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스왠슨의 원힛 원더

[책을 읽고] 피터 스왠슨,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

by 히말

*** 스포일러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


결국 피터 스왠슨은 원힛 원더(One hit wonder)의 작가로 기억될 것인가.


그의 데뷔작, <아낌 없이 뺏는 사랑>에서는 사람을 실제로 죽이는 팜므 파탈이 나오며, <Her Every Fear>에는 죽어 마땅한 사람들을 죽이겠다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이 두 가지가 절묘하게 배합되어 탄생한 것이 <죽여 마땅한 사람들>에서 세계 독자들을 열광시킨 릴리 킨트너다. 작가는 후기에서 릴리 킨트너로 캐스팅하고 싶은 배우로 에이미 애덤스를 지목했다. 난 이 책 읽을 때까지도 에이미 애덤스라는 배우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릴리 킨트너 역으로, 그것도 작가에게 직접 지목당하는 것은 여배우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 아닐까.


MV5BYjM1ODZmYzQtZjE5ZC00NmM4LWExZjMtYWE2NDg0MzEzZjhjXkEyXkFqcGdeQW1pYnJ5YW50._V1_.jpg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 대히트를 치고 나서, <Before She Knew Him>이 나왔다. 릴리에 비하면 한참 못 미치지만, 충분히 매력적인 캐릭터 매슈가 나온다. 반전의 가성비가 좋지 않지만, 충분히 괜찮은 작품이다. 다른 건 둘째 치고, 스왠슨은 일단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 줄 아는 작가라고 생각했다.


그의 초기작 둘은 한참 나중에나 읽었다. 워낙 평점이 좋지 않아서다. Goodreads 기준, 둘 다 3점대다.


<아낌 없이 뺏는 사랑>은 확실히 캐릭터에 치중한 소설이다. 그러나 여주인공 리아나는 기존의 팜므 파탈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흔한 에로틱 스릴러에 나올 만한, 특별할 것이 전혀 없는 캐릭터다. 그리고 사건의 진상 역시 흔한 에로틱 스릴러 수준이다. 스왠슨이 릴리 킨트너를 만드는 데 필요한 경험치를 먹여주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은 소설이다. 특히 진상이 밝혀지고 난 다음에 벌어지는 질질 끄는 전개는 이해할 수 없다. 에필로그라도 해도 될 이야기가 한없이 늘어진다.


<Her Every Fear>는 죽을 만한 사람을 죽여야겠다는 캐릭터, 헨리가 등장한다. 그러나 이 캐릭터는 사실 그냥 사람을 죽이고 싶은 살인마임이 밝혀진다. 헨리라는 사람과 엮이면서 사람을 사귈 수 없게 된 코빈의 처지가 가엾기는 하지만, 이 소설은 그다지 흥미롭지 않다. 모든 일이 끝나고 난 후반부에서 벌어지는 질질 끄는 전개 역시 그대로다. <아낌 없이 뺏는 사랑>과는 달리 이 소설에는 반전도 없는데 도대체 뭐 하는 걸까.


***


그리고 신작,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 평점이 처참하다. Goodreads 3.5다. <Her Every Fear>보다 못하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나쁜가? 평점 때문에 선입견 없이 읽기 어려웠다. 읽고 나니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다. 다만, 살인 교환이라는 식상한 소재, 가장 쉬우나 욕 먹기 딱 좋은 서술 트릭(이라고 쓰고 서술 기만이라고 읽는다), 억지 범인을 설정하고 뒤에 수습하는 주객전도적 행태는 과연 비판받을 만하다.


다시 말해, 이 책의 가장 큰 단점은 책을 참 쉽게 쓰려 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주요 장치는 앞의 작품들에서 우려먹고 있다.


죽어 마땅한 사람들을 죽이면서요? (52쪽)


여기까지는 자기 자신에게 바치는 오마주(그런 게 있다면)로 봐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살인마는 주인공을 만나 이렇게 말한다.


네 부탁대로 에릭 앳웰을 죽인 뒤에 기분이 어찌나 좋던지 내가 괴물이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지. (398쪽)


와, 이거 너무한 것 아닌가. 다른 소설이나 영화에서 10만 번쯤 본 대사다. 게다가, 작가의 전작 <Her Every Fear>에서 헨리가 했던 말과 거의 같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그리 나쁘지 않다. 재미있게 하루 이틀 보낼 수 있는 책이다. 더구나 추리소설 매니아라면 유명한 추리소설들이 소재로 사용되었으므로 읽는 재미가 더욱 쏠쏠할 것이다. 아쉽게도, 나는 셜록 홈즈 시리즈와 김전일 시리즈를 제외하면 추리소설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릴리 킨트너는 정말 굉장했고, 매슈 돌라모어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맬 커쇼는 실망스럽다.


피터 스왠슨은 언제나 반전을 추구하지만, 그의 장기는 기발한 트릭이나 절묘한 플롯이 아니다. 캐릭터 메이킹이 그의 장기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 책에 단 한줄평처럼, 그는 이제 약발이 다해 가는지도 모르겠다.



사족


피터 스왠슨은 언제나 보스턴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만든다. 보스턴은 딱 한번 가봤지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도시다. 이 책에도 공원의 오리 동상이라든가 하는 내용이 있어 즐거웠다. (나는 책에 나오는 여행객들과는 달리, 사진을 찍지 않았다. 그래서 unsplash에서 David Trinks의 사진을 가져왔다.)


david-trinks-bMOJa8mBxMw-unsplash.jpg


이전 08화아랍, 과연 매혹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