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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무개 Jan 08. 2021

제 꿈은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긴 호흡

 머릿속으로 생각할 때는 하고 싶은 말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글로 옮길 땐 술술 쓰지 못한다. 어떻게 써야 내 글을 보는 사람들이 흥미를 느끼고, 끝까지 읽을 수 있을지 고민하다 보면 정말 고민하다 끝난다. 웃기게 써야 할까? 아니면 진득한 모습을 보여야 할까? 지금 쓰고 있는 맞춤법이 맞는 걸까? 띄어쓰기가 틀리지 않았을까? 사소한 고민 덕에 내 글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어릴 적부터 꿈꾸던 삶…….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사람처럼 사는 것. 평범하지 않게, 비범하고 특별한 삶을 사는 그런 삶을 원했다. 


 나를 다른 사람에 소개한다면 어떻게 말해야 할까?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해 본다.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본다. 스물여덟, 평균보다 작은 키, 빚은 오천, 입양아, 친부모님의 존재 여부는 모름, 양부모님의 이혼. 키워주신 어머님의 병사, 하나하나 나열해보니 내가 너무 불쌍하다. 이건 뭐 영화가 아니라 다큐다. 슬퍼지니 넘어가자.


 너무 부정적이었다. 조금은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좋은 점을 찾아보자.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입양아라는 사실을 몰랐을 정도로 받은 '어머님'의 사랑. 힘들 때 곁에 있어준 친구들.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나를 가족이라 생각해주며 챙겨주는 친척들. 그리고 내가 아직 ‘세상은 살만하다.’라고 느끼게 해준 여자친구.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돌아보니 나름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 드라마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그 시절의 아이는 절반 정도의 꿈을 이룬 것이 아닐까?


 사는 게 힘들었다, 정말 많이 힘들었다. 군인에서 민간인이 되기 직전에 들은 어머님의 병환. 반년의 간병 생활. 선잠에 빠질 때를 제외하고는 고독했던 시간. 지나고 보니 아주 짧은 순간이었는데 그때는 끝이 보이지 않더라. 절망의 연속, 정말 최악이었지. 반복된 간병 생활 중 문득 든 의문, ‘나 지금 살아 있기는 한 걸까?’ 눈만 끔뻑이던 어머니. 그 시간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인데. 소중한 순간을 불행이라고 생각했던 어리석은 아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만 생각하는 것뿐이었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에 질문을 던졌다.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최종적인 나오는 결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어 한다. 하지만 대부분 만족하지 못한다. 왜 그럴까? 의문의 반복. 문득 ‘행복’에 대한 정의가 궁금했다. ‘행복’이란, ‘행복하다’란 무엇일까?


 행복 :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 만족과 기쁨을 느끼면 행복한 상태가 된다. 그런데 이런 감정들은 상대적이지 않은가? 결국 불만족과 불행한 상황을 겪어야만 행복한 상태를 알 수 있다. 항상 행복하다면 행복을 느낄 수 없지 않을까?


 행복했을 때를 떠올려본다. 소소한 일은 기억나지 않는다. 19살, 늦게 시작한 입시 합격. 학교 잔디밭에서 기타를 치며 막걸리를 마셨을 때. 많은 관객 앞에서 공연했을 때. 이상형의 여자를 만났을 때. 사랑하는 이성에게 무한한 사랑을 받았을 때. 첫 월급을 받았을 때. 친한 친구와 해외여행을 갔을 때. 자전거 여행을 했을 때. 도보 여행을 했을 때……. 나는 고난을 넘기고 목표에 도착했을 때 큰 성취감을 느꼈다.


 내 꿈에 대해 생각했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어떤 꿈을 갖고 있었고, 앞으로 나는 어떤 꿈을 가지게 될까? 선생님, 배우, 작가, 탐험가. 꿈이라고 말했을 때 답할 수 있는 단어들은 직업이다. 직업은 꿈이 아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태어났을까? 원초적인 문답을 계속한다. 문답 끝에 나온 결과는 ‘행복하게 사는 것’.


 예전에 선배들과 했던 대화가 떠오른다. 낭만을 사랑하던 선배와 극단적으로 현실적인 선배. 둘은 정반대의 성향을 지녔지만 긴 시간을 같이 보냈던 사람들이다. 한 번은 술자리에서 ‘행복’에 대해서 토론을 했다.


 인생에 회의적인 선배는 “행복하게 살려고 해도 사회가 행복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들었다. 지금 당장 사는 것도 힘들고 앞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가 있겠느냐?”라는 말을 했고, 낭만을 좋아하던 선배는 답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각을 할 수 있는 지성을 가졌다. 스스로 어떻게 살면 행복할 수 있는지 알고 있다. 행복하게 살지 않으면 스스로에게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답이 정해진 문제는 아니었지만 내 마음은 낭만을 좋아하던 선배에게 끌렸다. 실제로 그 선배는 자신의 행복을 찾아갔다.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연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막 학기 때 연기를 그만두고 도자기를 만들러 갔다. '예술은 좋지만 많은 사람과 부대끼는 것은 맞지 않았다.'라는 간단명료한 이유. 대단했고, 부러웠다. 4년, 군대를 포함한다면 6년이 넘는 긴 시간을 투자한 전공을 두고 다른 길로 갈 수 있다는 것이. 그 용기와 결단력이 부러웠다.


