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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소설

[단편] 길 잃은 불랑제 (2/2)

by 히말

서울 한복판에서 영어로 말을 거는 사람, 그것도 도와주겠다는 사람을 만나다니. 땡잡았다고 생각한 그는 주한 스위스 대사관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대학생은 그곳이라면 아주 잘 안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쪽 길을 따라서 10분 정도 걸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 길은 바로 전에 그가 서 있던, 땡볕이 내리쬐는 그 길이었다. 10분을 가더라도 땡볕에서 벗어날 가망이 없어 보이는 길. 그는 대학생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그 길을 걸어갔다.


"그래서 찾았나요?"


"아뇨."


끝까지 걸어간 그곳에 있는 건물이 주한 스위스 대사관과 아주 관계가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외교부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외교부 건물을 빼놓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앞은 경복궁으로 막혀있고, 길 건너편은 글쎄 뭐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꽤나 멀어 보였다.


주한 스위스 대사관 위치를 잘 아는 젊은이가 있다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닌가. 도대체 그 젊은이는 무슨 억하심정으로 내게 거짓말을 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는 땡볕이 내리쬐는 인도를 거꾸로 돌아와 편의점을 찾아 들어갔다. 음료수를 1.5리터 페트병으로 마셨다고 한다. 목이 너무 마르고, 땀은 비오듯 쏟아졌다. 그렇게 그날을 그는 아직도 기억한다고 말했다.


"고생하셨네요. 그래도 결국 대사관에 가시긴 한 거죠?"


"한국 휴대폰이 없으니 대사관에 전화할 수도 없고, 아주 난감했죠."


목을 축이고 몸도 식힌 그는 외교부 건물을 찾아가서 손짓발짓을 해가며 간신히 도움을 얻었다고 한다. 주한 스위스 대사관 직원이 결국 외교부 건물로 찾아와 그를 만났다. 외교부 건물에서조차 영어로 의사소통하기가 대단히 어려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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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결말이지만 그 유해는 삼촌 것이 아니었다.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유해랄 것이 별로 없었다. 유품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스위스 국기가 그려진 찢어진 옷가지와 의무병의 것으로 보이는 가방 정도가 전부였다.


유전자라고 할 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수십 년간 흙속에서 부패하던 옷가지에 무슨 유전자가 남아있겠나. 의무병 마크가 붙어 있는 가방은 삼촌의 유해라고 볼 수도 있었겠지만, 스위스 국적의 의무병으로서 유해가 발굴되지 않은 사람도 여럿이었다.


그걸 삼촌 유해라고 생각하고 수습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일 수 있었다. 하지만 유해 수습은 돈이 드는 일이었다. 스위스 정부에서 돕겠다고는 했지만, 100% 전액 지원하겠다고는 하지 않았다. 대의를 위한 전쟁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조국 땅을 지키려는 전쟁도 아니었는데 국가가 세금으로 전액 지원하는 건 적절치 않다는 판단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냥 저 혼자 한국 여행 공짜로 한 것뿐이죠."


"그런데 별로 즐겁지 않으셨다는 거군요."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한여름 서울의 땡볕에서 그 고생을 했으니."


***


종이 봉투에 담긴 딸기잼을 들고 나는 가게에서 나왔다. 서두르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최대한 태연하게 움직이려고 애썼다. 이제 이 맛있는 딸기잼은 못 먹겠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뭐 어쩌면 아무 일도 아닐 수 있다. 나도 외국인 얼굴은 잘 못 알아본다. 10년이나 지난 동양인 얼굴을 과연 저 아저씨가 알아볼까?


나도 참, 왜 그랬을까? 길거리에서 외국인을 발견하면 먼저 말을 거는 그런 용기는 도대체 어디에서 났던 걸까? 무엇보다, 왜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 못하고 대충 둘러댔을까? 한여름 한국의 땡볕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렇게 온화한 스위스에 한평생 살던 사람에게 말이다.


집에 도착해서, 아마도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농후한 그집 딸기잼을 봉투에서 꺼내 놓으면서 나는 아내에게 빵집 주인과의 대화를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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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 사람 광화문에서 길 잃게 만든 게 자기라는 거야?" 아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물었다.


"그래. 틀림없어." 나는 경찰조서에 서명이라도 하는 기분으로 대답했다.


"아니, 어떻게 그런 우연이 있지? 원수를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는 게 그런 건가? 아니, 그보다 도대체 왜 그랬어? 그 아저씨가 맘에 들지 않기라도 한 거야?"


"아니, 뭐 그럴 리가 없잖아. 그때 그 외국인이 어떻게 생겼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아. 하지만 내가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면, 좀 더 옛날 얘기를 해야 하려나." 나는 테이블 옆 의자를 꺼내 앉으며 말했다. 갑자기 옛 기억이 떠올라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옛날 얘기?" 아내도 맞은 편 의자를 꺼내 앉았다. 이제 정말로 경찰서에서 취조라도 하는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대학교 2학년 때, 영국으로 배낭여행을 갔었잖아, 내가."


"그랬다고 했지. 원래 유럽 여행인데 귀찮아서 그냥 영국에 주저앉았다면서."


"예나 지금이나 뭐 게으른 게 천성이다 보니까 그런 거지 뭐. 암튼 그때 옥스포드에 잠깐 갔었거든. 유스호스텔을 찾으려는데 어딘지 도통 모르겠는거야. 뭐 지도만 들고 무작정 찾아간 거니까. 유스호스텔에 자리가 없으면 훨씬 더 비싼 숙소를 찾아야 하니까 되게 중요한 일이었는데도, 배낭 여행 가이드 책이랑 지도 밖에는 별로 의지할 데가 없었지. 그래서 그렇게 헤매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도와줄까 하고 말하면서 말을 붙이더라고. 그래서 유스호스텔 찾는다고 했지. 지금은 뭐 어떨지 모르겠지만 당시만 해도 옥스포드에 유스호스텔은 딱 하나밖에 없었거든. 그러니까 그냥 유스호스텔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보면 됐었지. 어떤 유스호스텔인지 설명할 필요도 없었고."


