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이라는 소재는 지리멸렬한 수준으로 흔해 빠졌다.
브래드 피트의 리즈 시절 꽃미모를 볼 수 있는 <조 블랙>,
개인적으로 설정이 가장 마음에 드는 강풀 미심썰 시리즈의 사신들,
더블 천만 관객의 <신과 함께>...
그러던 중, 이사카 고타로의 <사신 치바>를 만났다.
1. <사신 치바>
6개의 에피소드가 나오는 옴니버스다.
첫 에피소드는 빈약하다.
사신이란 개념은 대강 만든 느낌이고, 스토리 전개는 지나치게 작위적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야쿠자 이야기. 지겹다.
사신이 죽을 사람을 일대일로 마크한다면, 김전일은 어떻게 하지? 라는 공상을 하는 타이밍에
세 번째 에피소드, <산장 살인사건>이 나온다.
역시 재미는 없다.
네 번째 에피소드, <연애 상담사 치바>가 아니었다면 책을 덮었을지도 모른다.
아주 재미있지는 않지만, 앞의 세 에피소드에 비하면 일취월장.
그리고 대망의 다섯째 에피소드가 나온다.
가장 긴 에피소드이기도 하고, 가장 재미있고, 무엇보다 감동적이다.
그리고 여섯째 에피소드에서 약간의 반전(?)이 나오면서 잘 마무리된다.
시작은 미미했으나 끝은 창대했다.
그래서 같은 작가의 속편, <사신의 7일>을 읽게 되었다.
2. <사신의 7일>
<사신 치바>에 대해 좋은 평을 했지만, 핵심 소재인 사신의 설계는 매우 허접하다는 말은 해야겠다.
사신이 음악을 좋아한다는 컨셉이라면, 축음기 발명 이전에는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사신 치바>에는 사신이 과거를 이야기하는 장면이 하나도 없다.
그걸 작가가 아주 나중에 깨달았나 보다.
<사신의 7일>에서 치바는 시시때때로 과거 이야기를 한다. 주로 에도 시대 이야기.
그런데 설득력이 제로다.
천년이 넘게 사신 일을 했다는 치바가,
인간의 속성이나 사회적 관습을 잘 모른다는 듯한 표현이 아주 지겹게 나온다.
학습 능력이 없는 사신인가?
사신은 인간에게 정체를 들켜도 되는 존재인가 보다.
그러나 이 소설에 대한 나의 가장 큰 불만은 지루한 전개다.
딸의 복수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시도 때도 없이 만담이나 한다는 전개는 지나치게 부자연스럽다.
그런 전개의 이유는 단 하나.
단편 길이의 소재로 장편을 쓰기 위함이다.
상상력의 빈곤이라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사신 치바>는 참 좋았는데,
이건 정말 아니올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