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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Nov 22. 2022

빈곤 포르노

빈곤 포르노라는 말이 논란 중이다. 간단히 말해 남의 빈곤을 즐긴다는 것인데, 몰래 훔쳐보는 성격이라 포르노라는 명칭을 붙인 것 같다.


나도 예전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왜 불행을 그리는 소설에 더 끌리는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친구에게 물어보니 별일 아니라고 대답했다. 사람이 원래 그렇다는 것이다. 친구의 그 말에 내가 그 당시 수긍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희극보다 비극에 끌리는 나 자신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


박주영의 <법정의 얼굴들>에서 이런 구절을 만났다.


"이런 영화들을 불편해 하는 시선이 있다. 빈곤 포르노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동의할 수 없다. 포르노가 아니라 리얼리즘이다."


저자의 주장은 이렇다. 포르노라는 것은 인간의 삶에서 극히 일부분을 편집해서, 마치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과장한 것이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의 일상은 편집이 아니다. 늘 비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빈곤을 그린 영화나 책은 포르노가 아니라 리얼리즘이라는 것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빈곤 포르노가 논란이 되는 이유는 그것이 포르노적 성격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빈곤이 구경의 대상이 된다는 데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걸작, <가난한 사람들>에도 이미 이 문제가 제기되어 있다.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푸는 자선은 가난을 구경한 대가라는 것이다.


대런 맥가비는 <가난 사파리>라는 책을 통해 현대 사회에 만연한 같은 현상을 비판한다. 빈곤 포르노라는 말은 물론 강한 주장을 담기 위한 표현이다. 그러나 빈곤 포르노라는 말을 만들어놓고 '포르노'라는 부분을 공격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본말전도다.



***


내 생각에 우리가 가난을 구경하는 현상은 포르노라기보다는 사파리에 가깝다. 포르노처럼 어떤 한 순간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고, 사파리처럼 그들의 일상을 구경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포르노는 편집이지만 사파리는 편집이 아니다.


박주영의 말대로, 포르노인가 아닌가는 결국 관찰자의 시각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포르노를 보면서 그게 포르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괜찮은 것일까?


우리는 포르노를 원하지만 그걸 보는 모습을 들키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부끄러운 행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는 사파리를 부끄러운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특권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로 돌아가보자. 부자들은 자신들이 베푸는 자선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재난을 당한 사람들을 늘어세워놓고 자선물품과 함께 사진을 찍는 행위는 부끄러워해야 하는 행위다. 다시 말해, 가난을 구경하는 행위는 부끄러워해야 마땅한 행위이지만, 실제로 우리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도록 문화적으로 교육된 것이다.


그런 현상을 깨려면, '포르노'라는 막강한 단어를 구사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그러나 과격한 그 표현 자체가 공격대상이 되어 본체가 부당한 공격을 받는다면 그 전략은 실패한 전략이다. 그래서 나는 사파리라는 단어가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사파리도 충분히 강한 표현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동물에 비유되는 상황이다.


<가난 사파리> 역시 가난을 파는 책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차별점은 저자가 가난하다는 점이다. 비유적인 의미에서 가난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그 <가난 사파리>의 대상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작가와 방송인/가수로 유명해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부자라고는 할 수 없다.


리얼리즘이라 한다면, 이보다 더 리얼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물론, 직접 체험한 노숙자 경험을 책으로 쓴 조지 오웰의 <Down and Out in Paris and London>이 거의 백년 전에 나와있기는 하다.)


이렇게 위대한 인간도 흔치 않다


소결.


텍스트는 물론 그걸 만든 이와 별개로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그러나 그 해석을 단지 관찰자의 시각에 맡겨놓는 것은 또 하나의 극단이다. 그래서 <빈곤 구경>을 수요측에서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문제와 함께, 그걸 공급하는 쪽에도 그 의도와 책임을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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