"아, 그런데, 설마?"


"그 설마야. 지금 생각해보니까 정말 웃기는 게, 내가 빵집 주인한테 해준 길 안내랑 거의 똑같은 형식이었거든. 이쪽 방향으로 죽~ 걸어가라는 거였으니까. 버스는 하루 몇 번 밖에 없고, 자전거도 없으니 걸어가야 하는데, 한 30분 정도 걸릴 거라고 했던 거 같아. 지금 생각해 보면 뭐 대단한 일도 아니고, 사실 웃음이 날 정도니까 오히려 추억이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그때 땀을 얼마나 흘렸을지 지금 생각해봐도 아찔할 정도야. 8월 땡볕에 정말로 한 시간은 걸어 갔다고. 그 큰 배낭을 매고 말야. 내가 배낭 맨 걸 보고 자이놀, 그 싱가포르 친구가 닌자 거북이 같다고 했었단 말야. 내 몸집보다 훨씬 큰 배낭을 매고 한 시간을 걸어갔다고. 우리나라보다야 낫지만 그 여름 땡볕 아래를 말야. 내가 걸음이 느린 것도 아니잖아? 그런데 한 시간을 걸어가도 아무것도 없더라고. 아니, 오히려 산길이 나오는 거야. 아무래도 이상한 것 같아서 길을 거꾸로 돌아 나와 지나가던 사람에게 다시 길을 물었지. 아까 그 사람이 방향은 얼추 맞게 가르쳐줬지만, 죽 걸어가서 되는 길은 아니었던 거지. 그냥 동서남북 중에 어느 방향에 있는지 알려주는 게 길안내는 아니잖아?"


"정말 더웠겠다. 자기, 걸음도 빠른데 말야."


"두 달 동안 걸어다녔으니까. 초원이 다리 백만 불짜리 다리, 뭐 그런 건가. 귀국해서 공항에 앉아 있다가, 옆 사람에게 화장실 좀 다녀오게 배낭 좀 봐달라고 했더니, 그 사람이 놀라더라고. 하도 까맣게 타고 말라서 우리나라 사람 아닌 줄 알았대."


"그래서, 유스호스텔은 찾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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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긴 갔지. 두 번째 사람이 도와줘서 어두워지기 전에 도착했고, 자리도 있어서 싸게 하루 묵을 수 있었지. 하지만 오후 5시 이전에 식사 예약을 해야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곳이었는데, 그 시간 지나서 도착하는 바람에 저녁을 굶었다고. 유스호스텔이 정말 시 외곽에 있어서 근처에 식당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었거든. 저녁 식사는 예약한 사람만 먹을 수 있다고 하면서 날 걱정하던 요리사 아저씨 표정이 아직도 생각난다니까. 국자를 한 손에 들고 말이지, 자~ 저녁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이렇게 외치는데, 얼마죠? 하고 물으니까 예약한 사람만 먹을 수 있다고 하면서 진심으로 날 걱정해 주는 눈빛이었거든."


"배고픈 거 못 참잖아, 자기."


"꽤 배고픈 저녁이었지. 그렇게 걸었으니. 이층 침대 위층에 앉아서 가방에 남아있던 스니커즈 깨물어 먹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네. 정말 울적했지."


"그래서, 그거 복수했다는 거야, 설마?"


"그럴 리가 없잖아. 그게 무슨 복수야. 모르는 사람에게 당했으니 모르는 사람에게 갚아준다? pay it forward? 받은 선행을 제3자에게 돌려주듯이 악행도 제3자에게? 복수 같은 걸 생각하고 그랬을 리가 없잖아. 세상에 그렇게 이상한 사고 회로를 가진 사람이 어딨어. 그리고 하도 오래 전 일이라 나중에는 그 생각을 하면 오히려 웃음이 났다고. 단지, 그때 내가 왜 알지도 못하는 길을 가르쳐줬을까 생각해보면,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그때 기억이 순간, 나를 조종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거지. 나도 모르는 내 마음속의 어떤 사악한 존재가 말야.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거지. 지금 생각난 거라고."


***


말을 길게 해서인지는 몰라도 나는 목이 말랐다. 자리에서 일어나 물잔에 물을 따라 마시는데, 정말 경찰서에서 조서라도 작성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이야기를 돌리고 싶었는지 한국전쟁 이야기를 꺼냈다.


"암튼 빵집 아저씨가 한국에 온 것도 한국전쟁 때문인 건데, 아직도 우리나라는 한국전쟁의 나라인 건가."


"한국전쟁이라면, 미국 골프장에서 만났던 참전용사 할아버지 생각이 나네. 엄청 고집불통이었잖아. 북한 사람들은 왜 독재자에 맞서 싸울 생각을 안 하냐고 했었지. 독재에 맞서 싸우지 않으니 독재에 시달려도 싸다고 했잖아." 아내가 대꾸했다.


"우와, 너도 그 할아버지 기억하는구나. 하긴 그렇게 유난을 떨었으니."


"그런데, 그 할아버지 정말 참전용사였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 나는."


"하긴 그렇네. 김정일이라는 이름은 알만한 사람들 다 아는 거고. 그 할아버지가 한국 관련해서 뭐 분명하게 말한 것도 없으니까."


"빵집 주인도 마찬가지 아냐?" 정곡을 찔렀다는 듯이, 아내가 빙긋 웃었다.


*** 끝 ***


길 잃은 불랑제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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