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해서 확인하기가
그렇게 귀찮은가

워크 에식 수준이...

by 히말

일기가 아니고 남에게 보이는 글이라면,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예의가 있다.

글을 세상에 내보이기 전에 몇 번 훑어보고, 잘못된 것이 없나 살펴보는 일이다.

맞춤법도 이 일에 포함되지만, 사람은 실수하는 존재다. 아무리 교정을 해도, 몇 개는 새어나가는 법이다. 독자들이 그런 것을 가지고 트집을 잡지는 않는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말하는 내용의 오류다.

검색어만 치면 내용상 오류가 있는지 확인이 가능한 시대다.

이걸 안 했다는 것은, 아주 무책임한 일이다. 또 그렇게 오류가 있는 책을 그냥 세상으로 내보낸 출판사는 도대체 뭐 하는 걸까. 출판사는 글쓴이와 세상 사이에 자리를 잡고 통행료를 징수하는 트롤에 불과한가?


the-troll.jpg


아주 좋은 책을 읽었다. 너무 어려워서 접근하지 못하던 주제에 관해 기초적인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준, 아주 고마운 책이다. 그런데 이 좋은 책에 옥의 티가 아주 많았다. 책의 주제와 직접 연결되는 내용도 아니고, 아주 중대한 오류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인터넷에 검색 한 번만 했더라면, 또는 주변 사람에게 한 번이라도 글을 봐 달라고 부탁을 했다면 도저히 걸러지지 않을 수 없는 기초적인 오류들이었다.


책 시작부터 <어린 왕자>의 보아뱀 그림 이야기가 나온다. 그걸 어린 왕자가 그렸다고 한 번도 두 번도 아니고 계속해서 이야기한다. 세상에는 <어린 왕자>를 읽은 사람이 읽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많지 않을까? 나처럼 열 번쯤 읽은 사람도 아주 많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가 그린 그림을 뱀이 아니라 모자로 보는 어른들에게 실망한 어린 왕자의 심정이라고 주장하는 저자에게 공감하기는 쉽지 않다.


거기에서 몇 쪽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양전자 이야기를 한다. 양전자? 이 책 주제로 보아 나올 얘기가 아니다. 사례를 드는 와중에 폼을 지나치게 잡은 것이다. 설마 이게 알고 쓰는 얘기는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전에 어린 왕자 이야기를 들었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가 역시나로 확인되는 것은 한참 뒤였다. 저자 왈, 양전자와 음전자가 합쳐지면 원자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우리와는 다른 우주에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출판은 왜 이쪽 우주에?)


책을 넘기다 보니 이번에는 예술에도 아는 척을 하고 싶었나 보다. 반 고흐의 <의사 가셰의 초상>이 역대 공개 경매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는데, 그게 아직도 깨지지 않는 기록이라는 것이다. 이 책이 출판된 시기는 2014년이다. 이 그림과 함께 세상에서 사라지겠다는 일본인이 저 최고가 기록을 세운 후 24년이나 지난 시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의심스러운 이 믿음을 왜 검증해 볼 생각을 안 했을까?


https://www.invaluable.com/blog/most-expensive-painting/


2022년말 현재 기준으로 <의사 가셰의 초상>보다 공개 경매에서 더 비싸게 팔린 그림이 22개가 있으며, 이중 9개가 책 초판 인쇄일인 2014년 9월 이전 기록이다.


글쓴이는 집에 인터넷이 없는 걸까? 아니, 그렇다고 치자. 출판사에도 인터넷이 안 깔려 있다고?

원효 대사 흉내를 내며 술 먹고 고기 먹는 승려들을 향해 어떤 스님이 이렇게 말했다. 계율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


기본도 지킬 생각이 없는데, 왜 책을 세상에 던지는 걸까.


Portrait_of_Dr._Gachet.jpg
portrait-of-dr-gachet-by-gogh-.png
우리 세계의 <의사 가셰의 초상>과 평행 세계의 그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