 역시 자기 자신에게 아주 강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종종 발견한다. 그러면 자신을 '모순 덩어리'라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오, 방금 내가 너무 희망만 갖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용서해줘. 그래서 모두 나를 '꼬마 모순 덩어리'라고 부르는 게 아니겠니? (1944년 7월 21일)
그런데 지금 원문을 다시 접하니 그런 이야기는 아니고, 그냥 자기 자신의 이중적인 모습에 관한 이야기다. 그렇다고 해서 안네의 일기가 주는 감동이 덜하지는 않다. 오히려 더 짠한 느낌이다. 왜냐면 꼬마 모순 덩어리 이야기는 안네가 키티에게 전한 마지막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두 번째 일기인 7월 21일 일기 끝 부분에서 한 번 언급되고, 다음 일기인 8월 1일 일기에서 주제로서 다뤄진다. 그리고 8월 4일, 안네와 사람들은 비밀경찰에 발각되어 끌려간다.
10월이면 해방되어 다시 학교 벤치에 앉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 가득 차 있던 15세 소녀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현실이다.
아, 이 얼빠진 전쟁놀이가 빨리 끝났으면! (1944년 3월 14일)
페터의 첫인상은 매우 안 좋았으나, 점차 무관심에서 호감으로 바뀌어 간다. 내 생각에는 그냥 외로워서 그랬던 것 같다.
페터에게는 아직 호감이 안 가는구나. 아주 진저리가 난단다. (1942년 8월 21일)
한 이틀쯤 페터에게 가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만큼 그리워지니까. (1944년 6월 14일)
안네가 원래 원했던 남자친구는 은신처에서 같이 지내던 페터 판 단이 아니라 예전의 학교 친구인 페터 베셀이다.
페터 베셀과 페터 판 단은 내가 어쩔 수 없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리운 한 사람의 '페터'가 될 것 같아. (1944년 2월 28일)
곁다리 이야기지만, 안네와 은둔자들은 엄청난 부유층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네는 어렸을 적 몬테소리 유치원에 다녔다. 페터는 은둔 중에 생일선물로 모노폴리를 받는다. 무엇보다, 2년이 넘는 은둔 생활을 유지할 정도로 안네의 집에는 돈이 있었다.
전쟁으로 인한 은둔 생활은 10대 소녀를 철학자로 바꾸어 놓았다.
왜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가 하는 이유가 분명해졌어. 그건 내게 참된 친구가 없기 때문이야. (1942년 6월 20일)
나는 누구의 도움이나 충고도 없이 나 자신의 노력만으로 완전한 한 사람의 성인이 되어야 해. 도대체 나 이외의 누구에게서 위안을 얻을 수 있을까? (1942년 11월 7일)
피신 생활을 아예 하지 않았던 편이 낫지 않았을까. 지금쯤 죽어서, 특히 더는 우리 보호자를 위험스럽게 하지 않았던 편이 낫지 않았을까. (1944년 5월 26일)
암스테르담에 갔을 때, 안네 프랑크 하우스를 갈까 고민하다가 그만두었다. 예약제이고 후기가 좋지 않아서였다. 무엇보다, 셜록 홈즈 박물관 제2탄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다시 암스테르담에 간다면, 반 고흐 미술관 다음에는 아마 안네 프랑크의 은신처를 가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