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도넛

by 유준배

탈출할 수 없는 오늘에 갇혔어.

우린 도넛과 위상동형이야.


어제의 나랑 오늘의 내가

맨날 같은 길에서 마주쳐.

내일도 똑같이 돌아올 거고.


가끔 내가 너이기도 해.

(그렇지 않아?)


발버둥칠수록

시간의 조각칼은

더 정교하게 깎아내.

어디 구멍이 뚫렸는지

툭 치면 굴러가는

도넛같은 하루를,


엉킨 시간 속에서

손톱으로 유리창 긁는 소리 내며

흔적 하나 남기겠다고

오늘에 날카로운 금을 그어댔어.

(내가 할 수 있는 건 겨우 그 정도니까.)


한자리에서 맴돌다가

어디에도 닿지 못한 채

손끝에라도 금 하나 긋고

어제와 오늘을

조금이라도 떼어내는 일.


그러다 문득,

어디에도 없는 내일이

슬그머니 다가올지도 모르는 일.

(그거면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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