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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Jun 26. 2023

게임의 양상이 변했다

[책을 읽고] 얀-베르너 뮐러, <민주주의 공부> (2)

분열의 원인


이 정도로 국가(=국민)가 분열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저자는 특권층과 저소득층이 정치에서 분리된 것을 원인으로 지적한다. 오늘날의 특권층의 과거의 특권층과 달리 아예 '다른 세계'에 산다. 


정치학자 제프리 윈터스는 평범한 부자와 '돈이 너무 많은 나머지 소득 방어 산업(income defense industry)'에 큰돈을 지불할 수 있을 만큼 돈이 많은 부자'의 차이를 결정적인 경계선으로 본다. 케이맨제도에 조세 피난처를 만들어줄 회계사와 변호사를 고용할 수 있는 사람만이 자신의 비서보다도 세금을 덜 낼 수 있는 것이다. (62쪽)


문제는, 저자도 인정하듯 현재의 정치 제도가 이런 식의 특권층 분리를 용이하게 한다는 점이다. 바로 정당 제도와 선거 자금 관련하여 존재하는 진입 장벽이다. 


특권층이 정치 시스템 자체를 자신들의 이익에 맞게 요리하는 반면, 저소득층은 정치 활동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스스로 참정권을 포기한다. 정당은 투표하지 않는 사람들의 요구에 신경 쓸 이유가 없으므로, 이들의 이익은 그 누구에 의해서도 대변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정치 시스템은 특권층에게 유리하고 저소득층에게 불리하게 반복적으로 강화된다. (어떤 사람들은 이 현상을 매우 반기겠지만, 보통 이것을 우리는 악순환의 고리라고 부른다.)


그러나 특권층과 저소득층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유권자의 대다수를 이루는 중간층이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관건이다. <휴먼카인드>의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슬퍼하겠지만, 그들은 자신의 이익에 충실하다.


많은 이들이 적어도 오르반이나 트럼프 부류가 민주주의를 해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안다. 그럼에도 양극화와 불평등이 심한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경제적 이익(실질적 이익이건, 공허한 기대건)을 위해 그 정도는 눈 감아줄 의사가 있는 것이다. (68쪽)


행동경제학이 잘 보여주듯, 인간은 그다지 이성적이지 않다. 그래서 이 상황에서도 실질적 이익보다는 공허한 기대감이 더 큰 역할을 한다. 부자를 대통령으로 뽑으면 자신도 부자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식의 허무맹랑한 심리가 작동하는 것이다.


언덕 아래 불 구경 중인 이스라엘인들


민주주의라는 게임의 본질


민주주의라는 게임의 본질은 무엇인가? 저자는 이것을 탁월하게 설명해낸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게임에  쪽이 다음  게임에는 이길  있다는 생각으로 승복할  있다는 이다. 21세기 포퓰리즘은 바로 이 부분이 고장 나 있다. 이긴 쪽은 다음 번에도 이기려고 게임의 구조를 바꾸려 하고, 진 쪽은 승복하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기본 요소는 자유와 평등이다. 문제는 이 두 요소가 서로 긴장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자유는 평등을 파괴할 수 있고, 평등은 자유를 옥죈다. 자유와 방종의 경계가 모호하듯, 평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규정하기 어렵다.


동등한 영향력 말고 동등한 기회라면 불가능한 이상은 아니다. (86쪽)


저자의 이 말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동등한 기회라는 것도 정의하기 나름이다. 조선 시대 농민에게 과거 응시의 평등한 기회가 주어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동등한 기회가 주어졌다고 말하려면, 적어도 고대 스파르타처럼 아이들을 국가가 양육하는 정도는 해야 한다. 영화 <가타카>에서 보듯, 어떤 것이 공평한 출발인가 하는 문제는 유전자 차원까지, 즉 우리 존재의 밑바닥까지 갈 수 있는 문제다.


짧기는 했으나 고대 아테네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보여주었다. 남성 유산 계급이라는 협소한 집단 내의 민주주의였으나, 아테네인들은 공평한 게임이라는 이상을 성취하는 데 있어 진심이었다. 현대인들에게는 어이없어 보이지만, 제비뽑기로 공직을 채우기도 했다.


간단히 계산해보면 남성 넷 중 하나가 '나는 24시간 동안 아테네 대통령을 지냈다'고 말할 수 있지만, 24시간 이상 대통령을 지낸 이는 아무도 없다는 놀라운 결과가 나온다. (87쪽)


민주주의는 다수의 지배라는 것이 단어의 정의에 포함되어 있다. 소수에 대한 폭력이 내재되어 있는 개념이란 말이다. 그러나 갈등을 다루는 장치로서 선거는 내전보다 훨씬 더 나은 대안이다. 제비뽑기가 실패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제비뽑기로는 사회적 갈등을 다룰 수 없다. 비슷한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뭉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도편추방제에 쓰였던 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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