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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Jun 08. 2023

소수의 악당과 문명의 저주

[책을 읽고] 뤼트허르 브레흐만, <휴먼카인드> (2)

소수의 악당


1943년 11월 22일, 마킨 섬 전투에서 벌어진 일이다.

수적으로 훨씬 열세였던 일본군을 제압하는 데 매우 고전한 미군은 진상 파악에 나섰다.

역사학자이기도 한 새뮤얼 마셜 대령은 참전 병사들을 인터뷰했고, 그중 15~20%만이 실제로 사격을 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리 안의 선한 천사>가 잔혹 행위를 거부한 것이다.


이 부분을 읽자마자,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일본 군인들은 악마인가?

나치 독일은?

저자가 분명히 악인으로 규정하는 코르테스는 어떤가?

인간 본성이 선하다면서 어떤 집단은 예외라고 주장한다면, 그건 인간이란 단어의 정의를 바꾸는 일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내 생각을 수정했다.

많은 사람들이 성악설을 지지하는 이유는, 선한 우리들 사이에 숨어 있는 10%, 아니 1%의 사이코패스에게 이용당하지 않기 위한 진화 적응의 결과 아닐까?



동시에, 나는 쁘리모 레비를 생각했다.

히틀러의 서슬 퍼런 독재 아래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주장한 독일인들에 대해 그는 일갈했다.


도움을 주려는 시도들이 있었다는 것은 저도 알고 있고, 또 위험한 일이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에서 살아온 저는 "전체주의 국가에서 반란을 일으킨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독일의 점령 후에도 이탈리아에서는 빈번했던, 그리고 히틀러의 독일에서는 너무나 드물게 행동으로 옮겨진, 억압받는 사람에 대해 연대감을 보여줄 훨씬 덜 위험한 천 가지 방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쁘리모 레비,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221쪽)


쁘리모 레비는 결국 자살했다.

아우슈비츠조차 살아남은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뻔뻔한 독일인들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그러나 수천만 명이나 되는 한 집단 전체가 사이코패스일 수 있을까?



문명의 저주


저자는 이어 홉스와 루소를 대비시킨다. 서양판 순자 대 맹자다.

그리고 루소의 손을 들어준다.


여기에서 스티븐 핑커와 저자의 입장이 분명하게 갈린다.

핑커는 <우리 안의 선한 천사>에서 인류가 점점 더 평화적인 방향으로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고 말한다.

저자는 핑커에 반대하면서, 우리는 원래부터 선한 존재였다고 말한다.

루소가 주장한 것처럼, 고상한 원시인이었던 우리가 문명에 의해 타락했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그동안 성악설의 근거처럼 널리 퍼진 몇 가지 실험과 사건에 대해 반박한다.

스탠리 밀그램의 전기 충격 실험과 스탠포드 대학교 모의 교도소 실험은 모두 연출된 것이고, 키티 제노비스 사건 당시에는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경찰에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실험 조작은 늘 있어 왔으니 충분히 믿을 만하다.

더구나 당사자들이 인정했다면 믿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내가 사기칠 상인가?


키티 제노비스 사건을 살펴보자.

알려진 것과 다르게, 많은 사람들이 경찰에 전화를 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경찰이 악당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 인류라는 전체 집단의 선함을 주장하기 위해, 자꾸 예외 집단을 만드는 것이다.


이어지는 내용, 즉 문명에 의한 인류의 타락은 이미 수많은 학자들이 주장해온 내용이라 새로울 것이 없다.

잉여농산물의 존재가 일하지 않는 계층을 만들어 냈고, 이들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억압적 제도를 만들고 유지해 왔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우리가 만 년 전에 선한 존재였다는 사실은 현재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선한 존재로 돌아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문명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 즉 불가능한 선택지다.

두 번째는 문명을 유지하면서 우리 안의 선함을 되살리는 것이다.


책의 나머지는 바로 그 방법에 대한 논의이고, 이런 논의가 늘 그렇듯이 설득력이 매우 떨어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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