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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의 대화, 그리고 후회

[책을 읽고] 레프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3)

by 히말

이반 일리치는 옆구리 통증으로 고통받다가 죽음을 맞는다. 의사는 유주신이니 대장염이니 맹장염이니 하며 원인을 추측해보지만, 결국 원인도 찾지 못하고 통증을 줄여주지도 못한다. 어쨌든, 이반의 통증은 옆구리에서 시작되었고 그것은 어느 날의 사건 때문이었다.


도배공에게 시범을 보여주려고 직접 사다리에 올라갔다가 발을 헛디뎌 떨어지고 말았다. 부딪친 곳이 아프긴 했지만 이내 괜찮아졌다. (58쪽)


이따금 느껴지던 통증이 결국 지속적인 것으로 바뀌고, 온종일 누워서 지내야 하는 지경이 되자 이반은 결국 옆구리를 부딪쳤던 그 순간을 곱씹게 된다.


'그래 맞아. 바로 여기에서 커튼을 달다가 기습 공격을 당하듯 생명을 잃은 거야.' (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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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돕기보다 병명의 확정에 집착하는 의사에게 이반은 증오를 느낀다. 그러나 의사의 그 모습은 피고인들을 대하던 자신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의사에게 중요한 문제는 이반 일리치의 생명이 아니라 그의 병명이 유주신인가 맹장염인가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이 이반 일리치가 피고인들 앞에서 수천 번도 더 멋들어지게 써먹었던 방법 그대로였다. (중략) 이처럼 중요한 문제에 그토록 무심한 의사를 향한 격렬한 증오가 일면서 몹시 고통스러웠다. (71쪽)


다음 단계에서, 그는 영혼과 대화를 한다. 원하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대답한다. 고통받지 않는 것, 그리고 사는 것. 그러자 영혼이 되묻는다. 예전에는 건강하고 즐겁게 살았는가? 그는 즐거웠던 삶의 순간들을 떠올리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그나마 어린 시절은 되돌아가고 싶을 만큼 좋아 보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누구나 하게 되는 바로 그 질문에 이른다.


'내가 잘못 살아온 건 아닐까?' (1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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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얘기지만, 정답은 없다. 이반의 정신은 허무주의와 구원의 희망 사이를 오간다.


내가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나는 거지? 그냥 그런 거야. 이유 같은 건 없어. (136쪽)


그 순간 이반 일리치는 구멍 속으로 떨어지면서 한 줄기 빛을 보았다. 그리고 비록 자신의 삶이 완전하지 못했다 해도 아직은 바로잡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150쪽)


끊임없이 사흘 동안 계속되는 고통 속에서, 그의 의식은 방황 끝에 빛에 도달한다. 임사체험에서 말하는 그런 빛이다. 톨스토이가 임사체험을 참고했는지는 모른다. 톨스토이의 철학 체계를 생각하면, 이것은 기독교적 구원을 에둘러 표현한 것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다 끝났습니다!" 누군가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반 일리치는 이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끝난 건 죽음이야. 이제 죽음은 존재하지 않아.' 이반 일리치는 숨을 훅 들이마시다가 그대로 멈추더니 몸을 축 늘어뜨리며 숨을 거두었다. (153쪽)


이게 현실이다. 죽음의 자리에 빛이 나타나고, 이반은 기쁨에 겨워 마음속으로 외쳤지만,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이반 일리치는 두 시간 동안이나 더 고통에 시달렸다. 우리의 개인사에 우리 자신의 죽음은 없지만, 다른 사람들의 개인사에 우리의 죽음은 하나의 사건에 불과하다.


슬픈 것은, 죽음이라는 궁극의 경험으로 깨닫는 것을 우리는 결코 우리의 삶에 되먹임할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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