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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지나친 기대는 말고,
감정 일기 써보기

[책을 읽고] 이무석, 이인수, <누구의 인정도 아닌>

by 히말

인정중독에 관한 책이다. 책에 나오는 테스트를 해보니, 나는 무려 0점이 나온다. 인정중독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인정중독의 증상이라고 소개되는 4개 중 2개(완벽주의와 분리불안)를 가지고 있으며, 어릴 적 양육환경 또한 인정중독이 의심된다. 내 아버지는 평생 조금도 일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머님께서 생계를 책임지셔야 했고, 나는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아이를 직접 양육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맡겨야 하는 부모 역시 아이에게는 자기애적 부모로 경험될 수 있다. (57)


또한 나는 가족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시고, 아들 둘이 부족함 없이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게 해주신 어머님에 대해 무한에 가까운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대학 시절, 여자 친구는 내가 묘사하는 우리 어머님에 대해, 세상에 그런 엄마가 어디 있냐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내게는 여자 친구의 엄마 쪽이 이상해 보였다.)


자기애적 부모를 경험한 아이의 모습 6. 부모를 다음처럼 이상화한다. '엄마는 나에게 모든 것을 해주었고 완벽한 엄마였어.' (67)


또한 혼자 있는 것에 대해 외로움과 두려움을 느끼는 것도 자기애적 부모를 경험한, 그래서 인정중독 성향이 있는 아이의 모습인데, 이 또한 나에게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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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인정중독의 경우에도 특효약은 '건강한 자존감'이다. (이쯤 되면 지겹다.) 우리가 궁금한 것은 건강한 자존감이 해답이라는 단답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건강한 자존감을 가질 수 있느냐는 물음에 대한 실천 가능한 해결책이다. 이에 대해, 저자들은 '새로운 관계'를 경험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내가 완벽하지 않아도, 나의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도 나를 버리지 않는 안전한 대상을 만나 깊고 의미 있는 관계를 경험하는 것이다. (100쪽)


문제는 그러한 대상으로 이 책은 무려 '상담사'를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울증에 걸린 정신과 의사 린다 개스크도 상담사와 사랑에 빠졌고, 1980년 오스카 작품상을 탄 영화 <보통사람들>에서도 아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엄마도 아빠도 아닌 상담사다. 하지만 그런 상담사를 만나는 것은 순전히 운빨에 달렸다. 린다 개스크는 수많은 상담사를 거쳤지만, 의미 있는 관계를 형성한 것은 E라는 이니셜로 소개되는 단 한 사람뿐이다.


인정중독을 치료하겠다는 의지는 좋다. 그러나 이 책은 심리상담치료 효과를 과장한다.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오도하고 실망시킬 수 있는 위험한 책이다. 이 책에 나오는 사례는 이런 식이다.


그날 화분 사건을 통해 하나 씨는 아주 특별한 경험을 했다. 그 일 이후 사는 것이 신나고 재미있어졌다. (265쪽)


이건 뭐 돈오점수도 아니고 돈오돈수 수준이다. 죽은 자를 일으켜 세우는 기적이나 다름없다. 실제 상담치료의 효과는 훨씬 덜 극적이다. 우울증을 앓는 정신과 의사 린다 개스크는 <당신의 특별한 우울>에서 훨씬 더 솔직한 상황을 보여준다.


나는 지난 10년간 약 2년마다 우울증 재발을 겪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20년 이상 항우울제를 지속적으로 복용해왔다. 부작용도 경험했지만 대개는 적응할 만한 수준이다. 나는 아직도 너무 예민하고 쉽게 상처받는다. 불안할 때가 잦다. 하루하루 사는 게 힘겨울 때도 있다. (린다 개스크, <당신의 특별한 우울>, 320쪽)



이 책에서 그나마 건질 만한 내용은, 다른 책에서도 수없이 소개된 감정 알아채기에 관한 내용이다. 감정을 회피하기만 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감정을 알아채는 연습을 통해, 감정을 조력자로 바꿀 수 있다. 감정이 내면세계를 이해하도록 돕는 안내자가 되는 것이다.


오늘 하루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감정 경험에 대해, 그때 어떤 느낌이었고, 내 마음에 어떤 갈등이 있었는지 적어본다. 그리고 왜 그런 감정과 갈등을 느꼈던 것인지 자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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