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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cos Nov 29. 2015

밤이라는 공간

어젯밤 적어놓은 부끄러운 기록


해가 떨어진 후에는 무언가 모를 아련함이 가슴속에 가득하다.


그러다가 마치 시한폭탄의 시계 소리처럼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한다. 트리거를 작동시키는 것은 빛이라서, 광합성을 하지 못하면 가슴속에 시한폭탄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이 폭탄은 굉장히 위험해서 자칫 잘못하여 터지기라도 하면 돌이킬 수 없이 감성적인 사람이 되어버린다.


지나가는 자동차 헤드라이트에도 마음이 흔들려 오글거리는 글을 쓰는가 하면, 별 것도 아닌 드라마 씬에서 눈물을 질질 짜게 만든다. 그렇게만 끝나면 좋겠지만, 진정한 무서움은 눈 뜬 아침에 몰려오는 부끄러움이다.


몸속에 사는 수 많은 감각이 지난밤을 기억하며 비명을 지른다. 오글거림의 신호는 내 속을 비틀고, 배꼽 아래서는 꼬르륵 신호가 온다. 그러면 그제야 “아. 어젯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하며 후회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일기장 구석 적어논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나에 대한 이야기하며, 드라마 재방송에 나온 씬을 보며 눈물 흘린 남사스런 기억들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참 늦은 밤은 무섭다.

우리를 너무나도 감상적이게 만들기도 하고, 나를 파괴하기도 하고, 때론 나를 완벽하게 만들기도 한다.


늦은 밤 했던 다짐은 안 한 것만 못하다. 이뤄지지 않을 게 분명할 테니. 그저 시한폭탄의 트리거가 작동한 것이어서 ‘내일은 열심히 해야지’, ‘내일부터 난 다른 사람이 될 거야’와 같은 희망으로 가득 찬 이뤄지지 않을 생각으로 잠자리에 드는 것뿐이다.


하지만 아침이 오고 눈을 뜨면 모든 것은 깔끔하게 사라질 것이다. 딜리트 버튼을 누른 것처럼 흔적도 남지 않을 것이다. 남은 것은 양치질을 하면서 왜 팔에 닭살이 돋았는지, 왜 아랫배가 아련하게 아파오는지에 관한 막연한 의문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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