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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Jun 01. 2023

농사를 지을테니, 기본소득을 달라

[책을 읽고] 세키 히로노, <글로벌리즘의 종언> (3)

이 책의 핵심 주장은 '농(사)'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지만, 정책 제언도 있다. 하나, 기본소득 지급, 둘, 전국 일제 할인 실시, 셋, 정부 통화 발행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저자가 애정하는 에도 시대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논의가 있다. 가장 큰 쟁점은 기본소득이 사회보장을 대체하는가 보충하는가의 문제다. 도입 가능성은 사회보장을 대체하는 쪽이 높겠지만, 사실 이것은 이름만 기본소득일 뿐, 기본소득의 취지에 역행하는 아이디어다.


당연하지만, 이 책에서 주장하는 기본소득은 사회보장을 보충하는 형태의 기본소득이다. 사회의 모든 부가 은행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 주장이다. 그가 사회보장을 대체하는 기본소득을 주장할 리가 없지 않은가. 


저자가 주장하는 기본소득의 취지는 부의 재분배, 즉 빈부격차의 완화다. 사회보장을 대체하지 않는 한, 아무리 작은 금액이라도 기본소득은 빈부격차를 완화할 것이 분명하다. 다만, 넘어야 할 산이 높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회보장을 체하지 않는 형태의) 기본소득이란, 욕심 부리지 말고 살자는 구호만큼이나 도덕 구호로 들리는 것이 현실이다.


나는 기본소득이 언젠가는 실시될 것이라 예상한다. 다만 그 시점은 기술적 특이점만큼이나 애매하다. (다시 말해, 아주 애매하지는 않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실시될 가능성은 반 정도라고 생각한다. 여성참정권과 같은 길을 걷지 않을까.



두 번째 정책은 전국 동시 대할인 행사다. 목표는 당연히 재고 소진이다. 시장경제 자체에 대한 수정 없이 이런 식의 상품 순환을 일으키는 것은 기업에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고, 어쩌면 대공황을 몰고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아이디어의 더 큰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다. 이건 <대한민국 동행 페스타> 같은 자율 참가형 반짝 행사가 아니다. 모든 기업, 모든 상품에 대해 일제히, 1회적으로 실시하는 재고 소진이다. 근본적으로 시장 자체를 부인하는 행위다.


세 번째 정책은 민간 은행이 아닌 정부가 통화를 발행하라는 것이다. 정책 제언 3가지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다. 사실, 돈이라는 것이 정부가 아닌 주체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시대의 미스터리 아닐까? 정부가 아닌 주체가 화폐를 통제하는 나라는 사실 많지 않다. 미국과 영국 정도다. 


대부분의 선진국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기는 해도, 실제로는 정부가 화폐를 통제한다. 민간 은행이 화폐를 발행하는 나라들 중에서 실제로 민간의 입김이 센 것도 미국 정도다. 물론, 그 미국의 달러가 전 세계 경제를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어쨌든, 통화 통제권을 정부가 가져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현재 달러를 연준이 통제하는 사태는 역사적 사건에 의해 우연히 발생한 결과일 뿐이다. 영국 정부가 전쟁 자금 조달을 위해 민간 은행에 화폐 발행을 맡기는 역사적 사건이 벌어졌고, 영국의 많은 제도가 은연중에 미국에 흘러들어 왔을 뿐이다.


나는 블록체인 지지자이지만, 화폐에 관한 블록체인은 정부 규제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쯤은 희망이지만,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나라의 정부 통화가 블록체인을 통해 발행될 것이라 생각한다. 일당 독재라 정책 전환이 쉬운 중국이 첫 스타트를 끊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내용이 있다. 저자는 정부 통화가 오직 교환 수단으로만 쓰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가치 저장 기능을 배제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 취지는 십분 이해하지만, 이런 주장을 자꾸 내세우면 논의가 산으로 갈 수밖에 없다. 유토피아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자꾸 인간 본성에 거스르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말하면 실행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사실은 실천 의지가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도 든다.



축재하지 않는 세상, 참 아름다운 비전이다. 그러나 다람쥐도 나중에 먹을 도토리를 저장한다. 다람쥐보다 훨씬 더 큰 뇌와 에고를 가진 인간에게 축재 본능을 포기하도록 하는 것이 정말 가능하다고 믿는 것일까? 나중을 위한 비축은 욕심 차원이 아니라 안전 욕구에 기반한 본능이다.


이 책은 그 밖에도 이런저런 소소한 정책을 제안한다. 예컨대 이슬람식 금융 도입을 주장한다. 좋은 생각이고, 실현 가능성도 어느 정도 있다고 본다.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것이 실제로 지금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금융권의 엄청난 저항과 로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위험 부담에 대한 대가로 이자를 받는다는 논리 위에 세워진 은행들은 현재 무위험 장사만을 하고 있다. 이건 은행업의 정의에 반하는 행태다.


민간 통화와 정부 통화 사이의 환율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다. 정부가 통화를 발행하기 시작하면, 둘 사이에 어떤 형태로든 교환 비율이 발생한다. 법으로 금지한다 해도 지하 시장이 형성될 것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저자는 통 크게 쏘자는 입장이다. 구 동독과 통합 당시, 서독 정부가 동독 마르크화를 서독 마르크화와 1:1로 교환해 준 사례처럼 말이다. 그 당시 어떤 수라도가 펼쳐졌는지, 저자는 모르는 모양이다.



리뷰를 하다보니, 이 책은 참 구멍 투성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는 중에는 밑줄을 참 많이도 쳤다. 그만큼 흡인력이 있었다. 그런데, 한 발자국만 떨어져서 살펴보면 정말 허황된 이야기뿐이다.


그래도 이런 책이 나와준다는 사실이 고맙다. 하버마스는 두려움 없는 대화 속에서 우리 인류가 진리에 다가설 수 있다고 믿었다. 많은 사람에게 말도 안 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이런 주장을 자유롭게 제시할 수 있는 시대다. 인류가 그만큼 진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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