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손원호, <이토록 매혹적인 아랍이라니>
몇 년 전 미국 유학 시절, 예멘에서 온 유학생을 두 명이나 만났다. 둘 다 여성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들과 꽤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예멘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고, 예멘에 대해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야 알았다. 예멘이 무려 내전 중이라는 것, 그리고 남존여비가 매우 심한 나라라는 것.
이 책에서 예멘에 관한 장을 읽으면서 그들 생각을 했다. 조용한 성격이었던 A는 언제나 가만히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수업 시간에 짝이 되어 논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 되어도, 그녀는 상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외향적인 B는 그 어떤 논쟁에서도 절대 지지 않으려 했다. 그녀는 나와 마찬가지로 간헐적 단식러였기 때문에, 잡담도 꽤 많이 했다. B는 여러 나라에서 온 히잡 군단의 수장이었다. 이들이 예멘에 있을 때 성차별을 당했을 거라고는 생각하려니,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내전 중인 나라를 나와 미국으로 유학을 올 정도라면, 이들은 그 나라에서 특권층일 것이다. 그러나 특권층이라도 여성이다. 어떤 여성 사회주의자가 말했듯, 프롤레타리아 여성은 노예의 노예이고, 유산계급 여성은 기생충의 기생충이다. 빈 살만의 개혁으로 여자도 운전이 가능하도록 사우디 법이 개정되었지만, 남자들과 주변의 눈치를 보느라 실제로 운전을 하는 여성 인구는 별로 없다고 한다. 내가 만났던 예멘 출신의 두 유학생들도 삶이 그다지 녹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좀 더 잘 대해줄 걸 그랬다는 생각도 든다.
책에는 저자의 아랍 사랑이 듬뿍 담겨 있다. 그러나 설득되지는 않는다. 내게 아랍을 가장 매력적으로 보여준 책들이라면 모리 카오루의 <신부 이야기>, 그리고 왜곡이 심하지만 흥미진진한 한승희의 <천일야화> 정도다. (무려 조조와 관우가 나오는 천일야화다.)
서구 열강에 의해 비참한 운명에 던져진 아랍인들을 나는 동정한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잘 알려진 1차 대전 당시 영국의 사기 행각, 미국의 맹방인 이스라엘에 의해 오랫동안 살던 땅을 빼앗긴 팔레스타인, 수천만의 인구를 가지고도 4개 나라에서 소수 민족으로 살아가는 쿠르드족, 그리고 미국이 손수 엄선한 독재자들 아래에서 핍박받으며 살아야 하는 아랍인들의 운명이 안타깝다.
그러나 내가 직접 만나 본 아랍인들은 그다지 유쾌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예전 회사 동료였던 파키스탄 출신의 알리라는 사람 좋은 친구를 제외하면, 살면서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종류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나보다 100배는 넘는 아랍인을 상대했을 저자의 경험도 그렇게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예멘인 공항 직원과의 에피소드는 제3자인 내가 봐도 혈압이 오를 정도다.
"왜 막는 거죠? 저에게는 티켓이 있습니다. 출국할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이러는 이유가 뭡니까?"
"이유? 내가 시키는 대로 안 했기 때문이지. 나를 화나게 했어. 그게 이유야!" (2부, 예멘)
살면서 별 신경을 쓰지 않게 되는 동네가 세 곳이다. 아프리카, 중동, 그리고 남미. 그들의 지금 모습은 유전자가 아니라 환경이 새긴 흔적이라는 것을 잘 안다. 노예 상태인 흑인들을 더럽고 동물적이라고 모함했던 미국인들도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인식은 감각에 휘둘린다. 지금 눈에 보이는 모습을 외면하는 게 쉽지는 않다.
아픈 역사 때문에 아픈 현실을 사는 사람들인데, 그들의 지금 모습만 보면서 꺼려하는 나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다. 그러나 아랍인이나 남미 사람들의 특징이라고 흔히 소개되는 느슨한 시간 관념, 규칙보다 인간 관계를 중시하는 점, 근거도 없이 자기 주장에 매달리는 점 등은 몇 십 년 전 한국인의 특징이라고 소개되던 것들이다. 이런 것들은 그들의 <현재> 특성일 뿐이다. 바꾸려고 생각하면 바꿀 수 있는 것들이다. 현재 그들은 바꿀 능력이 부족하거나, 바꿀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아랍인들의 시간 관념을 카이로스라고 멋들어지게 포장하는 것보다는, 그런 시간 관념이 경제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고 비판하는 사우디 누군가의 비판 쪽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저자도 인정하듯, 그들도 자기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경우라면 시간 관념이 칼 같이 날카로워지지 않던가.
아프리카와 남미를 중동과 함께 묶는 것은 온당치 않다. 중동은 석유라는 저주(?) 때문에 먹고사는 걱정에서 해방되었다. 석유라는 생명줄을 쥐고 있어서, 세계의 비즈니스 관계자들이 그들의 비위를 맞추려 노력한다. 그들이 느슨한 시간 관념을 비롯한 구시대적 유물을 그대로 유지하는 이유는, 아프리카와 남미의 경우와는 다르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아프리카나, 세계 유일 초강대국의 앞마당이어서 사사건건 상왕의 재가를 받아야 하는 남미는 바꿀 능력이 부족한 경우다. 중동은 다른 경우다. 충분히 비판 받을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