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아만 아니었다면

[책을 읽고]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by 히말

싱아


예전에 읽었을 때는 감흥이 없었다. 재미도 없었다.


제일 맘에 들지 않았던 것은 제목을 강조하기 위해서 뜬금없이 싱아 이야기를 불쑥 꺼내는 대목이었다. 내 기억에 이 책에는 싱아가 딱 세 번 나오는데, 첫 번째 대목을 제외하면 맥락 상 전혀 이상한 곳에서 불쑥 나온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체크해봤다.


첫 번째 언급은 주인공이 서울에서 아카시아 꽃을 먹고 나서 속이 미식거릴 때다. 싱아의 신맛으로 상한 비위를 가라앉히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매우 적절한 등장이다.


두 번째는 뜬금없다. 조리풀을 뜯다가 생각이 났다는 것인데,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고 토씨 하나 안 틀리게 재방송을 하는 무딘 신경은 도대체 이해하기 어렵다.


세 번째 등장은 고향을 다시 찾았을 때다. 싱아가 지천이기는 해도 이미 쇠서 먹을 만하지 않다는 얘기다. 이건 적절한 등장이라 할 수 있지만, 이미 재탕을 하고 나서 조금 뒤에 나오는 얘기라 효과성이 확 떨어진다.


싱아 운운하는 대목은 여전히 식상했지만, 다시 읽으니 어런저런 대목에서 느끼는 점이 많았다. 우선, 태평양 전쟁 말기와 한국 전쟁이라는 드라마틱한 역사가 개입된 스토리는 재미없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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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하지만 도움이 되는


태평양 전쟁 말기, 마을에서 종이로 그릇 만드는 게 유행했다고 한다. 종이를 찢어 물에 담근 다가 놓은 걸 절구로 찌어 그릇을 만든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귀한 고서나 옛 문헌이 사라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문헌의 가치도 중요하겠지만 그때 며느리들이 누린 해방감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중략) 고서도 그릇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엄마와 숙모들이 요샛말로 스트레스를 풀고 나서 맛본 건강한 즐거움은 죽는 날까지 그분들의 마음속 어딘가에 남아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253쪽)


이번에 이 소설을 다시 읽으며 가장 와닿았던 대목이다. 전쟁이란 공격성의 충돌이고 공격성은 남성적이다. 포식 동물의 허기를 제외하면 자연에서 발견되는 공격성의 대부분은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수컷들의 본능에 기인한다.


전쟁 중에 여성성은 이중으로 소외된다. 사람 죽일 무기를 만들겠다고 일제가 금속을 죄다 징발해 버린 집구석에는 그릇이 귀하다. 쓸모없는 줄 알았던 책무더기가 쓸모있는 그릇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느껴보는 해체와 재조합의 즐거움이란. 남자들이 써갈겼던 책들을 파괴하는 즐거움도 분명히 있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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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는 대목들


문학 전집에서 <신곡>이나 <파우스트>를 꾸역꾸역 읽은 소감에 대해서 말할 때는, 나도 속이 뜨끔해졌다.


- 그렇게 억지로 읽은 걸 결코 잘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무슨 뜻인지 이해도 못 하고 하여튼 읽긴 읽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시는 안 읽었고, 누가 그런 걸 좋다고 하는 소리를 들으면 정말 알고 그럴까 열등감 반 의심 반으로 받아들이니 말이다. (274쪽)


실용적인 것을 선호하는 풍조는 전쟁 후에 생겨났고 그때까지만 해도 일제 잔재랄까, 순수 학문을 숭상하는 기풍이 승할 때라 문리대는 '대학의 대학'이라고 자처하며 기고만장할 때였다. (328쪽)


역시 뜨끔한 구절이다. 아직도 문리대 사람들은 가슴속에 이런 생각을 막연히 가지고 있을 것이다. 교수든 학생이든. 실제로 나는 철학이야말로 궁극의 학문이라고 서슴없이 말하고 다닌다. (그리고, 철학에 버금가는 학문이 물리학과 수학이라고 생각한다.)


인민군이 삼팔선 전역에 걸쳐 남침을 시도했다는 뉴스를 듣긴 했지만 전에도 삼팔선에서 충돌이 잦았고, 그때마다 국군이 잘 물리쳐 왔기 때문에 그저 그런가 보다 했다. (339쪽)


요즘에도 가끔 북한이 미사일을 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무 생각이 없는데 외인들이 코스피, 코스닥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상존하는 위협 요소에 무뎌지지 않고 어떻게 살겠는가. 안보불감증은 당사자에게는 오히려 당연한 것이다.


봉천(선양 시)행 개찰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고 그 줄이 웅성거리면 나는 가슴이 마구 뛰었다. 가족들의 보호로부터 행방불명이 돼 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203쪽)


휴전선 때문에 사실상 섬나라나 다름없는 요즘의 우리 현실과 달리, 당시에는 국경이라는 게 실제로 있었다. 해방을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명시적으로 보이는 탈출구가 어떻게 다가왔을지, 쉽게 상상이 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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