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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Jun 09. 2023

성선설의 전략적 의미

[책을 읽고] 뤼트허르 브레흐만, <휴먼카인드> (3)

비대칭적 전략  대칭적 전략


인간 본성이 선하다면, 우리의 행동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저자가 제안하는 것은 <비대칭적 전략>이다.

영화 <Pay It Forward>에서 나온 것과 비슷한 얘기다. 즉, 먼저 선행을 베풀라는 이야기.


그러나 저자도 탄식하듯, 현대 사회에서 뻔뻔함은 매우 유리한 특질이다.

모든 (150명 이내의) 사람들과 알고 지내는 고대 사회에서 뻔뻔한 개체는 생존에 불리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사람들과 게임을 벌여야 하는 현대 사회에서 <그대로 돌려주기(tit for tat)> 전략은 사실상 봉쇄된다.


인류는 생존에 유리한 특질로 수치심을 발달시켰으나,

현대 사회에서는 그것이 없는 쪽이 유리하다.

아주 최근까지도 생존에 유리했던 지방 축적 메커니즘이 현대에 이르러 최악의 특질이 된 것과 마찬가지다.


이때까지만 해도, 헤일리 조엘 오스먼드는...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그대로 돌려주기> 전략이 가장 좋은 전략이라 말하면서, 다만 첫 수는 상대에 대한 호의적인 행동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비대칭적 전략>과 같은 전략이다.

(저자는 <이기적 유전자>를 제대로 읽지도 않고 비난하는 것 같지만, 그건 논외로 하겠다.)


그러나 첫 수를 선행으로 하는 <그대로 돌려주기> 전략이야말로 소규모 집단에서나 가능한 전략이다.

현대 사회에서 뻔뻔함이 이기는 이유는, 게임 플레이어가 너무 많아 대개의 상호작용이 1회로 끝나기 때문이다.

뻔뻔한 개체는 단 1회로 끝나는 게임에서 상대의 선행을 받고 그냥 잊어버리면 그만이다.

그 선행을 악행으로 되갚는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다시 보복할 기회를 가질 가능성은 0에 가깝다.

(이쯤 되면, 저자가 <이기적 유전자>를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말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파리 대왕 아타  아이들


이제 아타 섬 아이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자.

아타 섬 아이들이라고 언제나 사이 좋게 지낼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싸우게 될 경우 서로 멀리 떨어져 시간을 보낸다는 규칙을 지켰다.

그러나 내가 이 에피소드에서 주목하는 부분은 그들이 6명이었다는 사실이다.


<파리 대왕>에서 섬에 도달한 아이들의 숫자가 몇인지는 정확하게 나와 있지 않다.

그러나 사건 전개를 통해 추정해보면, 적어도 10명은 넘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2020년 연구에 따르면, 성인 남성의 약 1.2%가 사이코패스이고, 수감자에서는 그 비율이 15~25%에 달한다고 한다.


A broader view of psychopathy (apa.org)


조난 당한 아이들의 수가 늘어날수록, 그중에 사이코패스 내지 덜 도덕적인 아이가 있을 확률이 높다.

따라서 아타 섬에 조난 당했던 아이들이 6명이 아니라 10명이나 20명이었다면,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을 가능성도 더 높았을 것이다.

규칙을 지켜야 하는 사람이 6명인 경우와 15명인 경우는 전혀 다르다.



결론


우리 본성이 선한가 여부를 묻는 질문은 단지 지적 유희를 위한 질문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공동으로 대처해야 하는 많은 과제들이 있다.

기후변화, 빈부격차, 쓰레기 처리, 민족주의, 기술적 특이점, 자원 고갈...


우리가 근본적으로 선하다면, 이런 문제에 대처하는 데 있어 더 자신감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무용한 노력을 쏟아붓는 대신 포기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우리 본성은 악하니 포기하자는 주장은 아무 쓸모가 없다.

그러나 우리 본성은 선하니 잘해보자는 주장이 좋기만 한 것도 아니다.

그런 주장의 진위 여부도 문제가 되겠지만,

그런 주장을 하는 의도가 부정할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남들에게 선행을 권장하며 자기는 남을 등쳐먹는 지도자들을 역사는 언제나 목격해 왔다.

이 책에서 정말로 실천 가능한 아이템을 하나 발굴할 수 있다면,

바로 그런 지도자의 등장을 우리가 늘 경계해야 한다는 교훈일지도 모른다.


지도자는 아니지만, 이런 영감태기 같은 부류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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