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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까레니나>, 첫 인상

나중에 또 읽을 거니까

by 히말

<안나 까레니나>를 읽었다. 읽고 싶은 생각이 없지는 않았지만 책 두께, 그리고 톨스토이에 대한 내 마음의 평가절하가 나를 주저하게 했다. 첫 번쨰 장애물은 한 친구 덕분에 해결되었다. 평생 책 안 읽은 것 같았던 그가 이 책 읽기를 시작했다고 말한 것이다. 두 번째 장애물은 <이반 일리치의 죽음>으로 해결되었다. 그간 읽었던 <부활>이나 <단편집>과 달리,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톨스토이에 대한 내 평가를 다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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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레스크 소설인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인류 문학 최고의 작품이라 칭찬하는 이 소설을 읽고 난 첫 인상은 이것이다.


안나 까레니나, 정말 악당이잖아?


그녀는 자신의 욕망에 따라 행동하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그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초연하다'라고 썼다가 지웠는데, 안나는 절대 초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사회적 평가에 대해 극도로 민감하며, 특히 사교계가 그녀를 어떻게 보는가에 아주 목숨을 건다. 그럼에도 그녀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자신의 욕망인데, 사교계가 사실상 그녀를 도편추방했음에도 불구하고 음악회에 가는 장면에서 그것이 잘 드러난다. 사람들이 그녀에 대해 쑥덕거릴 것이 100% 확실한데도 그녀는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지 못한다.


물론 여기에서 안나의 욕망은 음악회 따위에 가는 것이 아니다. 욕망에 취해 부끄러운 행위를 하고도 사교계에서 행동의 제약을 받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다.


또한 그녀는 윤리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행동을 한다. 안나가 딸을 방치하는 모습에 돌리는 충격을 받는다. 그녀는 안나를 위로하려고 온 것이었고, 남편에게 해방된 안나의 처지를 속으로 부러워하는 인물이다. 그런 그녀에게조차 안나의 무책임한 행동은 충격적이다. 더구나 그 딸은 안나가 증오하는 남편의 딸이 아니라, 그녀가 사랑해 마지않는 정부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아이의 이가 몇 개냐는 물음에 안나가 틀리게 대답하고, 최근에 난 이 두 개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2권 426쪽)


반면, 아내가 바람을 피워 낳은 딸에 대해 카레닌은 애틋한 감정을 갖는다. 톨스토이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전개를 택했는지 알 수 없지만, 이 장면은 묘한 감동을 불러온다.


갓 태어난 어린 여자아이에게 느껴지는 것은, 단지 연민뿐 아니라 애틋함에 가까운 어떤 특별한 감정이었다. 자신의 딸도 아니며, (중략) 그는 하루에도 몇 차례나 아기방에 찾아가서는 한참 동안 앉아 있었다. (1권 981쪽)


그녀는 돌리에게 자신의 행동을 납득시키려 한다. 그러나 과연 그녀의 말이 설득력이 있을까.


"나는 그저 살고 싶을 뿐이에요. 나를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악한 짓을 저지르지 않으면서 말이에요. 나한테 그럴 권리는 있잖아요?" (2권 420쪽)


살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제외한" 많은 사람들에게 악한 짓을 저질렀다. 물론 가장 큰 희생자는 남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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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코스프레


남편은 그녀보다 18살이 더 많고, 가정적이지 않다. 그러나 그 정도의 죄에 대한 안나의 단죄는 도를 넘는다. 더구나 남편은 그녀의 외도를 여러 차례에 걸쳐 용서하려 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들의 결혼이 안나의 가족 쪽에서 거의 강요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남편 알렉세이가 안나에게 보이는 관대함에는 사회적 맥락도 있을 것이고, 일관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은 그가 보이는 관대함은 안나의 뻔뻔함과 너무나도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안나는 남편의 호의로 안전하게 출산을 하고 난 뒤에도 이렇게 느낀다.


그녀가 지금 바라는 건 간 한 가지, 역겨운 남편의 존재로부터 해방되는 것뿐이었다. (1권 993쪽)


같은 시점, 남편은 이렇게 생각한다.


그는 안나를 위해서는 브론스끼와의 관계를 끊어버리는 게 좋다고 생각했으나, 두 사람 모두 그게 불가능하다가고 여긴다면 또다시 그 관계를 허용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1권 995쪽)


물론, 자신의 잘못에 관대함을 보이는 남편이 바로 그 때문에 더 미워보일 수는 있다. 그런 것이 인간이니 말이다.


"나는 그이가 베푼 선행 때문에 그이를 증오해요." (1권 998쪽)


안나는 남편에게만 이기적으로 구는 게 아니다. 브론스끼의 애정이 식었다고 생각하자, 안나는 그에게도 마찬가지로 행동한다.


