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점이 있는 책이 더 좋은 책이다

[책을 읽고] 마우로 기옌, <2030 축의 전환>

by 히말

책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느 날,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살바도르 달리가 기발한 생각을 했다. 식사 대금을 지불하는 수표에 멋들어지게, 누가 봐도 달리가 한 것 같은 요상한 서명을 한 것이다. 수표를 받은 식당 주인은 횡재했다고 생각하며 이 수표를 액자에 넣어 식당 벽에 장식했다. (피카소가 낙서했던 냅킨을 떠올렸겠지.) 수표는 현금화되지 않고 그 자리에 영원히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달리는 "공짜 점심"을 먹었다. 달리는 명성이라는 무형 자산을 통해 스스로 화폐를 만들어 낸 셈이다.


공짜 점심을 한 번으로 그만 둘 이유가 없는 달리는 이 행각을 계속해 나갔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웬만한 식당에는 달리의 수표가 벽에 걸렸다. 사람들은 이 수표가 별 가치가 없다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었다. 식당 주인들이 수표를 들고 은행으로 달려갔다. 달리는 그동안 먹은 점심값을 한꺼번에 뱉어내게 되었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간단하다. 사람들의 믿음이 있다면, 허공에서라도 가치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화폐 역시 근본적으로는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인류의 <공통 서사>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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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쓴 위 글에서, 나는 블록체인은 살아 남을 것이나 비트코인의 미래는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블록체인에 대해서, 이 책 저자와 나는 생각이 같다. 다만, 비트코인에 대해서 나는 불확실하다고 말했으나, 저자는 확실히 실패했다고 단언한다. 지나친 변동성으로 인해 교환수단으로서는 완전히 실패했다는 이야기에는 나도 공감한다.


그러나 가치 저장이나 가치 척도 기능에서도 실패했다고 말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왜 실패했는지 근거를 제시하지도 않았으니 반론을 펴기도 어렵다. (뒤에서 다른 사례를 또 들겠지만, 이 책에는 어떤 주장을 하면서 근거를 대지 않고 어물쩍 넘어가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많은 투자 은행을 비롯한 다수의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가치 저장 (및 투자)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비트코인 도미넌스를 비롯한 많은 지표가 소위 알트코인들의 가치 측정에 직간접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 정도만 지적하고 넘어가겠다.


이 책은 아주 많은 분야를 다룬다. 넓은 범위에 걸쳐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대단히 훌륭하다. 다만, 각각의 주제에 대한 저자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책 처음부터 계속되는 <기-승-전-이민자 만세> 패턴은 유머라고 생각하고 넘어가고, 책 후반부에 나오는 주장을 하나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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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 경제 옹호


저자는 공유 경제의 장단점을 간략히 설명한 다음, 자신은 공유 경제를 옹호한다고 말하면서 세 가지 논거를 제시한다. 하나, 공유 경제는 자원 낭비를 줄인다. 둘, 공유 경제는 플러스 알파의 가치를 창출한다. 셋,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공유 경제는 공유지의 비극이 아니라 생산적인 결과로 이어진다.


첫 번째 주장은 이미 많은 논의가 된 사안이다. 예컨대 우버가 활성화되면, 사람들이 공유 차량을 이용할 것이므로 차량 구입이 줄어든다는 식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우버의 마케팅 구호와는 달리, 우버를 운전하는 사람들의 직업은 대개 우버 운전수다. 남는 시간에 용돈을 벌기 위해 운전대를 잡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생계비를 벌기 위해 하루 종일 운전을 한다. 택시, 그리고 다른 우버 차량과 경쟁하기 위해 그들은 차량 상태에 신경 써야 한다. 헌 차를 몰고 다니는 것은 상상도 하기 어렵다.


개인적인 경험을 말해보자면, 나는 백 번도 넘게 우버 차량을 이용했지만 지저분한 차량이 걸린 것은 딱 한 번뿐이다. 그 차도 내부 청소 상태가 나빴을 뿐, 차량 자체가 오래된 것은 아니었다. 우버 차량 중 연식이 5년 이상 된 차는 대단히 희귀할 것이다. 저자도 인정하듯, 우버 차량은 일반적인 출퇴근 차량에 비해 매우 빠르게 소모된다. 우버는 오래 된 차량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버의 사업 포트폴리오에는 우버 파이낸싱이 있다. 우버 운전자들이 새 차량을 할부로 구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서비스다. 이 사업의 존재만 봐도, 공유 경제가 자원 낭비를 줄인다는 주장은 성립하기 어렵다.


에어비앤비도 마찬가지다. 내가 이용했던 에어비앤비 숙소는 딱 한 곳을 제외하고는 전부 에어비앤비 전용 부동산이었다. "남는 방"을 빌려주는 게 아니라, 에어비앤비라는 경제 활동을 하기 위해 별도로 마련한 부동산이라는 말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해도, 자기 집 빈 방을 빌려주는 사람보다 여러 채의 부동산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빌려주는 사업자의 물건이 더 좋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두 번째 주장은, 공유 경제가 사람들이 지불하는 비용보다 더 큰 가치를 창출한다는 주장이다. 이게 좀 어이가 없는데, 저자는 경제학자 스티븐 레빗의 계산에 따르면 그렇다고 한다고 말하면서 그냥 지나간다. 계산 내역까지는 아니어도 약간의 부가 설명은 하고 지나가는 게 보통 아닌가? 너무 많은 주제를 다뤄서 그런지 몰라도, 이 책에는 이런 식으로 주장만 하고 근거를 대지 않는 대목이 너무 많다.


경제 활동에서 부가 가치가 창출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게 너무 당연해서 설명을 하지 않고 지나갔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그렇다면 이 주장은 아예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설명할 필요도 없는 당연한 현상을 왜 주장한단 말인가?


공유 경제가 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공유 경제로 인해 대체되는 경제 활동 역시 원래라면 부가 가치를 창출했을 것이다. 따라서 양쪽을 비교해야 한다. 스티븐 레빗은 그 계산을 했겠지만, 저자는 무슨 이유인지 제일 중요한 증거를 빠뜨렸다.


세 번째 주장이야말로 어이없다. 저자는 공유 경제가 반드시 공유지의 비극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텃밭"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정한 상황에서는 공유 자산도 잘 관리된다는 것이다.


전시 상황이라는 것을 일부러 만들 수는 없으니, 규칙을 정하고 규칙을 어기는 사람에 대해 제재를 가하면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미 그렇게 해서 대차게 말아먹은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저자는 모르는 건가? 소련 말이다. 혹시 저자는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에 비해 더 효율적이라 생각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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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좋은 책이다


위 사례에서 보듯, 이 책은 액면 그대로 결론을 받아들이기에는 허점이 많다. 이 책에서 말하는 일들이 2030년에 일어난다고 생각하고 경제 활동에 참고했다가는 아찔한 순간을 경험할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은 좋은 책이다. 책이란, 결론을 흡수하려고 읽는 것이 아니다. 철학 서사 자체가 아니라 <철학하기>가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책과의 대화다. 당면한 근접 미래에 관해 생각할 거리를 구석구석 찔러주는 이 책이야말로 그런 대화에 더없이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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