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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cos Dec 11. 2015

#01노트의첫장

첫장 빼꼼히 쓰기

나는 노트를 사고 항상 첫 장에 아주 소중하고 조심스럽게 의미 없는 낙서를 하곤 했다. 뭘 적으려는 지도 모르고, 그렇다고 그림에 소질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줄 몇 개 긋는 것으로 노트의 첫장을 항상 더럽혔다. 하얀 종이에다 멋진 글을 쓴다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내가 종이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긋는 낙서는 쓰레기에 가까웠고, 낙서가 적힌 종이를 갈퀴 갈퀴 찢어버리기 일수였다. 그래서 내 노트의 첫 장은 대부분 찢어진 종이의 흔적이 남아 있다. 생각해보면 그깟 낙서가 뭐라고 종이를 그렇게 찢었을까 하지만 처음은 그만큼 중요하기에 그랬을 것이다. 


새로 산 노트는 인쇄가 잘못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순백의 눈처럼 깨끗하다. 가격이 비싸던 싸던 노트는 다 그렇다. 처음 폈을 때는 이 종이를 어떻게 채울까 고민한다. 물론 다 채우지 못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신중하게 첫 글자를 정자체로 적는다. 만약 글씨를 날려쓴다고 하더라도 그 날림에는 정성이 있다. 


일기장이나 습작을 위해 산 나의 노트의 대부분은 첫 장이 찢겨 있다. 첫 장을 이야기로 쓰기에는 남부끄럽고, 혹시 누군가 노트를 열어서 보게 된다면 첫 장의 글이 나를 대변하는 것 같은 게 너무 싫었다. 그래서 그렇게 실없는 낙서를 쓴다거나, 쓸 때마다 바뀌는 서명을 적거나, 이메일 주소를 적곤 했다. 


나는 내 글짓기 실력을 높이기 위해서 매일마다 글을 쓰기로 다짐했다. 나의 분신인 작심삼일의 버릇에 굴복당하지 않기 위해서, 첫 장에다 조심스럽게 낙서가 아닌 다짐을 썼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언제나 불안감이 도진다. 

지금 쓰고 있는 노트의 첫 장은 찢겨질까? 아니면 몇 개 되지 않은 첫 장이 온전한 노트가 될까? 생각해봐도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님이 틀림없으니 제발 내일은 #02가 붙은 글이 써져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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