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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May 31. 2023

농사 짓는 철학자는
현대 자본주의가 마음에 안 든다

[책을 읽고] 세키 히로노, <글로벌리즘의 종언> (2)

돈이 모자란다


저자의 첫 번째 주장, 구매력이 생산량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주장을 살펴보자. 기업은 기업활동으로 창출한 부가가치의 일부만을 노동자에게 임금으로 지급한다. 당연히 임금 총액은 부가가치 총액보다 작다. 노동자에게 귀속되지 않는 부분은 감가상각과 은행 이자다. 경제 전체에서 보면 이 부분이 계속 누출되기 때문에 총소비는 총생산에 비해 작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서는 어디에서 약탈해 오는 수밖에 없는데, 그 방법은 현대 경제에서 무역으로 나타난다.


오류를 살펴보자. 일단, 감가상각은 사라지는 게 아니다. 자본재 유지를 위한 비용은 "실제로" 지출된다. 가끔 목돈으로 나가는 것을 회계상 나누어 놓았을 뿐이다. (물론 세금 대책이다.) 따라서 감가상각분으로 모아 놓고 한꺼번에 지출하는 금액은, 해당 자본재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기업에 지급되고, 그 기업 노동자에게 분배된다. 은행 이자도 마찬가지다. 은행업 종사자들에게 배분된다. 


마르크스는 바보가 아니다. 노동가치설을 그 혼자만 주장한 것도 아니다. 노동가치설은 논리적으로 구멍이 없다. 그걸 찾았다고 생각했다면, 세키 히로노는 책 쓰기보다는 만담계로 진출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물론 보케 역할을 추천한다.)


창출된 부의 배분에 대해서는 토마 피케티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이 훨씬 더 그럴 듯한 이론을 내놓았다. 국민 경제에서 새는 부분은 다름 아닌 자본 축적이다. 어느 나라를 살펴봐도, 소득 1분위는 지출이 소득보다 많고, 5분위는 소득이 지출을 초과한다. 문제는 다 합쳤을 때 소득이 지출보다 많다는 것이다. 노후가 걱정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소비하지 않는 사람들의 선택을 비난할 수는 없는 거다.


생산에 비해 소비가 적은 이유는 생산의 일부가 자본이라는 형태로 축적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피케티가 주장하는 자산세를 도입하지 않고 이 문제를 조금이라도 완화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정말 문제되는 것은 생산의 배분에 있어 노동이 가져가는 몫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이는 노동 가격의 상승을 기업이 혁신으로 돌파하려는 현상 때문인데, 당연한 것이고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할 수도 없다. 최저임금이 너무 올라 계산대 직원을 키오스크로 대체했다면, 키오스크 산업에서 부가가치가 창출되고, 그게 또 누군가에게는 임금으로 배분된다. 


문제는 여기에서 자본의 분배 비율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자본을 전 국민이 골고루 가지고 있다면 좋겠지만, 실제로 자본 소유는 매우 심각하게 편중되어 있다. 그래서 그 돈을 다 쓸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보다 한계소비성향이 현저하게 낮은) 부자들의 금고에 돈이 쌓이고, 돌지 않는 돈은 경제를 옥죄게 되는 것이다.


이 현상이 극단적으로 계속되면, 제리 카플란이 말하는 <파라오 경제>가 도래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노동이 기계와 AI에 의해 자동화된 가운데, 몇 안 되는 변변찮은 일자리를 위해 만인이 만인에 대해 투쟁하는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석유의 마법


그의 두 번째 주장을 살펴보자. 생산에 비해 소비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유지되는 이유는, 무역을 통해 부족분을 다른 나라에서 조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가가 200달러를 넘어가면 해운업이 유지될 수 없어 무역이 무너지고, 이어서 현재의 자본주의도 지속될 수 없다.


이 주장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글에서 비판했다. 200달러는 그냥 웃자는 이야기일 것이고, 석유 고갈이라는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도 없다.