 나는 아직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긍정적인 부분도 부정적인 부분도. 그런 나는 낭만을 좋아하는 선배의 영향을 받았다.


 내 마음이 가고 싶은 곳을 찾기로 했다. 확실한 건 지금 당장 ‘연기’가 재밌지 않고 잘하지도 않는다는 것. 그래서 다른 길을 찾아본다. 공책을 펴 버킷리스트를 적었다. 백개는 금방 채울 줄 알았는데 이십 개 정도 적고 나니 더 이상 손이 움직이지 않더라. 어릴 때 하고 싶은 것들이 정말 많았던 것 같은데……. 세상에 대한 흥미를 잃은 건지, 새로운 시작을 하기에 늦었다고 느끼는지 적기가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었다. 지금 당장 하지 못해도 괜찮다, 죽기 전에 단 한 번만이라도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쭉쭉 적었다. 


 불가사의 눈으로 직접 보기, 오토바이 여행, 자전거 여행, 도보 여행, 외국어 배우기, 그림, 비보잉, 사진, 요리, 헬스, 클라이밍, 영상편집, 포토샵, 자격증, 앨범 제작, 다큐멘터리 제작, 글쓰기, 캘리그래피, 자동차 구매, DSLR 구매, 호텔에서 차 한 잔 하기, 스쿠버다이빙, 번지점프, 페러글라이딩, 글라이딩, 여행 영상 편집, 모발이식, 동굴 탐험, 심해탐험, 바텐터, 아크로바틱, 판소리, 마사지 배우기, 노트북 구매, 명함 만들기, 눈썹 문신, 호스텔 운영, 복싱, 주짓수, 금연, 점 빼기, 서핑, 2세 낳기, 피아노 배우기, 다도, 요가, 특수분장, 타로카드, 관상, 마술. 할 수 있는 것들을 천천히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으로 시작한 건 헬스였다. 등록할 때 어떤 검사를 했는데 체지방량이 3.8이 나오더라. 운동하는 친구들이 말하길, 근육이 금방 붙는 몸이라고 했던 것이 기억난다. 죽기 전 배에 복근 한 번 만들어 보자라는 마음으로 운동을 시작했지만, 실패했다. 단기간에 결과가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재미가 없더라. 그래서 1개월도 안 다니고 그만뒀다. 아쉽긴 하지만 흥미 없는 걸 계속할 이유는 없었다. 


 두 번째는 그림. 중학생 때 되고 싶었던 직업이 선생님과 웹툰 작가였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다만 그림을 배운 적이 없어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학원에 다니자니 대부분이 입시학원이고 부담되는 금액이기에 포기. 할 수 있는 건 따라 그리기였다. 그냥 무작정 모작만 했다. 하루에 3장씩. 한 달 정도 그렸을 즘 확실히 처음에 그린 것보다는 훨씬 나아졌다는 생각에 타블렛을 구매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이후부터 그림 그리는 게 재미가 없더라. 타블렛은 그렇게 창고로 사라졌다.


 세 번째로 한 건 클라이밍. 이건 꽤 재밌었다. 시작한 지 이틀도 안 돼서 중급 난이도까지 갔고, 재능이 있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목표가 눈앞에 보이니 다가가기 쉬웠다. 클라이밍을 하면서 느꼈다.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장기적인 목표보다는 단기적인 목표를 할 때 더 큰 실행력과 성취감을 느낀다는 것을. 근데 날씨가 추워지니까 밖에 나가기 힘들다……. 특히 오토바이로 출퇴근을 하는 나에게 겨울은 지옥이다. 그래서 봄이 될 때까지는 잠깐 쉴 생각이다.


 최근엔 퇴근 후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버킷리스트에 적은 여러 가지 경험을 했지만 아직 확 끌리는 건 찾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불행하거나 초조하지는 않다. 인생은 속도보단 방향이다. 하나씩 하다 보면 언젠가 내 인생을 걸고 싶을 만한 걸 찾을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살아간다. 어떤 걸 알아간다는 건 참 흥미롭다. 어느 정도 배우다 실력이 늘지 않을 때 스트레스도 받았고, 그러다 그만둔 일도 있고 이전보다 더 나아진 적도 있다. 포기하던 지속하던 앎의 과정이 좋다. 배울 때 행복하다.




 행복하다는 감정은 일시적인 것 같아.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져. 그런데 아예 지워지진 않더라. 추억이라 부를만한 걸 떠올리면, 당시의 행복을 오롯이 느낄 수는 없지만 괜스레 웃음이 난다. 


 많은 경험과 오랜 생각 끝에 내린 나의 ‘꿈’은 행복하게 사는 것! 행복을 느끼려면 행복하지 않은 상태도 알아야 해. 행복하지 않은 상황과 감정들을 경험했기에 반대인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거니까. 그림자가 있어야 빛이 존재하는 걸 알 수 있듯이. 앞으로 힘든 일이 있겠지. 지금까지 겪었던 것보다 덜 힘들 수도 있고,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더 힘들 수도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행복했고, 행복할 거야.


 누군가 나에게 꿈을 물어본다면 지금의 난 이렇게 답할 거야. ‘제 꿈은 행복하게 살아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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