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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무개 Dec 27. 2021

샤넬은 어째서 파업을 했을까?

     

샤넬, 파업을 하다.


최근 지인 중 한 명이 '샤넬'에 입사했다. 축하의 인사를 보내며 샤넬은 어떤지, 근무환경이나 복지가 괜찮은지 물어봤다. 무례하게 들릴 수 있지만 나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일들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 하는 성향이 있다. 때문에 월급과 복지, 일의 업무 강도 등 상세하게 물어본다. 다행히 친구들은 그냥 그러려니 하며 말해준다. 


그녀는 일 자체는 무난하지만 현재 '파업'으로 인해 조금 정신없이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파업이라, 파업한다는 이야기는 못 들은 것 같은데……. 뭐, 나야 세상과 타인에 대한 관심이 적어서 그렇다 치는데 주위의 여자들도 대부분 모르다. (기적적으로 트위터에서만 유명하다고 하더라.) 문득 샤넬에서 왜 파업을 하는지, 어떤 이유 때문에 파업이 시작된 지 궁금해졌다.


파업이란?


파업의 사전적 의미는 노동 조건의 유지 및 개선을 위하여, 또는 어떤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한꺼번에 작업을 중지하는 일을 일컬어 파업이라 한다. 보통 파업은 '노조'가 있어야 가능한다. 뜻이 맞는 노동자들이 모여 어떠한 권리를 위해 다 같이 소리 내어 싸우고 쟁취하는 일. 일단 파업이 시작되면 모든 파업에 동참한 노동자들은 모든 일을 중지하고, 회사 앞에 나가 싸운다. 이후 노조와 사 측의 간부끼리 만나 회의를 하고 적정선을 찾고 합의를 보며 파업이 마무리되는데, 적정선을 찾지 못할 경우 파업이 길게 지속될 수 있다. 


'노조'가 있다면 회사에서 잘리진 않지만 파업을 하는 동안 임금을 받지 못한다.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괜찮겠지만 파업 때문에 당장의 생계에 지장이 가는 사람도 있다. 그런 경우 대게 파업에 동참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위해 혹은 다음 세대를 위해 파업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네이버 웹툰의 '송곳'이 생각나는 순간이다.


파업의 이유


파업의 이유를 물어봤다. 내 얄팍한 지식으론 파업의 이유는 대게 임금 혹은 근로환경의 문제로 알고 있다. 샤넬도 마찬가지 근무환경과 임금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얽혔지만 '임직원의 성희롱'문제가 가장 큰 원인이라 하더라. 그 외에도 샤넬 회사는 법정공휴일을 지키지 않았고, 2년이나 휴일 수당을 체불했다고 한다. 때문에 지금 파업하는 사람들은 성희롱에 대한 사과와 대처 그리고 합당한 대우를 받기 위해 소리 내고 있는 것이다.


파업에 대한 인식


"샤넬, 또 파업해요? 징글징글하다."


주차를 하며 주차관리원한테 들었던 말이라고 하더라. 많은 사람들이 '파업'하면 썩 좋은 눈길을 보내지 않는다. '그냥 조용히 살지, 왜 나댈까?', '파업하는 사람들 때문에 차 막혀서 회사에 늦었어,' '저게 무슨 노조야, 귀족이지. '귀족 노조 아니야?' 같은 그런 말들. 정당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일인데 세간의 시선이 곱지 않다. 하지만 파업하는 사람들은 견뎌야 한다. 우리는, 당신들은 파업하는 사람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었나? 


얕은 내 생각, 언제나 노비를 자처하는 '나'


'파업'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상반되는 두 개의 생각이 동시에 떠올랐다. '샤넬' 정도면 복지가 잘 돼있는 편 아닌가? 굳이 파업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이런 개소리를 지껄일 수 있는 이유를 짧게나마 말하자면, 나는 십 년 가까이 알바만 했다. 한곳에 오래 머물러있는 걸 좋아하지 않고, 나이 들기 전 최대한 많은 일을 직접 경험하고 싶었기에 나는 알바를 택했다. 대게 '알바'는 '복지'란 개념이 없었다. 특히 '예술'계통의 일을 할 때가 심했다. 공연 전까지 연습 기간은 따로 돈이 나오지 않는다. 9 to 10, 10 to 10이라고 해서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한다. 한두 달을 이렇게 연습으로 보내는데 스텝이든 배우든 따로 페이가 나오지 않는다.(이름있는 배우는 모르겠다.) 배우야 회당 페이가 높은 경우도 있으니 그렇다 치지만…… 스태프는 어째서 못 받는 걸까? 의문을 품은 적이 있었다. '감독'이란 사람에게 여쭤보니 이전에 그래왔기 때문에, 당연히 그러는 거라고 하더라. 다들 부당하다 느끼지만 그냥 그러려니 한다. 



나는, 노비를 자처하는 나는 그런 환경에 살았다. 주휴수당은커녕 최저시급도 받지 못한 채 일했던 적도 많았고, 부당하다 말해도 오히려 사회통념상 당연하다고 하는 사람이 더 많았을 때다. '갑'이 그렇게 말한다면 얼추 이해라도 하겠는데 같은 '을' 처지의 사람이 더 그러더라. 참으로 아이러니했던 순간이다. 라떼는 말이야 하며 누가누가 더 노예처럼 살았는지 자랑하는 시간을 보게 된다.



