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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초 Feb 15. 2022

과민성 대장증후군 입니다만

과대증 환자의 캐나다 생존기

과민성 대장증후군과 관련한 가장 오래된 기억을 떠올려 보자면 수능시험 날인 것 같다. 수능시험 일주일 전부터 성적이 잘 나올까 안 나올까라는 걱정보다 수능시험 날 배가 아플까 안 아플까 가 나에겐 더욱 큰 걱정거리였던 기억이 난다. 긴장을 하면 배가 아파오는 탓에 모의고사 때도 매번 시험을 망치곤 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장이 좋지 않았지만 청소년기 때는 식욕이 워낙 왕성해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먹었다. 가끔 복통을 느끼고 설사를 하긴 했지만 식욕이 통증을 앞질렀던 것 같다. 그러다 20세 초반부터 증상이 조금씩 심해지더니 30대가 되고부터는 병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과민성 대장 증후군도 병이야?


과민성 대장증후군(과대증)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게 무슨 병이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과대증은 당사자에게는 정말 큰 고통이다. 정말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고통을 모른다.


과민성 대장증후군은 네이버 사전 정의에 따르면 '장관의 기질적 이상 없이 만성적인 복통 또는 복부 불편감, 배변 장애를 동반하는 기능성 장 질환이다'라고 한다. 장관의 기질적인 이상이 없는 것이 문제이다. 따로 치료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과대증은 긴장을 하면 증상이 더욱 심해지는 경향이 있어 중요한 행사나 일정을 망치기 십상이다. 이런 이유로 나도 시험이 있거나 중요한 회의가 있으면 끼니를 거르는 편이다. 


'대통령의 글쓰기'의 저자 강원국 작가의 에피소드에 따르면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갑자기 복통이 찾아와 화장실을 갔지만 대변기가 모두 사용 중이어서 소변기에 용무를 봤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2007년 남북정상회담 때는 관장을 하고 행사장에 갔다고 한다.


나 역시도 이런 에피소드가 즐비한데 한 번은 밴쿠버에 있는 한 공원에 놀러 갔다가 갑자기 복통이 찾아왔다. 화장실이 꽤 거리가 멀어 식은땀을 흘리며 찾아갔는데 대변기는 하나뿐이었고 그마저 누군가 쓰고 있었다. 조금만 참아보자는 생각으로 있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다급한 마음에 문을 두드려 머릿속에 있는 모든 긴급상황에 관련된 영어단어를 쏟아냈다. 다행히 그분은 일을 마칠 참이었는지 흔쾌히 바로 나와주었고 큰 사고 없이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찔한 상황이었다.



과대증 환자의 천국 '한국', 지옥 '캐나다'


사실 한국에 살면서 과민성 대장증후군 때문에 피곤하긴 했지만 난처했던 적은 드물다. 배가 아프면 화장실에 가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엔 지하철역마다 화장실이 있기 때문에 급하면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에 가면 된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상가 건물을 찾으면 된다. 단, 이 경우 화장실이 잠겨있거나 휴지가 없는 등의 낭패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캐나다에 오고 나서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일단 공중화장실 개수가 현저히 적다. 밴쿠버에는 정말 손에 꼽을 만큼 공중화장실 수가 많지 않은데 그마저도 대변기가 하나밖에 없어 누군가 사용 중이거나 매우 더러운 화장실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지하철역에도 화장실이 없다. 과대증 환자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다.


나는 주로 최후의 수단으로 카페를 가곤 하는데 그마저도 여의치 않을 때가 많다. 휴일에 영업하는 카페가 그리 많지 않고 대부분의 카페가 오후 5시면 문을 닫아버리기 때문이다.



눈물의 과대증 극복기


과대증의 문제는 앞서 말했듯이 치료 방법이 딱히 없다는 것이다. 기껏 해봤자 프로바이오틱스를 먹거나 증상을 완화시키는 약을 먹는 수준인데 이것만으로 드라마틱한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저 증상을 조금 줄여주는 정도이다.


과대증 증상을 줄이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장을 자극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마다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 알아내는 수밖에 없다. 나 같은 경우는 매운 음식, 기름진 음식, 밀가루, 우유 등에 특히 반응을 하는데 한국 음식에 주로 들어가는 재료들이라 한국 음식을 멀리할 수밖에 없다. 주로 간을 약하게 한 파스타나 포케 혹은 샐러드 등을 먹는 편이다.

 

하지만 과대증 환자로 살아가는 것이 무조건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민한 장 덕택에 항상 건강하게 먹으려고 노력하고 운동도 열심히 한다. 그래서 아직까지 20살 때와 똑같은 체중을 유지할 수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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