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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세 Oct 20. 2020

잿빛은 잘못이 없다

[잿빛일기 0번째] 그날 영종도의 하늘은 흑백사진 같았다

잿빛 하늘. 10월 어느 저녁 인천 3형제섬이라고 불리는 신도, 시도, 모도를 걷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영종도로 돌아가는 배에서 하늘을 봤다. 그야말로 잿빛이다. 스마트폰으로 들이대니 마치 흑백사진 같다. 잿빛. 나의 상태가 지금 이러할까.


불과 두어 시간 전 나는 파주에 있었다. 파주에서 영종도까지는 가깝지 않은 거리다. 나를 여기로 오게 한 것은 일본인 친구 신야가 보내준 사진과 그의 한마디였다(그는 아직 한국말을 몰라서 번역기를 쓰거나 일본어를 사용한다).  


"김 상(나를 일컫는 호칭)! 혹시 이 섬 알아요? 어느 한국인이 sns에 사진을 올렸는데 좋던데요. 나중에 가보고 싶어요."

"그래요, 그럼 내가 한 번 가볼게요. 좋으면 나중에 내가 안내하죠."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시내버스로 전철역까지, 전철로 공항철도로 환승하고, 지하철에서 다시 시내버스로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파주에서 영종도까지 두 시간 남짓 걸렸다. 선착장은 난리가 아니었다. 명절날 고속도로 휴게소보다 더 빽빽하게 차들이 꼬리를 물고 있었는데, 차량 행렬은 도로까지 이어졌다. 다들 배에 차를 싣고 섬으로 들어갈 요량이었다. 나처럼 뚜벅이로 온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차가 없는 덕분에 나는 10분 만에 바로 배에 오를 수 있었다.


배에 오르자 흐린 하늘이 구름을 잔뜩 머금고 있어서 언제 비가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 날씨였다. 마치 나의 마음이 이럴까. 그래 잿빛 하늘. 잿빛 잿빛.

  

잿빛 미래. 글을 쓸 때 부정적인 미래를 이렇게 일컫는다. 잿빛은 왜 어둡고, 우울하고 희망도 없는 상태를 일컬을까.


사실 색은 호불호가 있을 뿐이다. 선악도, 옳고 그름도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잿빛을 부정적인 이미지로 묘사한다. 흰색에 검은색이 적당히(혹은 과하게) 섞여 있을 뿐인데 말이지.


헌데 지금 나의 상태를 색깔로 표현하라면 잿빛이라고 실토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솔직히 잿빛에서 벗어나고 을 때도 있다. 총천연색 무지개 빛깔을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맑은 하늘처럼 푸른 색도, 장미처럼 붉은색도, 민들레처럼 노란색도 느껴보고 싶다.  


그날 배에서 바라본 영종도의 하늘과 바다는 잔뜩 검은 구름을 머금었고, 그 사이를 갈매기가 날아가고 있었다. 하루 종일 삼 형제섬을 걸었던 나는 혼자였다. 김광석의 <혼자 남은 밤>, 들국화의 <제발>, 임재범의 <비상>을 수도 없이 불렀다. 힘들었다. 다리가 아파서인지, 비가 흩뿌려서인지,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였는지, 땀과 비가 섞여서 안경과 눈을 가려서인지. 잘 알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잿빛은 아무런 죄가 없다. 그래서 '잿빛 일기'를 써보기로 했다. 비록 내 일상이 잿빛이라고 하더라도 그 속에도 우울과 절망만 있지는 않을 테니. 곧 비가 내릴 것 같다고 해서 영종도의 갈매기들이 좌절하면서 날고 있지는 않을 테니.    


아참, 신야에게는 연락을 해야겠다. 섬이 멋졌다고, 혼자 20킬로를 걷는 길은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다고, 잿빛 하늘과 잿빛 바다도 좋았다고. 내년에는 같이 갑시다. 그땐 혼자가 아니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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