그녀의 상상 속에서 그는 야비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온갖 잔인한 말을 했고, 마치 그가 실제로 그런 말을 한 듯 그녀는 그를 용서하지 않았다. (2권 717쪽)


"내가 직접 그이한테 가겠어. 영원히 떠나기 전에 그이에게 모든 걸 말할 테야. 결코, 그 누구도 내가 이 인간만틈 증오해 본 적은 없어!" (2권 740쪽)


그녀는 분노와 증오에 휩싸여 기차에 몸을 던진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그녀는 후회한다.


바로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이 저지른 짓에 경악했다. (중략) "주여, 저의 모든 것을 용서하소서!" 저항할 여지가 없음을 느끼며 그녀가 중얼거렸다. (중략) 그녀가 불안과 기만, 비애와 악으로 가득한 책을 읽는 동안 옆에 두었던 촛불이 그 어느 때보다도 환하게 타올라 여태껏 어둠 속에 잠여 있던 모든 것을 선명하게 비추고는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희미해지더니, 영원히 꺼지고 말았다. (2권 7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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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상황


그러나 안나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있다. 키티가 말하듯, 남자는 이집저집을 돌아다니며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구혼할 수 있지만, 여자는 집에서 기다리다가 청혼한 사람에게 네/아니오를 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결혼 상대가 사랑하는 사람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안나는 브론스끼를 우연히 만나 그를 사랑하게 되었고, 이것은 그녀가 생애 처음으로 느낀 사랑일 것이다. 앞서 나는 그녀가 그녀의 욕망에만 충실하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이제까지 자신의 욕망에 대해 알지도 못했다. 그녀가 욕망의 포로가 되는 것이 무리도 아니다.


만일 소식을 들은 그가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고도 열정적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나와 함께 도망치자"고 말한다면, 그녀는 아들을 버리고 그와 함께 떠날 참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기대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1권 742쪽)



탁월한 심리 묘사


이 소설은 전지적 작가 시점이다. 작가는 등장인물 누구의 마음이라도 읽어낼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톨스토이라는 남자가 안나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심리를 이렇게 탁월하게 묘사할 수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남편을 향해 치미는 악의는 그녀 안에서 일종의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는데, 그것은 물에 빠진 사람이 자신에게 매달려 있는 사람을 뿌리쳐 버릴 때 느끼는 심정과 비슷한 것이었다. 그 사람은 물속에 가라앉고 말았다. 물론 이는 잘못된 행동이었지만 유일한 구원책이었으며, 그 무시무시한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떠올리지 않는 게 상책이었다. (2권 76쪽)


이렇게 안나의 내면을 철저하게 읽어내는 저자는 그 반대편에 서 있는 남편의 내면도 마찬가지로 철저하게 읽어낸다.


굴욕을 겪는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로서는 비록 날조된 것일지언정, 모두에게 멸시당한 지금 남들을 멸시할 수 있을 만큼의 고결함을 지녀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마치 그것이 진짜 구원인 양 자신의 가짜 구원에 매달렸다. (2권 185쪽)


레빈은 키티와 결혼한 다음에도 안나의 미모에 정신을 못 차리는데, 그걸 톨스토이는 직설적으로 묘사하는 대신 이렇게 표현한다.


안나는 소탈하면서도 지혜롭게 이야기했으며, 자신의 의견에는 전혀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반면 상대방의 생각엔 큰 의미를 부여했다. (2권 600쪽)


이런 레빈의 모습에, 키티는 추궁한다.


"당신은 그 추잡한 여자한테 홀딱 반한 거예요. 그녀가 당신을 홀린 거라고요." (2권 612쪽)


당연한 얘기지만, 단순히 심리 묘사만 뛰어난 게 아니라, 모든 묘사가 뛰어나다.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을 그린 장면을 보자. 안나와 브론스끼의 대화다.


"나한테 바라시는 게 뭡니까?" 그가 소박하면서도 진지하게 물었다. "당신이 모스끄바로 가서 키티에게 용서를 빌면 좋겠어요." 그녀가 말했다. 두 눈에서 불꽃이 반짝였다. "당신은 그러길 바라지 않습니다." (1권 339쪽)


다음은 어린 아들이 오랜만에 만난 어머니에게 매달리는 장면이다.


졸음 섞인 미소를 띠고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침대 등받이에서 손을 떼어 어머니의 어깨를 잡고는, 오직 잠결의 아이들한테서만 나는 사랑스러운 냄새와 온기를 풍기며 그녀에게 안겨 목과 어꺠에 얼굴을 비벼댔다. (2권 236쪽)


햇살, 온기, 그리고 아기 냄새가 느껴지는 것은 나뿐일까? 톨스토이는 언어의 마법사다.


다운로드.png 그냥 내가 좋아하는 그림 투척 (엄마와 아기 사진 찾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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