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읽었다. 과연 글솜씨가 나쁘지 않아 그냥 심심풀이 스낵으로 즐기기에는 적당한 글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에게는 1도 도움이 되지 않는 책이다. 평생 비만한 적 없는 사람이 쓴 다이어트 책과 같은 종류다.
지위
저자는 불안의 원인으로 지위에 관한 딜레마를 지적한다. 결국 사회적 지위에 대한 열등감, 또는 그 가능성이 불안을 만든다. 중세에는 주변 사람들도 모두 못 살았으니 괜찮았는데, 오늘날엔 내 눈에 보이는 주변이 전 세계이다 보니 제프 베이조스보다 가난한 나 자신이 한심하고 불안해서 못 참겠는 거다.
후루쇼프는 닉슨이 초대한 미국 전시관에서 <보통 미국인의 집>을 보고 거짓말 하지 말라고 분노했다고 한다. (내가 아는 후루쇼프가 아닌데? 핵전쟁 일으키겠다는 케네디한테 양보한 사람이 기껏 전시물을 보고 분노했다고?)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에서 본 고르바초프의 연설문을 보면, 소련 시민들이 국민소득에 비해 열악한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적어도 불행하지는 않았다.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그걸 읽으며 내 예전 직장 동료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동유럽 출신인 그녀는 당시 캐나다에서 살고 있었는데, 어렸을 적에 인형을 딱 한 개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캐나다로 건너오니 다들 인형을 수십 개씩 가지고 있었지만, 어린 시절 자신은 인형이 한 개라서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행복했다. 어렸을 적 그녀와 함께 놀던 주변 아이들도 모두 인형이 한 개뿐이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녀는 무상 의료와 보장된 일자리 이야기도 했다.)
대처 방법
저자는 지위 불안에 대한 대처 방법으로 다섯 가지를 제시한다.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그리고 보헤미아적 마인드다.
철학에 기대 불안감이 타당한 근거에 기반한 것인지 검토할 수 있다. 예술을 통해 사회적으로 높게 평가되는 가치 이외의 것을 찾을 수 있다. 정치...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정치는 모든 것을 해결할 수도, 망칠 수도 있는 것이니까.
기독교...에 대해서도 할 말이 없다. 솔직히 기독교가 거론되는 것 자체가 어이없다. 천국에 갈 테니 이승에서 좀 불안해도 괜찮다, 지위가 낮아도 괜찮다는 건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단테의 9층 지옥을 얘기하는 장면은, 본인이 그것 믿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 솔직히 좀 웃겼다. 기독교적 도덕률에 따라 가난한 자가 도덕적으로 더 우월하다는 이야기도 설득력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미 그런 시대가 지났다고 본인이 조금 전에 얘기하지 않았던가.
보헤미아적 마인드란, 간단히 말해 히피 정신이다. 세속적 성공보다 자유를 중시한 사상은 언제나 있어 왔다. 그러나 이것 역시 해결책은 아니다. 잭 케루악의 소설이자 히피즘의 성전인 <On the Road>의 주인공은 나중에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다. 잭 케루악 본인도 평생을 히피로 살지 않았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소설 속 인물일 뿐이다.
소결
불안에 대한 제대로된 대처 방법이라면 불교 철학이 있다. 게다가 <마음챙김>이라는 이름으로 불교 철학의 가장 핵심적인 도구가 이미 널리 보급되어 있다. 그걸 언급도 안 했다는 것은, 저자가 매우 무식하거나 매우 편협하거나 둘 중 하나다.
저자가 제시하는 다섯 가지 대처법은 기본적으로 모두 도피다. 잠시 현실을 잊는 것이다. 저자의 제안보다는 잠이나 마약 중독이 더 나은 해결책 아닐까.
무엇보다, 저자는 불안하지 않다. 저자는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주 높은 지위를 향유하고 있으며, 지위 불안은 거의 없을 것이다.
강 건너 불 구경은 재미 있다. 100년쯤 전에, 소위 인텔리라고 하는 종류의 인간들이 멸시를 받았던 게 바로 이것 때문이다. 그들은 사회 문제를 강 건너 불 구경 대하듯이 했다. 이 책도 다르지 않다.
저자가 껌 씹는 마인드로 쓴 책이라면, 우리도 그렇게 대하는 것이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