샤넬에 다니는 지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입이 쩍 벌어지더라. 우선 최저시급보다 높은 임금, 주휴수당, 특정 제품을 판매했을 때 들어오는 인센티브, 일정 분기마다 지금 되는 복지카드, 육아휴직, 경조사 휴가, 생리휴가, 백신 휴가까지……. 독특했던 건 출근해서 화장하는데 이게 근무시간에 포함된다.(아, 이건 매장마다 다르다고 한다.) 아마 이것 말고도 내가 모르는 복지가 몇 가지 더 있으리라 예상한다. 나는 솔직히 이 이야기만 들었을 때(성희롱 이야기는 제쳐두고) '복지'를 위해 파업을 한다고? 이미 이렇게 큰 혜택을 누리고 있는데?라는 의문이 들었다.



흔히 돈도 제대로 안 주고 업무량은 미치도록 많은 곳, 사람을 나사처럼 생각하는 직장을 ㅈ소기업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상위 12%를 제외하면 대부분 중소기업을 다닌다. 그리고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중견과 중소기업을 제외한 나머지, 그 ㅈ소기업에 다니는 대다수가 노동법의 굴레 밖에서 살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파업은 샤넬뿐만 아니라 ㅈ소기업이 해야 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다가 아, ㅈ소기업은 애초에 노조가 없지……. 만들 수가 없는 구조구나. 싶었다. 말도 안 되는 규율에 반기를 드는 사람 덕분에 내 세상살이가 더 풍족해지고 있다는 생각에 고마웠다. 



어쩌면 나는 스스로 노비임을 자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위에 적은 주휴수당, 그건 법적으로 당연히 줘야 되는 돈이다. 하지만 내가 일했던 곳들은 주휴수당은 물론이고 최저시급조차 지키지 않는 곳이 많았다. 12 ~ 13년도 서울 기준이다. 물론 지금 그런 짓 하면 영리한 사람들은 바로 노동청으로 발걸음을 돌리겠지만, 당시에 막 성인이 됐을 땐 노동청에 가는 행위 자체가 무서웠다. 내가 죄를 지은 게 아니어도 경찰서를 포함해 그런 기관에 가는 것 자체가 두려움이다. 당시 편의점 야간알바를 했을 때 최저에 살짝 못 미치는 돈을 받았다. 당시 최저시급이 4,580원이었는데 아마 4,000원인가 4,500원을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참고로 야간에 일하면 야간수당이 붙어야 한다. 하지만 내가 일하는 동네가 문제인지 당시의 사회가 문제였는지 법을 제대로 지키는 곳이 '거의' 없었다. 어린아이들을 착취하는 나쁜 사람만 있을 뿐. 



그런데 18년쯤 지방에 내려와도 '최저시급'은 지키더라. 정확히 언제인지 혹은 내가 다니는 곳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말 그대로 큰돈은 아니더라도 정말 최저시급을 지키는 곳이 많아졌다. 이건 내 앞에 선배님들께서 피 흘리며 싸운 투쟁의 결과다. 그들은 어떤 혜택을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톡톡히 받고 있다. 최저에 주휴까지……. 정말 눈물 나게 감사한 일이다.


힘내세요, 샤넬의 직원분들.


세상엔 불합리한 일이 많다. 많은 사람들이 불합리한 걸 알고 있지만 선뜻 나서서 해결하지 않는다. 왜? 자신에게 불이익이 올 수 있기 때문에. 가만히 있으면 현상 유지라도 할 수 있지만 노조에 들어가 소리를 낸 순간부터 사방에 적이 생긴다. 또한 자기가 피 터지게 싸워도 보상받지 못하고 패배할 수 있거나 자신의 다음 세대가 받을 수 있다. 앞서 말한 이유를 포함해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혹은 책임져야 할 것을 위해 나서지 않는다. 나를 포함해 범인들은 잘못된 걸 잘못됐다 말하지 않고 그저 묵인하고 지낼 뿐. 그래서 파업하는 사람들을 존경하고 감사한다.



샤넬의 파업이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다. 듣기론 파업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매출은 파업 전과 비슷하다고 하더라. 한편으로 샤넬의 파업이 공론화되지 않음에 실소가 났다. 15년을 생각해 보라, 한창 '미투'가 유행할 무렵, 제대로 된 증거 없이 오직 피해자의 증언만으로 죄 없는 사람을 공개처형했던 게 엊그제인데 지금은 제대로 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용하다. '개인'을 상대론 사람들이 난도질하지만 '기업'을 상대론 하지 않는다. 아마도 큰 기업의 영향력과 허위 미투에 대한 반작용이라 생각이 된다만……. 그저 슬플 뿐이다. 



나는 좀 더 사람들의 샤넬의 파업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비단 샤넬뿐만 아니라 불합리한 곳에 일어나는 소리에 조금 더 귀 기울이었으면 좋겠다. 파업을 해서 짜증 낼 게 아니라 '어째서' 파업을 해야만 했는지 그 이유를 알았으면 좋겠다. 더 나아가 ㅈ소기업의 복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으면. 나는 개인적으로 파업이 성공했으면 좋겠다. 조금 시간이 걸리고 비효율적이더라도 노동자의 편의를, 노동권을 보장해 줬으면 좋겠다. 



우리는 노동자가 된 시점부터 인권 박탈을 당연하게 여기는 게 아닐까? 우리는 사람이지 노비가 아니다. 샤넬의 직원분들을 포함해 지금까지 노예처럼 살 뻔했던 우리를 위해 목소리 높여 싸워준 그대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


샤넬의 파업이 끝났다고 한다. 

결과가 어떻게 된 지 모르겠지만 부디 노조의 의견이 반영됐길 바라며... ☆☆☆ 

파업에 동참한 선배님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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