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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이상 Apr 23. 2023

2호와 3호 사이에는

조현병 1m 거리에서④ 벽이 생겼다

우리집은 3호고 그 사람의 2호다

2호와 3호 사이에 벽이 생겼다.


진짜 벽이면 더할나위 없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후에 후술 할 사건들도 없었을 거다. 벽이 있으면 넘어 올 수 없고 마주칠 수도 없다.


사실 벽은 내가 세우고 싶었다.

벽을 쳐대기 시작한 이후에,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기 시작한 이후에 마주치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으니까.

센 척하며 성큼성큼 복도를 걸어 집 앞으로 왔지만 사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심호흡을 하곤 했다.

시비를 걸면 어떻게 하지, 내가 힘을 쓰면 범죄겠지 뭐 이런 유치한 생각을 하며 몇 발자국 안되는 길을 걸어왔다.


그 사람이 만든 벽은 엉성했다. 아니 금을 그은 것이라고 말하는 게 맞겠다.

우리 집과 그 사람 집 사이에 옷장 문을 하나 떼어 가로로 세워 놓았다.

장롱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한 번의 이사도 없이 살고 계시는 부모님 집에 가면 볼 수도 있는 묘한 무늬가 새겨진 그 옷장. 

그 옷장의 문 하나를 떼어서 본인 현관 문 오른쪽에 벽을 세워두었다.


그 옆에는 어디서 구해온지도 모를 보도블럭 세 개정도를 차곡차곡 올려두었다.

저 보도블럭이 나중에 사달을 만들더라.


기묘한 일이었다.

저 장롱 문과 몇 개를 쌓아둔 보도블럭을 보고 있으니 좀 내가 돌아버릴 것 같았다.

뭐하자는 거지 라는 생각만 들었다. 대체 뭐하자는 거지.


어떤 위해나, 위협을 가했다면 경찰을 부르면 되었을 것이다.

물론, 경찰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는 없다는 것을 나중에 잘 알게되었지만 저때는 그랬다.

그런데 저건 그냥 되게 이상했다.


그저 찝찝하기만 했다.

뭐라도 일어날 것 같은 전조라고도 생각했다.

저때까지만 해도 저 사람이 조현병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뭔지도 몰랐다 저때까지도.

저 금 때문에 1호에 사시는 분이 저 금을 넘지 않고 한 층 내려가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을 보고 웃기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괴이한 일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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