가장 흥미로운 그의 세 번째 주장을 살펴보자. 자본주의가 고유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지금 잘 나가는 것은 석유의 마법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저렴하고 풍부한 원유 덕분에 경제의 파이가 점검 커지는 세계에서는 부채를 이자까지 얹어 은행에 변제하기도 쉬웠다. (67쪽)


저자가 제공하는 "설명"은 딱 이 정도다. 세계무역과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석유의 마법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텍스트의 빈 부분은 독자가 채워넣을 수밖에 없는 것인가.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석유가 없던 세상을 상상해보자. 무역이라고 해봐야, 비단길 아니면 바닷길이다. 지금도 육로 운송은 비경제적이다. 비단길로 이루어지던 이슬람 문화권의 교역을 저자가 좋게 보는 것도, 비효율적인 무역이라 대규모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본격적인 무역은 바닷길이 제대로 열리면서, 소위 대항해시대가 개막하며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대항해시대는 어떻게 가능하게 된 것인가?


대답은 간단하다. 기술 진보로 가능해진 것이다. 나침반과 육분의에서 시작해서 비타민 C와 정확도 높은 시계(경도 측정용)까지, 해양 항해를 도와주는 각종 기술로 무역이 점차 쉬워졌다. 인력, 풍력, 그리고 석탄을 거쳐 나타난 석유라는 에너지는 대규모적인 무역을 가능케 한 기술 진보의 하나일 뿐이다. 어떤 사람은 컨테이너의 발명이 현대 무역을 가능케 한 일등공신이라고도 말한다.


에너지에 국한해서 살펴봐도, 석유가 특별할 것은 없다. 태양광 발전과 (전기차를 포함한) 배터리 혁명으로 무한 에너지의 시대가 곧 다가올 것처럼 말하는 사람도 많다.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는 모르지만, 해운업에도 적용 가능한 에너지 기술 진보는 분명히 일어날 사건이다. 석유가 아니더라도 해운업은 유지될 것이며, 십중팔구 지금보다 더 효율적이 될 것이다.



욕심을 버리면    있다


저자의 네 번째 주장은,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잘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딱 대놓고 이렇게 발언하고 있지는 않지만, 많은 사례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런 주장을 펴고 있다. 에도 시대의 일본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대표 사례다. (메이지 유신 이후의 일본보다 에도 막부가 훨씬 낫다는 주장에는 물론 적극 찬성한다.)


에도 시대에 대한 연구는 역사의 영역이고, 고증이 필요하므로, 현대 경제에 직접 적용하기 곤란하다. 다른 사례를 살펴보자.


그리스와 쿠바는 둘 다 인구가 1,100만이고, 농업과 관광으로 근근이 외화를 벌어들인다는 면에서도 비슷하다. 그러나 소련의 붕괴로 후원자를 잃은 쿠바는 역경을 어떻게든 극복해 무상으로 지원되는 국가 의료 제도가 흔들리지 않도록 했다. 이것은 유로라는 후원자를 잃은 그리스의 파국과 대조적이다. 쿠바는 선진국 수준의 풍족함을 추구하지 않고 국력에 걸맞은 정도로만 국민 전반의 생활 수준을 끌어올리려 했다. 그래서 교육이나 의료는 무료여도 1950년대산 자동차가 아바나의 거리를 여전히 달리고 있다. 이런 방침 덕분에 쿠바는... (122쪽)


요약하면, 쿠바는 그리스와 달리 욕심 부리지 않고 "국력"에 걸맞게 살려고 작정해서 괜찮았다는 얘기다. 누군가는 의인법이 세상의 모든 비극을 가져왔다고 말했는데, 저자는 국가를 의인화하는 모양이다.


한 사람이 욕심을 자제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국가 차원에서 "방침"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소련이 증명하고 자폭했다. 인간 본성에 거스르는 도덕을 내세워 경제 정책을 끌고 갈 수는 없다.


욕심을 부리지 말자는 논리가 처음은 아니다. 케이트 레이워스는 <도넛 경제학>에서 경제 성장이 아닌, 정상화와 가치 추구를 목표로 하는 경제 운영을 주장했다.


그러나 경제학의 기본 공리는 이기적인 인간이다. 적어도 자본주의 경제학은 그렇다. 시장 실패라는 마이너한 영역이 있기는 하지만, 자본주의 경제는 기본적으로 각자의 이기심이 저절로 효율성을 만들어내는 마법에 의해 돌아간다. 자본주의의 위기를 농사로 돌파하자는 저자의 주장은, 채식으로 세상을 구하겠다는 주장과 비교해도 질적으로 별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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