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 넘치는 캐릭터, 흥미로운 전개, 실망스러운 결말

[책을 읽고] 히가시노 게이고, <백조와 박쥐>

by 히말

***강력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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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와 박쥐>(2021)를 읽었다. 살인을 고백한 한 남자. 그러나 믿기 어려운 살해 동기.

살인범의 아들과 피해자의 딸, 그리고 집념의 형사가 사건의 진상을 파헤친다.

그러는 사이, 재판 자체에만 집중하는 양쪽 변호사들의 모습도 흥미진진하다.


문제는 사건의 진상이 드러난 다음이다.

죄를 덮어쓰기로 한 동기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사랑하는 여자의 아들을 대신해 죽겠다고?


암 선고를 받았으니 막 살겠다는 결심이 아닌 다음에야, 터무니 없다.

살인범의 가족으로 살아가야 하는 아들은 어떻게 돼도 상관없고,

사랑하는 여자의 아들은 만난 적도 없다.


사랑하는 여자가 살인자의 가족으로 힘겹게 살아온 세월을 목격했으면서,

죄 없는 아들에게 그 굴레를 씌우겠다고?


게다가 진범 살인자는 소년범이다.

기껏해야 소년원 잠깐 다녀오는 걸 막으려고,

젊은 아들의 인생을 망치겠다니.


이 소설 분량의 80%가 진상을 향해 다가가는 과정이다.

선량한 구라키가 살인죄를 뒤집어쓸 정도라면, 뭔가 뭉클한 사연이 있을 거라고,

독자들은 기대하며 페이지를 넘긴다.


그런데 그 사연이라는 게 억지다.

이런 배신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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훨씬 지엽적인 것이지만, 문제점은 하나 더 있다.

진범인 소년이 악인으로 그려지는 점이다.


소년법의 문제를 지적하려고 한 것 같은데,

소설 끝에 몇 문장 더한다고 갑자기 소년법이 사회의 화두가 될 거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길 바란다.


소년법의 문제를 제기하려면,

<방황하는 칼날>(2004) 같은 작품을 써내는 것이 제대로 된 방법이다.


물론 그런 훌륭한 소설을 또 써내는 건 쉽지 않겠지만.

아무튼, 소년법에 대한 작가의 분노는 현재진행형인가 보다.


물론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이런 식의 문제 제기가 소용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뿐이다.


게다가 소설도 망치지 않았나.

진범 소년에게 눈물 겨운 사연이 있었다면,

억지 결말이 조금은 더 설득력이 있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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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이 소설이 데뷔 35주년 기념작이라고 한다.

히가시노 게이고 중에 제일 실망스러웠던 것이 <라플라스의 마녀>였는데,

그건 데뷔 30주년 기념작이었다고 한다.

40주년 기념작이 벌써 걱정된다.



사족 둘


구라키는 대단히 미묘한 캐릭터다.

살인 사건을 두 번이나 오도했고, 그 과정에서 애먼 사람들이 고통받았다.

그런데도 미워할 수 없고, 동정을 넘어 호감이 가는 캐릭터다.

이 책은 의외로 독서토론에 꽤 괜찮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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